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시장 환경 급변하는 IT 산업, ‘다툼’보다 ‘협력’에서 길 찾는 기업들



[한경비즈니스=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구글과 아마존은 오늘날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의 대표 경쟁 기업으로 손꼽힌다. 구글은 인터넷 검색, 아마존은 온라인 커머스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성장 배경이 다른 두 기업이지만 최근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스마트 스피커 등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구글 vs 아마존, 애플 vs 퀄컴’…‘친구와 적 사이’ 프레너미 전성시대

미디어 콘텐츠 역시 구글과 아마존이 첨예하게 경쟁하는 비즈니스다. 4G로 대변되는 이동통신 네트워크의 고도화, 클라우드 컴퓨팅 등 IT 인프라가 고속 성장하면서 미디어 콘텐츠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TV는 물론 PC와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로 미디어 콘텐츠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수요도 급증했다. 이에 따라 구글과 아마존 역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미디어 서비스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기업은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는 물론 서로를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일례로 구글의 크롬캐스트에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서비스가 탑재되지 않았고 반대로 아마존의 파이어 TV에는 구글의 유튜브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구글과 아마존은 지난 4월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두 기업은 자신들의 장치에서 서로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여전히 구글과 아마존은 경쟁 관계지만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애플과 넷플릭스 등 새롭게 등장하는 미디어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다툼보다 협력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처럼 구글과 아마존처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한편으로 공동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정치·경제 등 각종 영역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관계를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frenemy)라고 표현하다. 특히 최근 IT 산업에서는 여러 프레너미 사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IT업계 전반에 확산되는 프레너미 관계
최근 IT 산업에서 프레너미가 활발하게 등장한 것은 빠른 시장 환경 변화와 관련이 깊다. 글로벌 IT 시장의 미래 흐름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스타트업이 등장해 기존 대기업을 위협하는가 하면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기업들이 유망 시장을 두고 경쟁 관계로 대립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각종 첨단 기술로 무장한 신생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면서 과거와 달리 비즈니스 현장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IT가 접목되고 있다.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는가 하면 일부 시장은 빠르게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시장을 주도해 온 기업들도 새롭게 뛰어든 경쟁자의 위세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라도 단시간 내 독자적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퍼졌다. 한때 시장을 선도했던 유수의 기업들도 파괴적 혁신의 희생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를 목격한 많은 기업들은 외부 기업과의 협력으로 부족한 경쟁력을 보강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됐다.

윈도 운영체제(OS)로 글로벌 IT 산업의 선두 주자가 된 마이크로소프트(MS)는 경쟁 OS로 떠오른 리눅스를 극도로 경계했다. 스티브 발머 MS 전 최고경영자(CEO)는 “리눅스는 암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PC를 넘어 모바일과 클라우드 컴퓨팅 등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면서 MS의 역량만으로는 이에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안드로이드 등 리눅스 기반의 OS가 스마트폰·가전·데이터센터 등으로 저변을 확대하는 반면 MS는 PC 시장의 성공에만 안주하는 낡은 대기업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마침내 MS는 리눅스 적대 전략을 수정했다. 발머 전 CEO의 뒤를 이어 취임한 사티아 나델라 CEO는 리눅스의 기술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는 2016년 ‘MS는 리눅스를 사랑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발표하고 MS 제품에 리눅스 기술을 활용했다. 또한 클라우드 컴퓨팅 등 여러 분야에서 레드햇(Redhat)과 VM웨어(VMware) 등 리눅스 전문 기업과의 협업을 강화했다. 게다가 리눅스와 마찬가지로 경쟁 OS로 간주했던 애플의 맥 OS에도 대표 서비스인 오피스 소프트웨어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한 MS는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소니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왔다. 두 기업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라는 뛰어난 콘솔 게임기로 게임 시장을 양분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과 5G 시대에 접어들면서 구글과 아마존 등이 게임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구글은 스타디아(Stadia)라는 클라우드 스트리밍 게임 서비스 출시로 게임 사업을 신규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다른 IT 기업들 역시 클라우드 스트리밍 기술로 MS와 소니의 오랜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시장 환경이 급변하자 결국 두 기업도 프레너미를 맺었다. MS와 소니는 AI·이미지 센서 등 클라우드 스트리밍 게임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여전히 이들 기업은 게임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해 협력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한층 복잡해지는 IT 사업 환경 역시 프레너미 등장의 주된 요인으로 손꼽힌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 영역 구분이 비교적 뚜렷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을 복합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자사가 보유하지 않은 기술 역량까지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런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최근에는 단순 거래를 넘어 끈끈한 협력을 맺는 프레너미도 늘고 있다.

애플이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자체 개발하면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모바일 AP를 판매하는 퀄컴은 애플과 미묘한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됐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또 다른 핵심 부품인 모뎀은 여전히 퀄컴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애플은 퀄컴과의 협력을 이어 갈 수밖에 없다. 애플은 퀄컴이 부과하는 특허 로열티가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법정 공방까지 벌였다. 하지만 애플은 경쟁력 있는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퀄컴의 모뎀 기술 역량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결국 퀄컴과의 협력을 이어 가기로 합의했다.


더욱 많은 프레너미 등장 가능성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글로벌 경제의 화두로 부상하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급격한 변화가 더뎠던 기존 산업과 IT의 융·복합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많은 IT 기업들이 자동차·헬스케어 등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반면 불안감을 느끼는 전통 기업들 역시 적극적 투자를 통해 IT 역량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질수록 더욱 많은 프레너미 사례가 등장할 수 있다. 예컨대 자동차 산업에서는 구글과 우버 등 IT 기업들이 미래 자동차의 주역으로 부상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자동차 기업들 간 연대가 두드러지고 있다. 여러 자동차 기업들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기술, 디지털 지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공동 연구·개발(R&D)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차량 공유, 빅데이터 분석 등 많은 IT 기업과도 연대를 강화하는 등 이종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도 이어 가고 있다.

핵심 기술 R&D, 신사업 추진 등 다양한 목적으로 최적 파트너를 물색하고 이를 통해 사업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은 IT 산업 전반에 걸쳐 한층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동종업계는 물론 주력 사업과 아닌 분야에서도 협력 파트너를 찾기 위한 움직임도 꾸준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프레너미 관계 변화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과 분석은 미래 IT 산업 트렌드를 조망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2호(2019.07.08 ~ 2019.07.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