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고정관념을 깨야 협상의 출구가 보인다
폭스바겐이 중국 정부의 자동차 ‘기술이전’ 요구에 응한 이유
(사진) 폭스바겐의 중국법인인 창춘 ‘이치다중’ 공장.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비즈니스적 성격이든 개인적이든 쉬운 협상은 없다. 서로 요구하는 조건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만나 얘기해 보면 언제나 ‘노(No)’부터 시작된다. 자기 생각에 분명히 괜찮은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수용하지 않는다.

좋은 방법은 없을까. 수많은 협상 사례를 분석해 보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정관념만 깨면 출구가 보인다. 협상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훌륭한 결과를 도출했던 협상에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그 패턴을 따라가 보자.

◆첫째 패턴 ‘협상의 안건을 키워라’

최근 배출가스 조작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폭스바겐의 중국 진출 사례를 보자. 중국 정부와 폭스바겐은 1984년 중국 시장 진출을 놓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당시 세계의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 진출을 노렸지만 중국 정부의 ‘기술이전’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면 폭스바겐은 중국과 합작 기업을 설립했고 2000년대 초반 현지 승용차 시장의 54%를 점유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당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중국의 기술이전 요구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개발해 향후 자국 시장은 물론 해외시장도 잠식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폭스바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술이전에 대한 중국의 열화와 같은 니즈를 파악한 이후 경쟁사와 다르게 접근했다. 기술이전에만 몰입하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 또 다른 안건을 올린 것이다.

폭스바겐은 △다른 외국 자동차 회사의 투자 제한 △관세 장벽(수입 완성차에는 높은 관세, 부품에는 낮은 관세 부과) △정부와 국영기업의 폭스바겐 승용차 우선 구입 등의 어젠다를 추가했다. 중국 정부로서는 기술이전만 된다면 나머지 요구를 들어줘도 큰 손해가 없었다. 결국 중국 정부와 폭스바겐 모두 만족한 협상 결과가 나왔다.

‘윈-윈 협상’의 원리는 협상 안건을 키우고 추가해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이번 협상에서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양보할 수 있는 조건과 양보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그 외에 주고받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타협한다면 어느 선까지 할 것인가 등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다양한 협상의 안건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지와 기회를 제공한다. 안건이 눈에 보이는 것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넓혀 가는 것이 기술이다.

◆둘째 패턴 ‘협상의 안건을 쪼개라’

하나금융그룹은 2010년 하나은행 내에서 운영하던 하나카드를 단독 계열사로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추후 다른 은행을 인수하고 하나금융그룹의 캐시 카우 역할을 해줄 계열사로 키우려고 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우선 협상대상자로 SK텔레콤을 선정하고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과의 합작회사를 바탕으로 2500만 명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선도적인 SK텔레콤의 노하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카드를 분사하되 최소 51%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 경영권을 지키려고 했다.

반면 SK텔레콤은 생각이 달랐다. 카드 사업에 진출하면 통신업을 넘어 금융업이라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경영권이었다. 단지 카드 사업을 넘어 모바일 금융 결제 시장을 선점하고 이를 통해 해외에도 모바일 결제 표준을 구축하려고 했다.

따라서 SK텔레콤은 경영권 확보를 중요 이슈로 생각했다. 마케팅 전략과 회사 운영이 하나에 비해 훨씬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드시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 경영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각 차이 때문에 두 회사는 지분 소유 비율을 둘러싼 경영권 확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협상이 계속 지연됐다. 두 기업은 결국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우선 가장 큰 쟁점이던 경영권을 나누기로 했다. 하나금융지주가 51%의 지분을 소유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재무 운영 측면에서 노하우와 연륜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기로 했다.

반면 SK텔레콤은 마케팅과 운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기 때문에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맡기로 했다. 그 대신 이사회는 동수로 구성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경영권 확보 욕구를 채우고 하나금융그룹은 현금 유동성 확보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이것이 ‘하나SK카드’의 탄생 스토리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협상이 어려운 경영권 이슈도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나눌 수 있다. CEO 외에도 기능과 권한에 따라 전문성을 살리는 묘수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경영권을 나눌 수 없다면 또 다른 방법을 제안한다. 경영권에 시간적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세계 1위 방위산업체인 미국의 록히드마틴은 1995년 록히드와 마틴 마리에타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당시 구소련의 변화로 세계 무기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위기를 감지한 양 사는 합병만이 살길이라고 인식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양 사는 합병에 필요한 기술적 부분과 가장 민감한 재무 문제 등에 대해 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생각지 못했던 난관에 봉착했다. 양 사 회장이 합병 법인의 대표 자리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협상 결렬을 선언한 당일 노먼 오거스틴 마틴 회장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합병만이 두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도 아쉬운 나머지 한밤중에 록히드의 대니얼 텔레브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CEO 자리를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다.

텔레브 회장은 “만약 내가 CEO 자리를 내놓는다면 젊은 오거스틴 회장에게 밀려난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퇴를 앞두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았던 텔레브 회장의 자존심이 협상의 걸림돌이던 것이다.

텔레브 회장은 그러면서 “만약 당신이 회장 겸 CEO 자리를 양보한다면 2년 후에 물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오거스틴 회장은 제안을 바로 수락했다. 결국 텔레브 회장은 록히드마틴의 초대 회장 겸 CEO로 부임했고 2년 후 오거스틴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준 후 명예회장으로 남게 된다.

이 기가 막힌 협상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3분이었다. 경영권을 두고 팽팽히 맞선 두 사람은 시간적 개념을 도입해 협상을 타결했다.

◆셋째 패턴 ‘협상의 안건을 교환하라’

볼보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한파 이후 삼성중공업의 애물단지가 돼버린 중장비 분야를 1998년 인수했다. 그리고 670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던 기업을 인수 2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 비결은 협상을 통해 양 측이 나눠 가질 수 있는 파이를 키운 데서 비롯됐다.

협상 초기 양측은 모두 매각 비용을 얼마로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은 당연히 높은 가격을 고집했고 볼보는 낮은 가격에 인수하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볼보에는 매각 비용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파워였다. 삼성의 브랜드와 영업망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인수 가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매각 비용 외 다양한 협상 안건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삼성중공업도 새로운 안건을 추가했다. 브랜드 사용에 대한 로열티 요구와 함께 자동차 시장 진출을 위해 세계적 수준인 볼보의 자동차 기술이전을 요청했다. 삼성에는 볼보의 선진 자동차 기술을 배우는 것이 매각 비용만큼이나 중요했다. 볼보에는 자동차 기술이전이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이 협상은 양측 모두 만족하는 결과로 타결됐다.

협상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가지 이유나 안건에 매달리지 않는다. 상호 관심을 가질 만한 안건을 모두 올려놓고 사안의 중요성을 따져 본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중요도의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안건에 대한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자신의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안건의 중요성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깊이 따져봐야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할 안건이 있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별반 차이가 없는 안건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협상에서 실리를 얻을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서 당신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 같은 협상법은 없다. 하지만 기존 고정관념만 깨면 ‘윈-윈 협상’을 이룰 수 있는 창의적 방법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