테크놀로지 제 1168호 (2018년 04월 18일)

유통 3.0, 고객의 취향을 읽거나 만들어 주거나

[경영전략]
-정보의 홍수 속 생기는 선택 혼란 극복…알리바바·아마존·신세계 등 적극 도입


(사진) 물건을 직접 담는 대신 QR코드로 모바일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주문하는 알리바바의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성’.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경비즈니스 칼럼=전창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2016년 ‘최인아 책방’이라는 독립 서점이 서울 선릉역 인근에 생겼다. 유럽식의 높다란 천장과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띄는 곳이다.

최인아 책방이 추구하는 가치는 큐레이션이다. 단순히 서적을 유통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점이 아니라 너무 많은 정보로 ‘결정 마비’에 빠진 현대인에게 큐레이션의 가치와 길을 선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생각’이라는 가치를 전달하기도 한다.

◆중국 ‘허마셴성’ 열풍의 비결

대기업 카피라이터라는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가진 최인아 책방의 주인은 자신의 취향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직접 가이드를 제시한다. 책방을 찾은 이에게 “어떤 책을 찾으세요”라고 묻거나 매월 자신이 읽은 좋은 책을 페이스북에 소개한다.

책방을 찾았지만 주인에게 도움을 받기가 쑥스럽다면 1층 서가 한쪽에 있는 책장을 활용해 보길 권한다. 해당 책장은 책방 주인의 지인들이 추천한 책을 큐레이션하는 역할을 한다.

최인아 책방은 최근 멤버에게 매월 한 권의 책을 보내주는 ‘북클럽’ 서비스도 론칭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취향 저격 서비스’가 우편배달로 그 영향력을 넓히는 모습이다.

요즘엔 히트곡 대신 취향을 파는 독립 음반점도 등장하고 있다. 이 음반점들에서는 방탄소년단이나 트와이스 등의 아이돌 음반은 찾을 수 없다. 음반 가게 주인의 취향에 맞는 음반만 팔고 추천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음악에 대한 취향 저격인 셈이다.

독립 서점이나 독립 음반점의 유행을 아날로그의 부활로 보는 사람이 많다. 디지털에 지치고 싫증난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나 LP판 특유의 지직거리는 소리 등 아날로그적 가치를 찾는 현상이라는 시각이다. 아날로그의 부활에 더해 유통의 역할 관점에서 살펴본다.

마케팅을 ‘4P 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가치(Product+Price)를 유통(Place)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잘 알리기 위해 광고 등 프로모션(Promotion)을 하는 것이다.

즉 전통적 마케팅에서 유통은 가치 전달 통로의 역할을 했었다. 최인아 책방은 책의 유통이라는 통로로서의 기능에 주인의 취향에 기반한 큐레이션이라는 가치를 더함으로써 온라인 유통의 ‘가격’과 ‘편리함’ 대비 차별화한 가치를 더한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허마셴성’이라는 오프라인 매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하마의 신선식품’이라는 뜻인데, 2015년 등장한 이 매장에서 고객은 물건을 직접 담는 대신 QR코드로 모바일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주문하면 된다. 고객의 주문이 접수되면 매장 내 직원들이 바삐 뛰어다니며 제품을 실제 장바구니에 담고 이를 물류센터로 보낸다.

매장은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고 창고인 동시에 배달센터도 되는 셈이다. 허마셴성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또는 현장에서 구매한 제품을 마트 3km 이내의 고객에게 30분 내로 배송해 주고 있다.

허마셴성의 장점은 소비자가 직접 고른 신선식품을 이른 시간 안에 배달해 주는 데 있다. 신선식품을 온라인 마켓에서 구매하길 꺼리는 소비자의 심리를 겨냥한 셈이다.

물론 기존 ‘아마존 고’ 등 혁신적 매장에서 구현됐던 ‘무거운 카트나 장바구니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계산대 앞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는 기본이다.

허마셴성의 고객은 월평균 4.5회 구매하고 해당 매장의 단위면적당 매출은 일반 슈퍼마켓의 3~5배 수준이다. 허마셴성은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고객을 따라가는 알리바바

‘유통 1.0’ 시대는 전통 오프라인 매장이 중심이 되는 시대를 뜻한다. ‘유통 2.0 시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재된 시대를 지칭한다. 이들 시대에는 제품·유통 채널·소비자 순서로 우선순위가 매겨졌다. 즉, 제품이 대량생산되면 유통 채널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구조다.

반면 ‘유통 3.0 시대’는 소비자·제품·유통 채널의 순서로 우선순위가 바뀐다.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소비자 맞춤형 제품을 생산한 후 유통 채널을 통해 가치를 부여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허마셴성은 유통 2.5 시대에 가깝다. 오프라인의 고객 체험, 물류, 온라인 서비스, 구매가 융합되면서 온·오프라인의 구분이 궁극적으로 없어진 형태이긴 하지만 유통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 두 가지 사례를 보면 유통 진화의 속도가 가속도를 내는 느낌이다. 단순한 가치 전달의 통로로서의 유통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유통 본연의 가치인 속도·편의성·가격에서 뒤처지는 1.0 시대의 오프라인 매장들은 최인아 책방처럼 취향 저격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더할 때만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못한 1.0 시대의 오프라인 매장과 2.0 시대의 단순한 온라인 매장들은 허마셴성의 예처럼 옴니 채널 또는 유통 2.5 시대로 진화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진화도 충분하지 않다. 알리바바와 아마존 같은 유통 거인들이 이미 유통 3.0 시대로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열심히 달려봤자 제자리인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유통의 진화와 관련해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의 길을 포기하고 고객에게 자신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 이끌거나 아니면 알리바바와 아마존처럼 고객을 중심에 두고 철저히 따라가는 유통 3.0의 길을 가는 두 가지의 선택이다.

지난여름 알리바바가 항저우에서 오픈한 간식 식품관인 ‘온마인(ON MINE)’은 유통 3.0 시대를 겨냥한 신개념 매장이다. 전체 식품 판매액의 30%를 차지하며 특히 젊은 여성들의 구매가 많은 간식에 빅데이터를 접목했다.

반경 5km 내에 있는 20만 명에 달하는 간식 마니아의 소비성향과 취향 등을 분석해 일본의 ‘백색연인’, 한국의 ‘바나나 맛 우유’ 등 선호도가 가장 높은 메뉴를 온라인과 동일한 가격에 제공하고 식품관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체험 무료 시식 공간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알리바바에 유통 3.0이 있다면 아마존에는 ‘이커머스 3.0’이 있다. ‘이커머스 1.0’은 PC 기반의 전자 상거래 시대를 말한다. ‘이커머스 2.0’은 모바일을 통한 전자 상거래 시대를 가리킨다. 이커머스 1.0 시대에는 더 많은 상품을 더 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최고의 경쟁력이었다면 이커머스 2.0 시대에는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소비자 개인이 원하는 물건을 최대한 빨리 쇼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환경, 즉 옴니 채널이 성공 요인이다.

‘아마존 고’나 자주 쓰는 생필품을 터치 한 번으로 바로 집으로 배송해 주는 ‘대시 버튼’이 대표적 서비스다. 이에 비해 이커머스 3.0은 고객보다 먼저 고객의 니즈를 찾아서 알려주는 게 핵심이다. 즉, 고객이 어떤 상품을 원하기 전에 유통 업체가 먼저 ‘넌 이 상품이 필요할 거야’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아마존은 이커머스 3.0 시대로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마존의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AI) ‘알렉사’는 모바일의 애플리케이션에 해당하는 스킬의 수가 이미 2만5000개를 돌파했다.
알렉사를 통해 고객의 집과 거실을 장악한 아마존은 고객의 빅데이터를 빠르게 수집하고 있다. 이 커머스 3.0 시대의 핵심인 고객의 빅데이터에 기반해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파악하고 예측 배송을 제안하는 시대로 아마존답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셈이다.

아마존과 알리바바의 지향점은 같다. 다만 그 지향에 이르는 여정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알리바바는 생태계 참여자들과 상생을 공언하는 반면 아마존은 생태계 참여자들을 ‘아마존드’라는 신조어처럼 파괴하며 나아가고 있다. 속도와 상생의 관점에서 아마존과 알리바바의 경쟁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고객을 이끄는 스타필드


(사진) 스타필드 하남 3~5층에 자리한 실내외 워터파크 ‘아쿠아필드’. /이승재 기자 fotoleesj@hankyung.com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의 연간 방문객이 개점 1주년을 맞은 지난해 9월을 기준으로 2500만 명, 하루 평균 7만 명 수준이다. 영업 첫해 매출은 85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스타필드 고양의 돌풍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추석 연휴 내비게이션 검색 1순위는 공항이나 고향이 아닌 고양이었다고 한다.

스타필드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유는 뭘까. 신세계그룹은 스타필드 오픈 전 단지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파는 ‘상품 백화점’ 정도로는 고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어렵다는 답을 내렸다. 이후 많은 실험을 통해 재미있는 경험을 모아 놓은 ‘경험의 백화점’, ‘취향의 백화점’을 선보일 수 있었다.

혹자는 스타필드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개인의 ‘취향 백화점’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통상 명품이나 화장품으로 구성되는 백화점 1층에 개방형 쿠킹 스튜디오와 도자기 공방을 배치했고 아쿠아 체험 공간 ‘아쿠아필드’, 남자들의 놀이터 ‘일렉트로 마트’,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바이크와 모터 숍 그리고 가구와 카페를 결합한 ‘카레클린트 카페’ 등을 통해 소비자의 취향을 묻기보다 소비자에게 이 취향을 따르라고 당당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스타필드는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를 충족시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연결성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가치에 끌릴 것이다. ‘자기를 이끌어 주거나 자신을 따르거나’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얘기했듯이 원래 인간은 자유를 좋아하지 않았다. 연결성 시대 우리는 이런 자신을 이끌어 주는 기능을 가진 유통에 끌린다. 자기가 원할 것 같은 제품을 원할 것 같은 방법으로 편리하게 전달해 주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따르는 유통에도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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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4-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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