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iOS 12로 2013년 이후 제품 성능 대폭 향상…‘록인 효과’ 노려
애플이 구형 아이폰까지 업그레이드하는 진짜 이유
[한경비즈니스=최형욱 IT 칼럼니스트] 올해도 어김없이 애플의 개발자 콘퍼런스인 WWDC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샌호세 컨벤션센터에서 6월 4일 진행됐다.

행사 직전까지 루머로 돌며 기대감을 가장 크게 받았던 아이폰의 보급형 신제품인 ‘아이폰 SE2’는 발표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 어떤 하드웨어도 발표되지 않았다.

이날 무대에 오른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오늘의 행사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애플의 모든 운영체제 업그레이드와 디자인 개선 사항에 대해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번 WWDC가 끝나고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진을 찍고 관리하는 포토 관리 부분이나 새로운 기능이라고 발표한 미모지(Memoji) 기능은 이미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는 기능이거나 삼성전자가 얼마 전 선보인 기능과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WWDC에서 애플이 언급한 다른 부분들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면 애플이 준비하고 있는 차세대 서비스와 새로운 생태계 그리고 제품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바로 올해 발표에서 애플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힌트를 던져준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

이번 WWDC에서 애플이 가장 강조한 부분은 아이폰의 운영체제인 iOS 12의 성능 향상이었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담당 수석 부사장은 “iOS 12는 성능 향상에 중점을 뒀다”며 “아이폰 6 플러스는 실행 속도 40%, 키보드 작동 속도 50%, 카메라 실행 최대 70%까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OS를 업데이트할 때 최신형 제품을 기준으로 성능 향상을 언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iOS 12의 기준은 출시된 지 4년 된 2014년 제품인 ‘아이폰 6 플러스’를 기준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업그레이드와 성능 향상은 2013년 이후 출시된 모든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대상이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소비자로선 구형 아이폰을 사용해도 성능과 안정성이 높아져 굳이 새로 나온 아이폰을 구매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인다.

애플로선 매출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아이폰의 교체와 신규 수요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다. 상식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쪽에서만 놓고 볼 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iOS 12의 성능과 안정성의 극대화를 위한 운영체제의 재설계는 애플의 치밀한 향후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의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포화기를 지나가고 있다. 미국·일본·서유럽·한국·중국 같은 국가들은 스마트폰 신규 성장률이 떨어지고 교체 수요로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미 A사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이 다음 제품을 구입할 때 다시 A사의 제품을 구매하느냐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국가들의 스마트폰 평균 단말 가격이 신흥시장인 인도·중남미·아프리카·동유럽보다 월등히 높다.

이렇게 높은 단말 가격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제조사가 판매하는 단말 가격의 상승에 대한 수요나 제품 대당 이익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국가들에서 아이폰의 점유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애플의 라이벌은 아직까지 삼성전자의 갤럭시 S나 노트 시리즈 정도로 한정적이다.

하지만 중국의 화웨이·오포·비보와 같은 업체의 등장과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아이폰에 대한 불만이 높아진다면 아이폰에 대한 재구매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하락은 애플에 치명적이다.

따라서 당장은 교체 수요가 조금 줄고 제품 교체 주기를 조금 늘리더라도 성능과 안정성을 보다 제고함으로써 향후 장기적으로 아이폰 사용자를 새로운 아이폰으로 교체시키고 과거 보급형 기기의 아이폰 사용자를 최신형의 최고가 아이폰 사용자로 교체시키는 것이 애플의 미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이 구형 아이폰까지 업그레이드하는 진짜 이유
◆운영체제 최적화로 원가절감도 가능

이번 성능과 안정성 향상에서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부분은 바로 최적화를 통한 원가절감의 가능성이다.

애플은 2013년 제품부터 업그레이드를 진행할 예정이고 구형 아이폰 이용자도 지금보다 빨라진 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

운영체제의 성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몇 가지 중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메모리는 단말의 제조원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디스플레이만 남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품 가격에 큰 영향을 준다.

2014년 출시된 아이폰 6 플러스를 살펴보면 내장 메모리는 1GB다.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 X이 3GB를 탑재하고 있으니 3분의 1 수준의 내장 메모리가 탑재돼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최근 출시되는 신제품들은 6GB나 8GB의 내장 메모리까지 그 용량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그만큼 운영체제 자체도 무거워지고 있고 최신 스마트폰에서 수행되는 다양한 앱들 역시 더 많은 메모리를 요구할 만큼 무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은 이번 운영체제 최적화를 통해 1GB에서도 사용자들이 큰 불편함 없이 다양한 앱과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 얘기는 향후 보급형이나 저가 제품에도 동일한 iOS 운영체제를 제공해도 제품 간 파편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고 제품의 원가 경쟁력도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선진 시장에서의 스마트폰은 이미 포화 상태에 따른 교체 수요만이 존재할 뿐이다. 결국 인도·중남미·아프리카·동남아시아와 같은 신흥 시장에서의 새로운 수요를 아이폰 사용자로 끌어들이고 애플이라는 생태계에 록인(Lock-in)해야 하는 것이 애플의 숙제다. 하지만 고가의 아이폰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결국 보급형 아이폰 출시를 통해 신흥 시장의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하고 이렇게 보급형 아이폰을 구매한 새로운 소비자들이 애플의 생태계에 들어와 그 안에서 더 고가의 아이폰으로 갈아타게끔 하는 것이 애플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의 시작을 위해 이번 WWDC에서 과감하게 운영체제의 성능과 안정성을 향상시키고 과거 구형의 제품까지 성능과 안정성을 향상시키게 된 것이다.

◆차세대 겨냥 AR 개발 키트도 업그레이드

이번 WWDC에는 iOS 12의 성능 향상과 함께 또 다른 애플의 차세대 먹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증강현실(AR)이다. 이미 2017년 WWDC에서 처음 선보였던 AR을 위한 개발자 도구인 AR 키트는 이번 2018년 WWDC에서 AR 키트2로 한층 업그레이드돼 돌아왔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기존보다 훨씬 강화된 얼굴 인식 기능을 갖추고 여러 대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통해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AR 환경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또한 이번 AR 키트2에선 사물의 형상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3D 객체 탐색(object detection)이나 인식된 형상을 쉽게 3차원 형태로 화면에 구현할 수 있는 렌더링 등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애플은 스마트폰 이후의 시대 또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다음 시대를 위한 준비로 AR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AR은 가상현실(VR) 대비 스마트폰을 활용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카메라와 스크린 그리고 실제 현실과 AR을 겹쳐 처리해 줄 수 있는 프로세서가 있다면 여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서비스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수의 기기를 통한다면 동시에 게임이나 디자인, 업무 프로젝트와 같은 부분들을 함께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집의 가벽이나 벽지를 제안하면 다른 디자이너가 이를 함께 보며 변경할 수 있고 원거리에 떨어진 집주인 역시 이를 같이 보면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디자인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협업이 필요한 업무나 스노·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 역시 지금과는 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WWDC에서 애플이 발표한 내용들은 당장 소비자들이 환호하며 사용할 만한 서비스는 아니다.

하지만 애플의 이러한 환경 조성은 향후 애플이 어떤 부분을 주력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떠한 제품을 만들어 낼지를 가늠할 수 있는 힌트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