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전문 지식’보다 ‘호감과 신뢰’가 우선…상대방 감정은 물론 스스로의 감정도 통제해야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비즈니스 협상에서 논리와 근거 자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인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상대의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협상을 앞두고 수많은 데이터와 자료로 무장하는 이유다. 다만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논리와 근거 자료가 협상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협상의 성공 열쇠는 논리보다 감정이다
미국 와튼스쿨 협상연구소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합의의 결정적 요소 중 전문 지식과 관련 있는 사례는 8%에 불과하다. 반면 호감이나 신뢰라는 인간적 요소가 합의를 이끌어 낸 사례는 55%였고 나머지 37%는 협상의 절차적 요소 덕분이었다고 한다. 이 수치는 논리나 근거 자료보다 사람과 절차가 합의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논리와 근거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슨 협상을 하느냐고 주장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여러분이 진행한 협상 결과를 곰곰이 돌이켜 보라.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논리나 증거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되새길 수 있는 사건도 있다.

◆심슨의 무죄 평결에 개입된 인간의 감정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 교수는 저서 ‘게팅 모어(Getting More)’에서 이 사실을 언급했다. 미식축구계 슈퍼스타였던 O. J. 심슨의 살인 혐의는 1995년 10월 열린 로스앤젤레스(LA) 배심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았다.

1994년 6월 LA 고급 주택가 브렌트우드 대저택에서 심슨의 전처 N.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남자 친구 R. 골드만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현장 근처에 있던 피 묻은 왼쪽 장갑에서 심슨을 비롯한 3명 모두의 DNA가 검출됐다. 게다가 해당 장갑과 짝이 맞는 오른쪽 장갑은 왼손잡이였던 심슨의 집에서 발견됐다. 그 외에도 결정적 증거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슨이 무죄 평결을 받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배심원 대부분이 LA 시내에 거주하는 소수 인종이었다는 점이다. 인종적 요소가 무죄 평결에 영향을 준 것이다.

배심원들은 검찰의 증언 과정에서 무려 41번이나 등장한 니그로(흑인)라는 단어 등 인종 차별적 태도에 실망했다. 백인 검찰 수사관들이 사건 현장을 발로 밟고 증거를 은폐하려는 장면이 몰카 동영상에 찍히기도 했다. 배심원들은 딱딱한 백인 검사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신뢰하지도 않았으며 결국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도리어 흑인인 심슨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반면 심슨의 변호인단은 배심원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갔다. 대표 변호사인 조지 코크란은 단 한마디로 모든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했다. “장갑이 그의 손에 맞지 않으면 그를 풀어줘야 합니다.” 검사가 핵심 증거로 제시한 장갑이 심슨의 손에 맞지 않으니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였다. 결국 재판은 심슨 측 변호인단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 사실이 협상과 관련해 암시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감정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거와 자료가 제아무리 논리적이더라도 사람의 감정이 먼저다. 머리로는 분명히 맞는 이야기이고 논리적으로 봐도 상대 요구를 수락해야 맞지만 감정이 틀어지면 논리나 증거도 소용없다. 인간의 심리 구조는 그만큼 매번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

협상 테이블에서도 상대의 행동에 변화를 주려면 먼저 상대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인식을 바꾸려면 논리나 증거 같은 이성적 요소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효과적인 것은 감정적 요소다.

◆협상 초기의 걸림돌 ‘불안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협상에서 감정의 역할에 크게 주목하는 연구자는 별로 없었다. 즉, 협상 상대와의 합의 방식에 감정이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주로 전략과 전술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양 당사자가 대안을 파악하고 고려하는 방법,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방법, 제안과 역제안을 주고받는 협상 기술을 실행하는 방법 등에 집중했다. 협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거래의 본질이라고 봤다.

반면 2010년대 들어 하버드 경영대학원이나 와튼스쿨 등에서는 협상을 심리학적 차원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협상가가 긍정적으로 느끼는지 아니면 부정적으로 느끼는지, 그런 느낌이 협상가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에 집중했다. 그 결과 협상 초기에 느끼는 불안감과 중반에 나타나는 분노, 후반에 느끼는 행복감과 실망감 등의 감정이 협상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불안감은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소풍을 앞둔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기쁘게 협상에 나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하는데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약자라면 더욱 그렇다. 준비한 논리나 근거가 제대로 먹힐지 알 수 없고 상대의 반박 논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이런 불안감에 휩싸이면 대체로 자신의 협상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자신이 가진 한계점이나 약점은 물론 상대의 장점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준비가 미흡하거나 정보 수집이 충분하지 않을 때도 이러한 감정이 발생한다.

불안감이 형성되면 협상은 당연히 불리하게 전개된다. 불안해지면 협상에 대한 포부나 기대치가 낮아진다. 기대치가 낮으면 최초 제안도 덩달아 소심하게 되고 협상 결과도 당연히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불안감은 자신감도 떨어뜨린다. 자신감 없는 태도로 상대 의견에 휘둘리게 되고 결국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불안감은 준비를 충분히 하면 해소할 수 있다. 상대에 대한 강점과 취약점, 결정적으로 필요한 요소 등을 파악해야 한다. 재무나 공급 체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협상 팀끼리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벽하지 않다. 초기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시뮬레이션, 즉 예행연습이다. 실제 상황을 가정하고 모의 협상을 하는 것이다. 같은 팀 동료에게 상대방 역할을 맡기고 미리 연습을 하는 형태다. 특히 자신의 약점이나 피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뮬레이션은 실제로 중요한 미팅이나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는 중역이나 심지어 정치인도 한다. 같이 연습할 동료가 없다면 말할 것을 종이에 적고 혼자 연습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협상 중반에 들면 또 다른 감정이 등장한다. 그것은 당황·분노·흥분 등이다. 이런 감정이 등장하는 이유는 협상 상황이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서로 ‘윈-윈’하며 부드럽게 타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내 상대방과의 의견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고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듣게 된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면서 차분하게 대응하려고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속마음은 심사가 뒤틀린다. 어느새 상대방 의견에 맞서 잘못을 지적하고 설득하며 더 나아가 대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다음엔 자신의 주장에서 물러서는 것이 일종의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이성을 잃고 감정적 싸움으로 말려들어가기 쉽다.

평소 좋지 않은 본인 습관이나 버릇이 나타날 때도 있다. 결국 흥분하거나 심지어 분노로까지 발전한다.

◆협상 중·후반엔 분노와 행복·실망감 신경 써야

협상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흥분과 분노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흔히 사용되는 ‘유체 이탈’이 효과적이다. 흥분하거나 화가 난다면 거기에 몰입하지 말고 자신을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라는 것이다. 대체로 흥분이 가라앉고 화가 누그러지는 효과가 거짓말처럼 발생한다. 감정과 행동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침묵도 요긴하다. 협상에서 침묵은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토머스 제퍼슨(3대)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 루이지애나 주를 프랑스 나폴레옹으로부터 1500만 달러에 사들이는 과정에서 수많은 반대자를 설득하며 성공적 협상으로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는 “말하기 전에 열을 세고 몹시 화가 났을 때는 백을 세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액션은 발코니로 나가는 것이다. 발코니로 나가라는 말은 어떤 일에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금 떨어지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협상 도중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는 한 발짝 물러서서 지혜를 모으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관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제 어느새 협상의 끝이 보인다. 상대와 치열한 협상을 끝낼 수 있게 됐다. 이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은 두 가지다. 첫째, 실망감이다. 협상 논의 과정이나 결과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당초 기대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속이 상하기도 한다. 때론 조직에 돌아가 결과를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걱정도 든다.

로저 피셔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감정을 흔들어라’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상대의 지저분한 술책에 대해 즉흥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짜증스럽고 실망스러운 협상에서까지 자신의 감정을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억지로 감정을 숨기려고 하기보다 적절한 범위 내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둘째 감정은 행복감이다. 협상 진행 과정이나 예상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당초 목표했던 결과치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때 협상가의 마음속에서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일어난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행복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당신은 아마추어 협상가다. 승자가 됐다고 흡족해하는 티를 내선 안 된다. 당신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고려해야 한다. 당신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는 ‘협상을 잘 못했나’는 느낌을 받는다. 본인이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조금 더 요구해야 했었는지를 두고 찜찜한 뒷맛이 생긴다. 결국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때야말로 ‘포커페이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포커페이스는 타결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도리어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이나 의사 표명을 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이번 협상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회사에 돌아가면 질책 받을 것 같아요”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상대적으로 승리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협상은 인식의 싸움이다. 상대의 인식을 바꿔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논리와 근거 자료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감정이 갖는 요소도 고려해야 훌륭한 협상을 할 수 있다. 협상 테이블에서 생기는 감정을 통제하지 않으면 거래를 망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5호(2018.12.31 ~ 2019.01.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