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IT 발달로 사라진 직업군 ‘자전거 메신저’, 기술만 앞서가고 패러다임 이해는 걸음마 단계

[한경비즈니스=장영재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지난 6월 학회 참석과 초청 강의 차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독일 하노버를 방문했다. 첫 방문지인 리스본에 도착해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용한 일반 택시에 바가지요금을 당한 후 리스본에서는 우버만 사용하게 됐다.
‘리스본의 우버, 하노버의 택시’…새로운 관점 이해해야 공생의 길 열린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 내 출장 땐 늘 우버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우버 서비스에 익숙해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첫 경험이었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우버의 장점을 알게 된 기회였다.

포르투갈어를 전혀 몰라도 운전사와 아무런 문제없이 서비스에 필요한 정보들, 즉 탑승지·목적지·요금 정보가 스마트폰으로 교환돼 이동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탑승 후 이동해야 할 경로 정보와 운전사가 운전하는 경로가 동시에 실시간으로 전달돼 혹시 다른 길로 갈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탑승 전에 요금이 결정돼 우버 운전사도 요금을 더 받기 위해 우회할 인센티브도 없다. 오히려 정해진 경로로 최대한 빨리 이동하는 것이 운전자에게 득이자 고객의 득이기도 하다. 게임 이론 교과서에 나오는 정보의 상호 교환으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실증 사례다.

고객은 서비스 이용 후 우버 운전사에게 평점을 매기고 이러한 평점은 사전에 공개되기 때문에 서비스에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직접 경험한 리스본의 우버 운전사들은 미국 운전사들에 비해 거의 몇 배나 친절하고 서비스도 좋았다. 호텔에서 공항으로 이동할 때 이용한 우버 운전사는 필자가 탑승하자 자신이 영어를 잘 못해 미안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어설프지만 상냥한 영어로 이야기하고 리스본 지도와 엽서까지 기념품으로 줬다. 우버 운전사들끼리 서로 경쟁이 심해 평점 관리에 많이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절한 서비스를 해야 할 이유, 즉 별점 공개란 정보 ‘시스템’을 통해 ‘인센티브’로 서비스의 질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교제나 규율보다 인센티브다.


독일 하노버의 독일 택시
리스본 출장 후 프랑스를 거쳐 독일 하노버로 이동했다. 아직 독일에는 우버 영업이 불법이어서 버스와 택시로만 이동했다. 하노버의 택시는 대부분 중형 벤츠다. 외관은 물론 내부도 깔끔하게 정리된 택시에 운전사의 영어도 유창하다. 왠지 운전사들의 태도도 믿고 쓰는 독일 기계 장비처럼 신뢰가 갔다. 전통적인 택시 서비스의 정석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은 매우 불편했다.
‘리스본의 우버, 하노버의 택시’…새로운 관점 이해해야 공생의 길 열린다
필자가 독일어를 모르니 지명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한번은 택시에서 현금이 없어 한국 카드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이도 되지 않아 현금 인출기를 찾아다니는 해프닝도 있었다.

포르투갈과 독일, 어쩌면 서유럽 국가들 중 두 극단의 특성을 지닌 국가가 아닐까 한다. 한쪽은 남유럽의 자유분방함, 규율과 법규가 다소 느슨하고 행정에서의 투명성도 다소 떨어지는 국가인 반면 다른 쪽은 세계에서 법규와 규율을 몸서리칠 정도로 따지고 행정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운영한다. 사람의 기질도 국가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이러한 특색은 택시 운영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리스본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택시 바가지요금이 만연하다고 들었다. 반면 독일은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으로 택시 운전자의 질을 세계 최고로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택시 서비스에서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포르투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있는 게임 체인저가 등장한 것이다. 규제와 관리의 문제를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시스템’과 ‘인센티브’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사실 필자는 ‘리스본의 우버’와 ‘독일의 택시’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리스본의 우버를 선택할 것이다. 외국 여행을 가더라도 같은 조건이면 우버 서비스가 있는 곳을 선택할 것이다.

1996~2005년 사이 뉴욕시의 자전거 사고 통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체 자전거 인구는 변동이 없지만 사고율이 2000년을 기점으로 46%나 감소했다. 도대체 2000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990년대 미국 내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는 자전거 메신저라고 불리는 문서 배달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때는 도심 내 자전거 사용자의 대부분은 이들 메신저들이었고 당당한 직업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뉴욕에선 이들을 거의 찾을 수 없다. 2000년 이후 기업들의 문서·정보 이동이 전산화되면서 이들의 일자리가 서서히 줄어들어 이제는 자전거 메신저란 직업군 자체가 사려졌다고 할 수 있다. 문서를 자전거로 배달하는 이들이 사라졌으니 자전거 사고율이 급감한 것은 당연하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사라진 직업군은 이들 자전거 메신저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들 직업군이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정보 전달을 담당하는 단순노동에 제한됐다면 다가오는 미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문적으로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 아니 아미 확대되고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정보의 부재, 둘째는 정보의 복잡성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IT 혁명은 정보의 부재를 해결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정보가 없어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판단이 어려운 경우는 사라지고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까, 걸어갈까 같은 단순한 의사결정은 이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버스 운행 시스템을 보면 간단히 해결된다. 카카오 택시는 택시를 잡으려는 고객과 어디에 가면 고객들이 있을지 고민하는 택시 운전사의 정보 부재를 해결하며 생긴 서비스다. 1990년대와 2000년대 IT 혁명의 핵심은 정보의 부재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이제 21세기 기술은 복잡한 정보를 분석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머신러닝과 같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다.


뉴욕의 자전거 메신저 그리고 인공지능
AI는 단순히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고 인간의 직관력과 같은 능력을 학습해 사람과 유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딥마인드도 AI 기술을 기후변화와 헬스 케어 사업 등에 접목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 전문가의 의사결정을 모사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제 의사·변호사·회계사와 같은 복잡한 정보를 처리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직업을 위협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와 같이 이제는 인간과 기계가 대결하는 상황일까. 하지만 앤드루 맥어피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대결이 아닌 공생이란 대안을 제시한다. 이제까지 인간의 판단·행동, 더 나아가 철학에서 머신으로 대변되는 AI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인간의 복잡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사회 모든 분야의 새로운 기회가 창조된다.

가정이 바뀌는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다. 최근 이슈가 되는 4차 산업혁명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력은 사람이나 가축으로만 나올 수 있다는 가정을 뒤집어 증기기관으로 사람의 노동력을 대신한 수 있다는 패러다임이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자원이 에너지를 활용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가정을 뒤집는 전기가 탄생하고 이를 통한 대량생산의 길이 열리며 2차 산업혁명이 탄생했다. 그리고 정보 확산의 가정이 바뀌며 탄생한 것이 3차 산업혁명이다. 이제 복잡한 의사결정의 한계를 AI와 함께 인간이 넘어서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우리는 1990년대 IT 혁신에 공학적인 성공을 거두며 인터넷 인프라와 차세대 이동통신의 리더십을 달성했다. 하지만 공학적 산물로 통해 탄생한 공유경제, 플랫폼 비즈니스 등 개념적 혁신과 새로운 사회와 경제적 패러다임의 이해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청년 실업이나 국내 기업들의 최근 위기 상황도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 AI 기술로 열린 4차 산업혁명이 긍정적인 혁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알파고보다 더 게임을 잘하는 바둑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의 존재를 인정하는 새로운 관점이다.

새로운 관점을 이해하면 인간과 공생하는 새로운 일자리 창조와 산업 창조가 가능하다. 무작정 전통적인 일자리 보호를 위해 새로운 물결을 저지하는 것도 해결 방안은 아니다.

물론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 경제로 대표되는 사업들이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버 창업자나 운영자들의 도덕성 문제나 에어비앤비의 서비스 문제 그리고 플랫폼 사업자의 이윤 독식 등 많은 문제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를 새로운 패러다임의 부정, 즉 새로운 물결의 부정으로 연결돼서는 절대 안 된다.

기업과 국가의 운영, 사회적 이슈들이 이러한 AI와 같은 혁신적 기술의 이해와 함께 이들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 없이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거나 반대로 과거 구한말 쇄국정책과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새로운 물결을 거부만 한다면 뉴욕시의 자전거 메신저처럼 전락할 수도 있다.

규제와 관리는 전통적인 개선 방법 이외에 21세기 세상에는 혁신 방법이 많다. 무조건적인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지만 반대로 시대의 흐름을 억지로 막는 것도 문제다.
‘리스본의 우버, 하노버의 택시’…새로운 관점 이해해야 공생의 길 열린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5호(2019.07.29 ~ 2019.08.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