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제 1170호 (2018년 05월 02일)

남의 돈으로 도박하는 ‘먹튀 경영’을 막는 법

[경영전략]
-경영진은 실패해도 손해 안보는 구조 바꿔야…같이 책임지는 사내벤처가 대안 될 수도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전략은 매우 크고 중요한 그러면서도 돌이키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미리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전략 계획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이를 위해 돈과 인력을 어떻게 마련할지 살펴봐야 하므로 자원 계획과 배분은 전략의 계획과 실천에 중요한 부분이 된다.

전략적 의제가 제안되고 논의돼 선정된 후 실현하는 과정은 기업이나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좋은 사업안이 이런저런 트집만 잡혀 꺾이면 결국 회사는 망하게 된다. 쓸데없는 짓들을 그럴듯하게 벌이고 빠지는 ‘먹튀 스타’가 난무하면 미래를 짊어질 인재는 사라지고 역시 망한다.

최근의 진화론적 연구들은 이런 전략 과정(strategy process)이 기업 고유의 유전자 역할을 하며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위험관리(risk management)는 내부 통제와 짝을 이뤄 전략 과정의 핵심적 부분을 이룬다.

◆전략 계획과 위험관리의 줄다리기

전략 계획은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 구체적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자본예산(capital budgeting)을 통해 얼마를 투자하면 얼마를 벌어 기업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야 한다. 최악에는 어느 정도의 타격을 받게 되는지, 그 타격을 견딜 수 있는지 따져보는 위험관리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

미래를 좀 더 잘 내다보고 준비하면 망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어떤 위협 요인이 있고 실천하려는 전략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미리 살펴보는 역할은 어느 조직에나 있다. 적극적 또는 공세적 전략을 펴는 ‘돌격 정신’ 가득한 사업 담당자에게는 아주 꼴 보기 싫은 겁쟁이로 보일 수도 있다. 은행의 대출 영업과 위험관리 사이의 대립이 대표적 사례다.

최고경영자는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위험관리자와 뭐라도 해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업 담당자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재무 관리 교과서에 나오는 자본예산과 위험관리는 숫자 계산일지 모르지만 어떤 투자가 선별돼 실현되느냐는 그 사업을 맡은 담당자와 사업부가 주도권을 갖게 되는 정치적 과정이다. 숫자는 사람이 만들고 판단이 들어간다. 따라서 사업의 내용이나 미래 환경 요인에 대한 전망에 따라 숫자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전략 경영 분야에는 어떤 사업도 그럴듯하게 만드는 우아한 개념과 분석 도구가 무수히 제시돼 있다. 짜릿한 성공 사례에 화려한 그래픽 자료와 영상이 더해지고 역사 속의 예화, 선현들의 말씀까지 더해지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어 보인다.

당장 수익성이 없더라도 꾸준히 투자하고 버티면 ‘플랫폼’을 잡아 업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조언, 얼마나 유혹적인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 ‘블루오션’을 잡을 수 있다는데, 남들 다 허우적대는 ‘레드오션’에서 같이 헤매는 경영자로선 솔깃할 수밖에 없다.

참신한 전략과 황당한 전략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도 무궁무진해 안타까운 회고인지, 얄팍한 변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기업이나 국가 전체의 득실과 개인의 계산이 다를 때 벌어지는 ‘먹튀’의 가능성만 가려낼 수 있어도 억울하게 망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베어링과 엔론의 실패한 위험관리


(사진) 2001년 회계 부정 사태로 파산하며 세계경제를 뒤흔든 제프리 스킬링 엔론 전 CEO.

한때 위험관리를 도입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재벌의 전횡을 막는 선진 경영 기법이라며 요란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름의 역할도 있었지만 사실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파산 사건을 보면 위험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계 투자은행 베어링은 싱가포르 법인의 무리한 선물거래로 파산했다. 투자 담당자에게 부여되는 투자 한도나 거래 내역에 대한 감시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지만 성과에 대한 욕심과 맞물린 은폐 혹은 묵인으로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을 본 결과다.

미국의 엔론을 떠올려 보자. 에너지 기업이던 엔론은 한때 컨설팅 출신 인재들이 만들어 낸 ‘기업 변신’의 대표적 성공 사례였다. 엔론의 경영진은 인수·합병(M&A)에 따른 채무 부담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자본시장과 미디어의 입맛에 맞는 화려한 사업 아이템을 연달아 내놓았고 엔론이 보여주는 ‘미래 가치’는 공격적인(실은 위험한) 회계적 판단을 가능하게 했다.

망한 회사를 놓고 잘못을 따지는 일은 자칫 아무 얘기나 갖다 붙이고 단죄하는 ‘부관참시 경영학’이 되기 쉽지만 엔론의 사례에서는 경영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민감한 논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엔론은 경영진과 사업 담당자들이 만들어 낸 ‘미래 성과에 대한 가능성’을 계산해 보상의 근거로 삼았는데, 이는 엔론을 계속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대한 공격적 투자로 몰고 갔다. 이는 세계 금융 위기 이전의 금융시장 상황과도 맞았기 때문에 문제가 분명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컨설팅, 판돈 없는 도박’이라는 책에는 자기 이익이 걸리지 않은 남의 사업에 간여하면서 과감한 변화를 주장하는 컨설팅업계의 속사정이 묘사돼 있다. 이 같은 한계에 실망한 컨설턴트가 진짜 사업을 해보려고 한다면 엔론은 매우 매력적 대상일 것이다.

컨설턴트 출신으로 새로 영입된 입장에서 새 사업 아이템은 갈고닦은 지식과 경험을 실제로 적용해 뭔가 보여줄 절호의 기회가 된다. 문제는 잘되면 찬란한 성공의 기록이 되고 잘못돼도 적당히 감출 수 있거나 사표 제출 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면 되는 비대칭적 이해관계에서 시작된다.

판돈은 투자자가 내고 경영진은 찬란한 성공을 누린다면 무책임한 도박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구조가 이렇게 만들어진 상태에서 위험관리나 내부 통제가 경영진에게 브레이크를 걸기는 어렵다. ‘새로운 사업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꽉 막힌 관리자’는 해고하면 그만이고 자본시장과 미디어가 사업의 미래 가치를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내부자에 의한 공개적 문제 제기는 주목받기 어렵다.

‘일장공성 만골고(一將攻成 萬骨枯)’라는 옛말이 있다. 전쟁을 마구 일으켜 장군이 공을 세우는 사이 병졸로 끌려간 사람들은 덧없이 죽어난다는 얘기다. 남의 돈으로 도박하듯이 사업을 벌이는 무책임한 경영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전쟁에서는 공명심만 가득한 장군에게 수하 장졸들이 목숨을 걸고 따르지 않는 나름의 자구책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때 장군은 스스로 최전선에서 싸우거나 자신의 일가친척을 참전시켜 위험한 전투를 맡게 함으로써 장졸들의 헌신을 끌어낸다. 나도 운명을 걸었으니 ‘판돈 없는 무책임한 도박’은 아니라는 선언이다.

◆‘일장공성 만골고’의 비극

실제로 김유신 장군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단신 돌격을 감행했고 원술의 사례에서 보듯 그의 자식들에게도 전선에서의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경영에 적용해 보면 ‘경영자 보상(executive compensation)’의 핵심적 내용으로 연결된다.

엔론의 경영자와 사업 담당자들은 ‘미래 성과에 대한 가능성’에 근거해 보상을 받았는데 잘못되면 돌아오는 손실은 월급을 덜 받는 것밖에 없었다. 만약 자기 돈을 직접 투자하도록 하거나 손실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면 투자 행태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만약 경영자가 연봉 1달러를 받는 대신 스톡옵션을 받는다면 개인의 미래 수입이 담보로 제공된 면이 있으므로 자신은 ‘먹튀 경영’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고 있는 셈이다. 경영자가 누리는 다양한 비용 보상이나 혜택을 없애면 효과는 더 커진다.

경영자에 대한 평가와 보상에 대한 연구는 많다. 특히 성과 평가에 대해서는 기업의 주가나 이익과 같은 ‘총괄 성과 지표’에 작용하는 다양한 외부적 변수에 문제가 있다면서 핵심 성과 지표(KPI)를 같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이도 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평가하고 보상에 연동한들 경영자 개인에게 주는 영향이 크지 않다면 ‘다소 귀찮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작전 잘못하면 죽는 전쟁도 아니고 점수 깎이고 보고서 쓰고 해봐야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면 죽기 살기로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새로운 사업을 해보겠다는 유능한 사업 담당자가 있다면 과연 해당 사업이 ‘투자자 돈으로 도박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좋은 사업이면 자신이 직접 창업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창업을 위한 자본을 마련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무엇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일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회사 밖에 나가면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회사로서도 고민은 있다.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투자 제안을 보면 대부분이 믿을 수 없다. 이때 사내벤처는 효과적 대안이 된다. 우선 사업 담당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제안된 내용인지 알 수 있는 만큼 속을 가능성이 낮다.


(사진)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조직 ‘C랩’.

사내벤처는 모회사가 일정한 사업 기반과 투자금을 제공하고 사업 담당자도 자신의 돈을 투자해 사업 단위를 만든 후 일정 단계에 이르면 이 사업 단위에 본격적으로 투자 받아 독립시킨 후 자본이득을 거둘 수 있다. 모회사와 적절한 사업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먹튀 도박’의 우려도 해결하고 모회사와 신규 사업의 상호 시너지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셈이다. 중세 영주들이 휘하 장수들을 독립시켜 동맹으로 삼는 구조와 비슷하다. 회사의 원래 사업과 전혀 다른 일에 투자해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사는 문제도 줄어든다.

현실의 경영은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얽혀 전개된다. ‘한마음 한뜻’같은 공허한 말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마술처럼 조정되지는 않는다. 전략 경영이 남의 돈으로 도박하는 이들의 화려한 말재주에 쓰이기보다 세상을 바꾸는 지혜로 활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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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5-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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