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왜 지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일까…아날로그 시대의 부서·직무 구별 바꿔야

‘디지털화는 이미 충분’…문제는 100% 활용하는 ‘프로세스 혁신’

[한경비즈니스= 장영재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미래 기술을 주도하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의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1996년 저술한 ‘디지털이다(원제 Being Ditial)’가 출간된 지 20년이 더 지났다. 그는 이 책에서 물리적인 세상을 원자(atom)의 세상으로, 정보의 세상을 비트(Bit)의 세상으로 전환하고 이 둘을 융합하자고 역설했다. 책이 발간된 1990년대는 인터넷 혁명의 태동기였다. 그는 당시 앞으로 전개될 미래의 모습을 제시해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유토피아적 예언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네그로폰테 교수가 디지털화를 역설한 지 20년이 더 지난 지금 왜 다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많은 기업들이 이야기하고 있을까. 과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무엇일까.

◆업무 프로세스의 혁신을 이끌다

디지털화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정보 전달의 예를 한번 살펴보자. 과거 아날로그 시절,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매개체(아톰)가 필요했다. 즉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날로그, 즉 문서란 하드웨어가 필요했다.

1990년대 인터넷 혁신을 거치며 디지털 인프라가 구축되자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된 세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혼재된 세상의 한 예는 바로 e메일이다. e메일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아날로그 시대의 우편 메일을 본뜬 것이다. 기본 아날로그 시대의 프로세스를 디지털로 재가공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직까지 많은 기업에서 정보를 문서 형태의 파일에 담아 서로 e메일로 주고받고 파일을 폴더에 다시 저장하는 등 마치 우리가 과거 문서를 우편으로 보내고 받은 우편물을 어디엔가 모아두고 정리하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프로세스는 변한 것이 없다.

1990년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단계에서 시작해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아날로그의 디지털화를 거쳤다면 최근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의 진정한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다시 문서 전달과 e메일을 사례로 돌아가 보자. 업무를 추진할 때 협업을 위해 정보 전달이 필요하다. 문서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협업과 업무 추진이 목적이다. 그러면 업무를 추진하면서 자연스럽게 굳이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구성원들에게 공유되고 그 과정 자체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지면 업무 효율이 올라갈 것은 당연하다.

필자의 연구실 20여 명의 연구원들은 이미 2년 전부터 연구실 내부 소통에서 e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간략한 메시지 정보는 슬랙이란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시작과 끝이 있는 작업은 트렐로란 작업 관리 프로그램으로, 정보를 남기는 작업은 에버노트 노트앱으로, 굳이 문서화해 남겨야 하는 문서들은 모두 드롭박스 클라우드 솔루션을 활용한다. 작업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서 따로 e메일을 주고받지 않아도 그 과정이 파악되고 업무의 맥락이 그대로 남겨져 후임자가 훗날 같은 작업을 진행할 때 굳이 선임자에게 정보를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에는 출장 후 관련 증빙 자료와 영수증 등 사후 행정 처리를 위한 자료를 담당 부서에 e메일로 전달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출장 준비 때부터 프로세스가 고스란히 에버노트와 트렐로에 남겨져 행정 담당자가 에버노트와 트렐로 링크에만 접속하면 모든 자료를 다운 받을 수 있다.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의 이러한 서비스는 대규모 정보기술(IT) 투자 없이 저렴한 비용에 사용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부분의 업무 프로세스도 혁신했다. 바로 트랜스포메이션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새로운 기술의 활용이라기보다 디지털 기술의 효용을 100% 활용하기 위한 프로세스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는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하는 것이었다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기술 관점에서 과거 아날로그 형태의 답습으로 인한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제거하며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 적합한 프로세스를 만드는 작업이다.

‘디지털화는 이미 충분’…문제는 100% 활용하는 ‘프로세스 혁신’

◆스마트 팩토리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차이점은?

그러면 제조에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무엇일까. 최근 스마트 팩토리와 관련해 전통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해 생산성을 올리는 방식이 많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기존 중소 제조 기업의 스마트 팩토리 사업도 기존 제조 설비에 ICT 인프라를 도입해 생산성을 올리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제조에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존 스마트 팩토리와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기존 스마트 팩토리는 기존 제조 프로세스의 틀을 유지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자동차 공장의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를 만들 때 설계 부서는 설계만 담당하고 제조 부서는 설계된 제품을 생산만 담당했다. 그리고 영업마케팅·서비스는 설계와 생산과 별개의 조직처럼 운영됐다.

이러한 방식은 아날로그 시대, 즉 디지털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의 정보 교환과 공유가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조직 운영을 위해 필요한 방식이었다. 즉 조직을 여러 부서로 나누고 각 부서는 독립적인 형태로 업무를 추진하는 형태는 아날로그 시대의 효용을 극대화한 방식이다. 1990년대 IT 혁신 이후 전사적자원관리(ERP)가 도입되고 공장에 생산관리시스템(MES) 혹은 공급망관리(SCM) 등이 도입돼 전산화됐지만 조직의 업무 형태는 그리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혁신한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형태를 자동차 품질관리 사례를 기반으로 알아보자. 자동차 제조사에 고객이 품질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자. 문제의 원인은 크게 설계상의 문제, 제조 문제, 고객이 제품을 잘못 사용해 생긴 문제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날로그 프로세스에서는 제품 설계는 설계팀이, 제조는 공장에서, 고객은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거의 수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고객이 차량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다양한 센서를 통해 수집할 수 있다. 이미 유수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의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차량이 문제가 있는지 능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즉 설계·제조·사용자 측면에서 이미 디지털화는 완성됐다. 하지만 이들 프로세스는 아직 아날로그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즉 설계 정보는 차량 설계 부서에서만 다루고 있고 공장의 데이터는 공장에서만 분석하고 있다. 차량 사용자 데이터는 차량 애프터서비스 부서에서 따로 관리하고 있다. 즉 아날로그 시대의 부서와 직무 구별로 데이터가 따로 관리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서는 이러한 아날로그 형태의 프로세스를 혁신해 디지털 기술을 100% 활용할 수 있도록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을 혁신하는 데 목표가 있다.

‘디지털화는 이미 충분’…문제는 100% 활용하는 ‘프로세스 혁신’

<그림>과 같이 각 부서별로 나눠 관리하던 데이터가 통합된다고 하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제품의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계의 원인인지, 제조상의 문제인지, 사용자가 잘못 사용해 생긴 불량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함께 모으고 분석하고 관련 부서도 함께 통합해 의사결정을 명료하고 효율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또한 차량의 문제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면 하자가 있는 부품을 어떻게 조달하고 재설계 또는 생산해 생산과 영업에 차질이 없을지 판단하는 것도 주요 태스크 중 하나다. 이때 기존 SCM 솔루션은 품질 관련 정보와 설계·생산 정보를 연동해 최적의 공급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제품 공급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한 세상에서는 설계 정보는 제품수명주기관리(PLM) 데이터에, 생산 정보는 생산 정보 시스템(PIS)에, 물류 시스템 관리는 SCM에, 기타 고객 정보 관리는 고객관계관리(CRM)에 분리돼 관리됐다. 즉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전산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기능과 목적 중심이다. 기존 PLM·PIS·SCM·CSM을 통합해 관리가 아닌 목적 중심으로 트랜스포메이션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 삽질로 토목공사를 진행했지만 어느 날 포클레인이 등장했다. 하지만 포클레인의 진정한 기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토목공사 전체 프로세스가 혁신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포클레인과 포클레인 기사가 있어도 과거 삽질하던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개혁하지 않으면 포클레인은 오히려 쓸모없는 골칫거리만 될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1호(2019.04.22 ~ 2019.04.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