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직원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불평한다면 ‘업무 다이어트’ 고려해야
다이어트는 ‘조직 운영’에도 필요하다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판교의 오징어 배’라는 말이 있었다. 게임·정보기술(IT)업계 회사가 몰려 있는 경기 성남 판교 사무실의 불이 24시간 꺼지지 않는 것을 빗대 만들어진 표현이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판교에서 오징어 배를 볼 수 없게 됐다. 비단 판교뿐만 아니라 서울의 야경도 바뀌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그 원인이다.

정부에서 처음 주 52시간 근무제를 제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근무시간 단축이 말은 쉽지 잘 안 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기업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중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나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기도 하고 ‘PC 오프 제도’ 시행을 통해 정시 퇴근을 독려한다. 그 덕분에 직장인의 삶에도 ‘저녁’이 생기고 있다.

◆‘의전의 낭비’ 줄이기 위한 리더의 결단

하지만 마음 놓고 저녁을 즐기기엔 아직 좀 불안한 감이 있다.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조직이 원하는 성과까지 줄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환경에서 조직에 필요한 것은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해 성과를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업무에서의 군살 빼기, 워크 다이어트(work diet)가 필요하다. 워크 다이어트의 핵심은 업무 과정에서 이뤄지는 ‘안 해도 될 일’을 찾아 없애는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다 필요해 일해 왔는데 안 해도 될 일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상대적 개념’의 업무 판단이다.

‘그저 하면 좋은 일’, 하지만 본질적 일이 아닌 것을 줄여 보자는 것이다. 비본질적인 일에 시간을 쓰느라 정작 성과와 연결되고 핵심이 되는 업무에 쓰는 시간을 놓칠 때가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조직에서 ‘하면 좋은 일’은 어떤 것일까. 대표적인 게 의전이다. 많은 사람이 의전은 ‘대통령이나 최고경영자(CEO) 또는 임원들이나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의전 역시 상대적이다.

우리가 생각지 않게 매달리고 있는 대표적 의전 사례는 ‘e메일 보고’다. 직장 상사 등에게 e메일을 보내기 위해 창을 열 때 직원, 특히 직급이 낮은 직원일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어떤 인사말로 메일을 시작해야 겸손해 보일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어떤 메일에는 날씨와 관련된 인사를, 또 다른 메일에는 과거 상호간의 추억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어렵게 본문을 쓴 뒤에는 또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어떤 끝 인사를 써야 건방진 인상을 주지 않을지 걱정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추측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의 메일함을 한 번 들여다보자. ‘안녕하세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등으로 시작하는 메일이 정말 하나도 없는지, 또는 ‘항상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마무리 인사말이 없는 메일이 있는지….

그런데 ‘사실 이런 게 뭐가 문제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의를 충분히 갖추는 것은 조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조사에 따르면 그러한 e메일 한 통을 읽을 때마다 평균 12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문제는 비슷한 메일이 한두 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십 통의 메일을 읽느라 시간이 쓸데없이 낭비된다.

쓰는 사람은 더욱 심각하다. 앞뒤 인사말을 쓰느라 평균 3분 이상의 시간이 쓰인다니 말이다. 이런 의전, 물론 하면 좋다. 받는 사람이 ‘대접 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우리 업무의 본질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리더의 결단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 조직의 e메일에는 불필요한 인사말을 쓰지 말고 개조식(個條式 : 앞에 번호를 붙여 중요한 요점이나 단어를 짧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용건만 보낸다’는 식의 선언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어떤 직원은 용건만 쓰는 ‘버릇없는 직원’이 되지 않는다.

◆‘불필요한 일’에 대한 서로간의 성찰

일하는 방식에 대한 개선과 함께 각자 행하는 업무 중 불필요한 일은 없는지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보자. 한 부서의 막내 직원은 주간 회의가 끝나면 항상 하는 일이 있다. 정리한 회의록을 인쇄해 파일함에 보관하는 업무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받은 ‘첫 일’이어서 애착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해당 부서의 팀장이 묻는다. “우리 팀 책장에 꽂혀 있는 회의록 파일은 무슨 용도인가요.”

잠깐의 침묵 후 4년 차 대리가 답한다. “예전 본부장님이 팀 내에 어떤 이슈가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회의하고 나면 내용을 정리해 가져다 달라고 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회의록 파일의 탄생 비화를 듣던 팀장과 팀원들은 그 설명을 듣고 머쓱해진다.

해당 일을 지시한 ‘과거 본부장’은 3년 전 다른 부서로 옮겼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부서의 막내 직원은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일을 ‘과거부터 해 왔기 때문에’ 계속해 왔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얼마 안 되는 금액이긴 하지만 불필요한 인쇄비용이 계속 나가고 있었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팀 공유 공간의 한편에 꼭 필요한 책이 아닌 누구도 찾지 않는 회의록만 쌓여 갔던 것이다.

◆‘무관심 업무’를 줄이기 위한 소통

이런 일이 ‘과연 조직에 얼마나 많을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각자의 일에 이런 낭비 요소가 하나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그래서 각자의 업무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 제한된 근무시간 안에 더 나은 성과를 내야만 하는 게 지금의 노동환경이니까.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업무가 진짜 필요한 일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 한 가지 방법이 카노모델(KANO Model)을 활용한 분석이다. 애초 이 모델은 제조사가 신상품을 기획할 때 ‘해당 제품이 만들어지는 게 소비자에게 정말 가치를 주는지’ 판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툴이다.

이를 자기 업무 분석에 적용해 ‘고객 가치’를 중심으로 업무를 다시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업무 목록을 쭉 적는다. 목록을 적을 때는 최대한 상세하게 단위 업무까지 쓰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을 고객, 즉 해당 업무를 통해 가치를 얻는 업무 수혜자의 관점에서 분석해 본다. 이 일을 계속했을 때 상대가 만족하는지, 별 영향은 없는지, 오히려 불만족을 느끼지 않는지 정리해 본다.

그리고 반대 관점에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가 좋아하지 않을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별 영향이 없을지, 해 주지 않으면 싫어할지 고민해 본다.

이 과정을 거치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5개의 카테고리로 정리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상대는 싫어하는’ 부분이 발견된다.

이를 ‘역효과 업무’라고 칭한다. 혹은 자기는 시간을 내 그 일을 하고 있지만 상대는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일도 있다. 이를 ‘무관심 업무’라고 한다.

다이어트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역효과 업무와 무관심 업무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확보된 시간에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업무’나 잘할수록 상대가 좋아하는 ‘만족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또는 시간이 없어 제대로 하지 못했던 ‘감동 업무’를 찾아 더 열심히 생산성을 높이면 된다.

워크 다이어트는 물론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해지기 위해 정말 좋아하는 음식도 참아 가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헬스장 러닝머신에 몸을 싣기도 한다.

업무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기 일의 군살을 의도적으로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제한된 시간 안에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5호(2018.10.22 ~ 2018.10.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