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의료·보건 분야에도 4차 산업혁명 바람…‘디지털 격차’ 해소 청신호
‘생각만으로 휠체어 조종’…디지털 기술로 ‘장애’ 넘는다
(사진)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한 김주윤(가운데) 닷 대표.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 칼럼=김성훈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한국은 최근 고령화사회 진입과 함께 ‘디지털 격차’가 이슈가 되고 있다.

디지털 격차는 컴퓨터가 발전하고 인터넷의 경제적 효용이 증가할수록 정보 소유 계층과 정보 비소유 계층 간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뜻한다. 주로 노약자나 장애인일수록 평균 대비 디지털 격차가 크게 뒤처진다. 초고령화사회 진입과 장애 인구 증가에 대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한 가지 이유로 발명된 기술은 다른 것에도 영향을 미치고 종종 그 효과가 예상보다 크다. 휴대전화의 진동 기능은 원래 청각장애인이 전화나 문자가 들어올 때 인지할 수 있도록 고안됐지만 오늘날 진동 모드는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 기능이 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4차 산업혁명은 노인과 장애인의 삶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고 상상을 초월하는 발명품과 기술 개발을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 장애인이 일상생활은 물론 업무·스포츠 등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기술이 장애를 극복하게 해줘 장애인의 사회 진출이 증가할 수 있다.

각종 첨단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의 활용도도 증가하고 있다. 유저 인터페이스가 음성인식이나 동작 기반으로 진화하면서 청각이나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도 앱에 대한 접근이 수월해졌다. 착한 인터페이스가 되기 위해서는 오감을 통한 편리한 액세스가 가능해야 하고 자동화를 통해 사용자의 작업량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격차를 줄여 장애인에게 혜택을 주는 분야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 스타트업, 세계 최초 스마트 점자 시계 개발

첫째, 시각장애인의 눈이 돼 사물을 인식하거나 글을 판독하는 시각 보완 분야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스타트업 서드아이(ThirdEye)는 시각장애인에게 사물을 음성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구글 글라스를 착용하거나 모바일 앱을 통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상품이나 글에 갖다 대면 관련 설명을 음성으로 제공한다.

시각장애인이 소비자 가전 스토어에서 계산할 때 지갑의 지폐가 얼마짜리인지 서드아이를 통해 확인하고 결제한 다음 거스름돈을 제대로 받았는지도 체크할 수 있다. 매월 약 8달러에 이용할 수 있다. 서드아이는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2018’에서 ‘X1’이라는 증강현실(AR) 기능이 있는 ‘스마트 글라스’를 선보였다.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을 수 있도록 변환된 점자책이 아직 부족하다. 점자를 공부하거나 읽을 때 사용되는 점자 리더기는 너무 무겁고 커 불편할 뿐만 아니라 비싸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은 생각보다 높다.

여기에서 착안한 세계 최초 스마트 점자 시계 ‘닷 워치’가 한국 스타트업 닷에 의해 상용화됐다. 스마트 워치와 유사한 닷 워치에는 25개의 작은 원기둥이 오르내리며 숫자와 글을 점자로 출력한다. 문자 메시지를 자동 변환해 주는 것은 물론 음성을 점자로 나타내 줘 연락도 주고받을 수 있다. 점자를 모르는 장애인을 위한 점자 교육 시스템은 보너스다.

닷 워치는 세계 1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닷은 시각장애인용 정보기술(IT) 기기인 ‘닷 패드’를 구글과 함께 개발 중이다.

둘째, 언어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분야다.

구글의 딥마인드는 입 모양만으로 문장을 판독하는 인공지능(AI)을 개발했다. 약 5년 동안 5000시간 분량의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학습한 테스트 결과 인간 전문가보다 정확도가 4배 정도 높았다. 청각장애인에게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음성 비서와 결합하면 입 모양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고 CCTV 화면의 음성 판독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대방이 수화를 모르더라도 양손에 링을 끼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됐다. ‘사인 랭귀지 링’이라는 제품인데, 팔찌와 6개의 반지로 구성돼 있다. 기기 착용자가 수화로 말하는 손의 움직임을 감지해 음성으로 변환, 내장 스피커를 통해 의사를 전달해 준다. 게다가 상대방의 목소리가 문자로 변환돼 디스플레이에 표시된다.

무엇보다 사용자 특유의 제스처까지 기억할 수 있는 기기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셋째, 거동이 불편한 이에게 이동의 편의성을 주는 분야다. 휠체어를 손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이도 표정이나 생각만으로 조종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

칠레의 ‘로타테크노(Rotatecno)’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얼굴 표정과 생각으로 운전이 가능한 저가의 휠체어를 개발했다. 뇌파 모니터와 헬멧을 쓴 상태에서 눈을 깜빡이거나 머리를 젖히는 등의 제스처를 통해 조종할 수 있다. 뇌파만으로도 조종이 가능한 휠체어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예정이다.

최근 CES에서는 IBM과 3D 프린터로 자동차를 만드는 로컬모터스가 협업해 출시한 장애인을 위한 무인 자율 셔틀버스가 화제였다.

이 셔틀버스에는 AI·증강현실(AR) 기술이 탑재돼 시각·청각·인식 등에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각 좌석에 햅틱 센서를 설치, 승객이 빈 좌석 옆을 지나갈 때마다 손에 진동을 줘 알려준다.

청각장애인을 위해선 머신러닝과 IBM 왓슨의 이미지 인식 기술을 탑재해 수화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머신 비전 기술을 활용해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휠체어 또는 목발 사용자를 인식해 승객 앞에 경사로를 설치, 편리하게 탑승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반신이 마비됐거나 불편한 사람을 위한 외골격 웨어러블 로봇도 주목된다. 공경철 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성화 봉송에서 ‘워크온 슈트’를 선보였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걸을 수 없던 장애인이 하반신 마비용 보조 로봇 덕분에 성화 봉송까지 하게 된 것이다. 워크온 슈트는 보행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거나 재활 훈련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근력이 다소 부족한 일반인이 착용하면 평소보다 서너 배의 근력을 지닐 수 있다.
‘생각만으로 휠체어 조종’…디지털 기술로 ‘장애’ 넘는다
(사진) 하반신 마비용 보조 로봇 ‘워크온 슈트’를 착용한 전 장애인 테니스 국가대표 이용로 씨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3월 3일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성화를 봉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치매 위험을 사전 예측하는 프로그램도

마지막은 국가적 어젠다가 된 치매 분야다. 한국은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5년 후면 ‘치매 환자 100만 시대’를 맞게 된다. 이 때문에 현 정부에서도 치매의 심각성을 중요히 여겨 치매 국가 책임제 정책을 발표하고 치매 돌봄 병동 등의 세부 사항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팀은 AI와 빅데이터를 이용해 알츠하이머 치매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증세가 나타나기 2년 전에 84%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핵심이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보유하고 있는 환자 수백 명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학습시켜 치매를 사전에 예측하는 방식이다.

치매 발생의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뇌세포 표면의 단백질이 증가하면서 뇌세포가 죽고 결국 치매를 유발하게 된다. PET는 치매의 주범으로 지목된 뇌의 단백질 증가를 포착할 수 있는 유일한 영상 기술이다.

향후 치매 예측 AI가 상용화하면 치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들만 골라 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임상시험을 진행, 국가 차원의 소요 경비와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주요 6대 암 발병 위험을 비롯한 심뇌혈관 질환, 당뇨 등 주요 성인병의 4년 내 발병 확률을 예측해 주는 프로그램도 출시됐다.

치매는 근본적 치료제가 없는 데다 길게는 10여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현재로선 치매 환자가 오랫동안 일반인과 같은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치매가 의심된다면 꾸준히 뇌를 훈련시켜 치매 진행을 최대한 늦출 수 있는 ‘인브레인 트레이너’라는 뇌 훈련용 애플리케이션도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으로 다양한 기술이 의료·보건 분야에 융합적으로 접목되면서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장애인의 삶에 서광을 비추고 있다. 향후 가성비라는 허들을 넘는다면 보건·복지 분야의 일대 혁신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