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가치 사슬의 모든 단계를 세분화…플랫폼화·아웃소싱 형태로 나타나
비즈니스 모델 혁신, ‘언번들링’에 답이 있다
[한경비즈니스 칼럼=양백 IGM 세계경영연구원 대표] 기업의 경영에 관여되는 변수는 너무도 많다. ‘자원 기반 이론’의 대가인 제이 바니 유타대 석좌교수는 수없이 많은 변수로 엮인 기업의 성패를 ‘재수(luck)’라고 부르며 논문을 쓰기도 했다. 만일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기업을 다루는 모든 분야의 학문이 흔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와 상황을 지금도 연구, 적용하고 있다. 필자는 기업의 성패는 각 기업이 가지고 있는 핵심 자원(핵심 역량)을 잘 파악하고 이를 중심으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해 최적의 자원 분배를 만드는 결과라고 믿는다. 다들 이 생각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 대응의 기본 ‘비즈니스 리모델링’

기업이 치열한 경쟁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환경의 영향에 대한 적응과 미래를 위한 대응이다. 너무 빤한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지금 아마존의 성과는 2~3년 전 이미 결정됐다”며 본인의 철학을 얘기했다. 미래를 위한 대응이 이미 과거에 발생했고 지금 당장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미세 튜닝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한 대응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자. 기업의 크기에 따라 6개월·1년·3년·5년 등 미래를 규정하는 시간적 프레임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자는 정확한 자신만의 기간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대응은 기존 비즈니스를 리모델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입체적으로 비즈니스를 행하는 패턴을 재해석하고 다가오는 미래 환경에 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시작을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한번쯤은 고민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의 처음은 어디서부터일까. 필자가 권하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첫 단계는 기업이 속한 산업 내의 모든 밸류 체인을 분석하고 체인 내 각 단계별로 세분화한 비즈니스를 구상하는 것이다. 즉 ‘가치 사슬의 언번들링(unbundling : 개별 가격 매기기)’ 분석을 실시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플랫폼 구조를 살펴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콘셉트 중 하나가 된 플랫폼은 네트워크화하는 상거래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 받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인을 만나 플랫폼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공통점을 느낄 때가 많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아마존, 공유경제의 아이콘이 된 에어비앤비·위워크·우버 등만 플랫폼 기업이라고 국한하는 것이다. 회사가 제공한 장(場)을 통해 다수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거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 전체를 플랫폼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사고를 조금 더 확장하면 플랫폼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거래가 발생하는 모든 접점에 플랫폼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치가 교환되는 기업 행동의 모든 접점에는 플랫폼이 형성될 수 있다. 구매자와 공급자 간 다양한 가치 사슬에도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심지어 기업 내 밸류 체인상에서 각 노드마다 플랫폼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회사마다 구매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이 구매 방법을 외부화하거나 아니면 소모성자재구매(MRO)로 사업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즉 자신만의 구매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구매 과정을 완전 개방하는 개방형 구조의 구매 플랫폼을 디자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플랫폼화의 노력을 우리는 가치 사슬의 언번들링이라고도 일컫는다. 이는 과거 하나의 기업이나 기능이 담당하던 업무 영역을 쪼개 다른 기업이나 기능에 맡기는 활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가 직영했던 영업망을 딜러 체제로 바꾸는 것, 보험 회사의 직영 영업 사원을 일반 에이전시화하는 독립법인 대리점(GA) 시스템, 전자제품 회사가 직영 대리점 체제에서 마트나 양판점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기업 활동 차원의 언번들링이다.

◆기업 차원의 언번들링은 곧 ‘아웃소싱’

기업 활동 차원의 언번들링은 외부적 시각으로 볼 때는 언번들링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지만 기업 관점에서 보면 아웃소싱으로 인식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오던 기업의 관행이기도 하다. 간혹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이키나 샤오미처럼 마케팅과 기획 기능만을 내부화하고 모든 것을 아웃소싱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산업구조 차원의 언번들링은 특정 산업을 구성하는 기능 중 일부를 별개 사업으로 분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한국전력이 발전소에서부터 수요자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담당해 왔지만 최근에는 민간 부문이 발전소를 소유·운영하기도 한다. 언번들링을 통해 에너지 그리드 사업으로 진출하려는 많은 스타트업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즉 에너지의 유통 과정을 언번들링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이 바로 산업구조 차원의 언번들링이다. 산업구조 차원의 언번들링은 독점적 산업구조를 경쟁 체제로 전환해 산업 전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기업이 반발하는 가운데 산업 정책적 차원에서 도입되는 사례가 많다.

택배를 보내기 위해서는 특정 장소로 물건을 직접 옮기거나 택배 회사에 방문 요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방문 시간을 맞추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이러한 고객의 ‘고통점(pain point)’을 읽은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택배사와 고객 간 연결을 시도했다. Shyp이라는 회사다.

shyp의 중개 서비스는 배송할 물건을 픽업해 포장한 후 메이저 배송 업체에 가져다주는 것까지였다. 따로 배송망 인프라를 깔 필요가 없는 만큼 괜찮은 스타트업 모델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Shyp의 창업자들은 직원의 복지를 챙기고 고객의 만족을 이끌어 내는데 드는 비용을 감안하지 않은 채 여러 도시로 확장을 시도했고 결국 ‘배송 분야의 우버’가 되겠다던 또 하나의 스타트업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가운데 최근 Shyp의 단점을 보완한 서비스가 국내에 등장했다. SK에너지·GS칼텍스·CJ대한통운이 물류 스타트업 ‘줌마’와 손잡고 시작한 택배 중개 서비스 ‘홈픽’이 주인공이다.

홈픽은 고객이 택배를 접수하면 1시간 안에 방문해 물품을 찾아가는 서비스다. 빠르고 간편한 데다 택배 수거 시간도 직접 정할 수 있다. 수거된 택배는 주유소에 보관된 후 물류 대기업으로 배송된다. Shyp이 물류센터 증축에 드는 막대한 비용 등으로 실패한 것과 달리 외부 자원인 주유소를 물류센터로 활용하며 코스트를 낮추고 영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 낸 것이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새 가치 찾아야

비즈니스 모델의 첫 단계는 산업 내에서의 기업 간 활동과 기업 내 다양한 활동을 다시 세분화해 출발해야 한다. 새로운 거래와 구조를 발견하고 여기에 소비자의 고통점까지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가미된다면 당장에라도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가 발견될 것이다. 하지만 언번들링만 했다고 비즈니스의 기회가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발견된 새로운 거래 구조가 과연 소비자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해 주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매우 쉽게 한다. 고객이 느끼는 우리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교육과 컨설팅 현장에서 고객들에게 ‘당신 기업이 제공하는 가치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의 형태·기능·스펙 등을 얘기한다. 하지만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조금 다른 차원의 얘기다. 성공적 비즈니스 모델은 발견된 기회의 모멘텀에서 진정으로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할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째, 고객이 얻을 수 있는 혜택. 둘째, 고객이 제품의 소비를 통해 하고자 하는 활동. 마지막으로 고객이 갖게 되는 불만이다. 여기에서 혜택은 고객이 소비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결과, 즉 실제로 추구하는 실질적 결과다. 없어도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제품이라면 이 정도 수준은 돼야 한다며 소비자가 기대하는 혜택이다. 특정 제품의 혁신성, 멋진 디자인, 선도적 기능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보다 상위의 혜택은 ‘희망하는 혜택’이라고 부른다. 이쯤에서 모든 혜택이 나열된 것 같지만 최상의 가치를 구현하기에는 2% 부족하다. 기업이 연구하고 고민해 첨가한 혜택을 소비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그 가치가 남다른 법이다. 즉 고객은 모르지만 기업이 발견한 고객의 숨은 니즈를 충족시켜 줄 때 고객은 비로소 ‘와우’하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또 다른 차원의 가치는 제품을 소비하는 활동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 가장 기본은 제품이 가진 특성을 문제 해결에 활용할 때의 가치다. 운동기구를 구입해 운동하는 기본적 활동이다. 이 밖에 사회적 활동이 있다. 즉 멋지게 보이고 싶거나 특정한 지위를 얻기 위한 활동으로 최신의 유행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본인이 선도적이며 유행을 좇는 혁신 소비층이라는 우월한 기분을 누릴 때의 가치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이며 매우 정서적인 활동이 있다. 특정 소비자가 그들의 기분이나 추억 등을 추구하려는 매우 개인적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소비자는 제품에 대한 그들만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마지막 차원은 제품 사용을 통한 불만에서 야기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물건을 활용할 때 느끼는 장애물이나 불편함에서 오는 가치의 저하다. 특정 제품을 활용하면서 따를 위험 요소도 불만을 가져 오게 하는 요인으로 제품 가치를 저하시킬 것이다. 또한 본질적 가치를 벗어난 제품의 특성에서 오는 거부감도 불만을 증폭시키며 가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고 싶다면 비즈니스가 일어나는 모든 요소를 분할해 그 속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자. 이 가치가 소비자의 고통점을 정확히 해결하며 새로운 제안을 할 때 비로소 수익이 발생하는 영속적 모델로 진화할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2호(2018.12.10 ~ 2018.1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