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재고 관리 로봇, 피킹 로봇 등 오프라인 상점을 활보하는 로봇들
‘분류에서 배송까지’ 쇼핑 시즌마다 활약하는 물류 로봇
[한경비즈니스=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중국의 광군제,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아시아의 설 연휴 등 세계 곳곳에서 매년 말부터 연초까지 대대적인 쇼핑 시즌이 이어진다. 유통 업체들과 배송 업체들의 일감이 대폭 늘어날 무렵이면 어떤 로봇들은 덩달아 바빠진다. 미래에는 로봇들이 물류 창고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우리 집까지 선물을 전달하러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류 현장에 등장한 로봇
물류 로봇은 각종 물품의 분류에서부터 포장·적재·운반·이송이란 물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일련의 로봇들을 지칭한다. 물류 작업은 지정된 상품을 골라내 포장하고 최종 목적지로 운반하는 일련의 동작들에 의해 이뤄진다. 그래서 로봇이 물류 작업을 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능들이 있다. 첫째, 작업 대상이 되는 각종 물품을 원활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포장하거나 적재용 선반과 차량에 싣고 내리는 등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작업 대상이 되는 물품의 속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작업하는 동안 물품을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해진 작업 공간 내에서 스스로 원활하게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출발지에서 지정된 목적지까지 물품을 운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류 로봇이 물품을 안전하게 다루거나 운반하는 등의 필수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하려면 로봇의 설계·제작 과정에 다양한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우선 대상 물품의 속성이나 작업 환경을 인식하는데 필요한 이미지와 소리 등 각종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다양한 센서 기술들이 사용된다. 대상 물품을 물리적으로 다루려면 다관절 로봇 팔 등 다양한 매니퓰레이터(사람의 팔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기계) 기술도 적용된다. 작업 권역 내에서 로봇이 효율적으로 물품을 운반하는 데에는 자율주행 기술도 필요하다. 주어진 작업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적합한 동작을 결정하려면 해당 분야에 적합한 인공지능(AI) 기술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물류 로봇은 단 한 종류의 로봇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로봇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물류 작업 일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을 상용화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단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모든 기능을 소화할 수 있는 로봇을 작업 공간에 적합한 크기로 만들려면 모터·기어·구동부 등 모든 부품과 기구부 등 하드웨어 일체를 지금보다 더욱 경박단소화해야 하고 심지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야 할 수도 있다. 설령 기술적으로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제작비용이 너무 커지게 되면 로봇을 사용하는 물류 사업자들이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상용화 단계에서는 각각의 용도에 맞게 상이한 기능과 구조를 갖춘 다양한 물류 로봇들이 개발되고 있다.

용도·역할에 따라 다양한 물류 로봇
현재 개발 중이거나 상용화된 물류 로봇들은 공정별 작업과 역할 등에 따라 보다 구체적인 명칭으로 불린다. 대형 트레일러나 택배 트럭 등의 차량에 물품을 싣거나 내리는 작업을 하는 로봇은 상·하역 로봇이다. 물품 운반을 전담하는 것은 운반(이송) 로봇이라고 불리고 창고 내 보관용 선반에 물품을 적재하거나 적재된 물건을 다시 골라내는 역할은 피킹(picking) 로봇의 몫이다. 보관 창고의 선반이나 소매 매장의 판매대에 진열된 물품 내역을 조사하는 로봇은 재고 관리 로봇이라고 불린다. 가정 등 최종 목적지로 물품을 배송하는 역할은 운반물의 크기·무게·거리 등에 따라 배송용 드론, 소형 화물용 라스트 마일(last mile) 배송 로봇, 대형 화물용 자율주행차량 등이 분담한다. 이 밖에 호텔·병원·백화점 등 일반 건물에서 물품 운반을 담당하는 운반 로봇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물류 로봇들은 각각 주어진 역할에 맞게 필요한 기능들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예를 들어 상·하역 로봇은 비좁은 차량의 적재함에 지정된 물품을 싣거나 내릴 수 있어야 하므로 시각 인식 기능과 물품을 다룰 수 있는 피킹용 매니퓰레이터 기능에 특화된다. 반면 재고 관리 로봇은 저장 공간에 보관된 물품 내역을 파악해야 하므로 이동을 위한 자율주행 기능뿐만 아니라 물품 내역을 파악하기 위한 시각적 이미지 등의 각종 인식 기능을 갖춰야 한다. 운반 로봇은 공장, 물류 창고, 호텔 등의 구내에서 스스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자율주행 기술과 실내 위치 측정 및 동시 지도화(SLAM : 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기술을 결부한 실내 자율주행을 핵심 기능으로 삼는다. 물론 일부 물류 로봇들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복합적인 기능을 갖출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운반 로봇이나 재고 관리 로봇에 물리적 작업을 위한 피킹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종종 물류 로봇의 활동 영역은 명칭에서 연상되는 물류업이나 일부 제조업에 국한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 선입견과 달리 물류 로봇의 활동 영역은 지금도 아주 다양하고 갈수록 더 확대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각종 물품을 옮기거나 저장하는 물류 작업이 수반되는 사업 영역은 모두 물류 로봇의 잠재적 수요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류 기업이나 제조업체 외에도 마트·백화점 등 유통 업체들과 기타 서비스 업체들 중 일부는 이미 물류 로봇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거나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조만간 물류 로봇의 활동 공간은 물류 창고나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 마트·백화점·호텔·병원·학교·공항 등 대형 건물이나 항만 등의 특정 권역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또 실외 배송 로봇이 등장하는 시점에는 물류 로봇의 활동 영역도 특정 건물을 넘어 시내 전역과 고속도로에 이르는 광범위한 공간을 모두 포함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물류 로봇 분야에서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운반·이송 업무를 담당하는 운반 로봇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자동 유도 로봇(AGV : Automated Guided Robot)으로 불리기도 하는 물류 창고 또는 공장용 운반 로봇이다. 운반 로봇 시장은 키바(Kiva)로 유명한 아마존, 일본의 옴론이 인수한 아뎁트(Adept), 오토(OTTO)를 앞세운 클리어패스 로보틱스(Clearpath Robotics) 등 서구권 기업들에 의해 개막됐지만 최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신흥국 기업들이 속속 진입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중국 CCTV 업체 하이크비전은 자회사의 운반 로봇인 하이크로봇(HIKRobot)을 중국의 대형 택배 업체인 신통택배(STO Express)에 공급하는 등 시장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인도의 그레이 오렌지 로보틱스(Gray Orange Robotics)는 ‘집사(Butler)’란 이름의 운반 로봇을 출시해 인도 물류 자동화 시장의 90%를 차지했고 해외 수출도 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능을 적용해 사람을 따라다니거나 독자적으로 근거리 배송을 할 수 있는 실외 운반 로봇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도미노피자는 벤처기업 마라톤 타깃(Marathon Tergets)과 함께 근거리 피자 배송 로봇을 개발해 시범 운행에 성공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실외 배송 로봇 개발 경쟁에는 스타십 테크놀로지스(Starship Technologies)·디스패치(Dispatch) 등 유명한 벤처기업들 외에 중국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다. 전자 상거래 기업인 중국의 징둥닷컴의 배송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징둥은 2018년 베이징·시안·톈진과 중국의 미래 도시로 불리는 슝안신구에서 근거리 배송 로봇을 이용한 배송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다. 징둥의 배송 로봇은 카메라로 신호등과 장애물 등을 감지하고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경로를 파악하며 행동반경도 약 20km에 달해 웬만한 도시 전역을 서비스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징둥은 현재 작은 박스 6개에 불과한 근거리 배송 로봇의 적재 용량도 2019년께까지 최대 30개 수준으로 늘릴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 징둥은 차량이 접근하기 힘든 격오지에 15kg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는 소형 드론 배송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고 배송 로봇을 양산하기 위해 중국의 로봇 기업인 스텝(STEP)과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상·하역 로봇이나 공장용 운반 로봇 등 상용화되고 있는 물류 로봇들은 공장이나 창고 등 특정 작업 공간 내에서만 활동하므로 대중의 눈에 쉽게 띄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물류 로봇을 보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그 첫 단추는 병원·호텔 등 대형 건물에서 일반인 대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반 로봇이 꿸 가능성이 높다. 대형 건물용 운반 로봇은 인건비가 비싼 미국·유럽·일본 등 로봇 선진국들의 주도로 개발되고 있다. 아이톤(Aethon)의 터크(Tug)는 병원에서 의약품이나 검체, 환자용 식사 등을 운반하는 로봇인데, 이미 미국·유럽의 150여 개 병원에서 500대 이상을 운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일부 호텔에서는 룸서비스 물품을 객실로 배달하는 업무에 사비오크(Savioke)의 릴레이(Relay)가 투입되고 있다.

운반 로봇을 선두로 상용화 진행
병원·호텔뿐만 아니라 백화점·마트 등 대형 유통 업체에서도 물류 로봇을 도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월마트는 진열대를 스캔해 실시간으로 가격표의 오류 여부와 재고 상태를 알려주는 보사노바(Bossa Nova)의 재고 관리 로봇을 2017년부터 일부 지역의 매장들에서 현장 시험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종업원들이 사용할 로봇과 함께 고객들이 사용할 물류 로봇의 개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국내 대형 유통 업체 중 하나인 이마트는 2018년 사람을 따라다니는 운반 로봇인 일라이의 현장 테스트를 진행했고 2018년 11월께 LG전자와 스마트 카트 개발 협약도 맺은 바 있다. 또한 이마트는 최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토르 드라이브와 함께 근거리 자율주행 배송 로봇의 시범 운영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중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물류 로봇은 실상 우리의 일상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데 그 어느 로봇보다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고령층 증가와 청장년층 감소 등 인구 구조상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들은 물류 로봇의 개발과 활용을 통해 경제적 수혜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향상이란 전략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8호(2019.01.21 ~ 2019.01.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