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메이저 리그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부터 공급 사슬망의 전략적 결정까지

[한경비즈니스=장영재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인간과 기계의 공존에서 기계 역할의 핵심인 기계와 인간의 분업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결정을 기계가 사람보다 월등히 잘할 수 있을까.
‘복잡한 의사결정은 기계에’…BMW의 공급망 최적화 알고리즘
1996년 9월 10일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다음과 같은 내셔널리그 서부 지역 시즌 리그 랭킹을 발표하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도 아직 실낱같은 우승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비록 자이언츠가 리그 꼴찌를 하고 있지만 남은 22경기를 모두 승리해 81승 81패를 기록하고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LA 다저스가 남은 경기를 전패해 78승 84패로 시즌을 마감한다면 자이언츠가 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이처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리그의 남은 경기를 고려해 플레이오프 진출 혹은 탈락 여부를 계산한다. 현재 리그 1위인 팀이 남은 경기를 패배한다는 가정 아래 리그 꼴찌인 팀이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해 1위 탈환의 가능성이 있으면 현재 하위 팀이라도 리그 플레이오프에 희망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위 팀의 시즌 종료를 선언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9월 10일 상황에서 자이언츠는 실제로 우승 희망이 있는 것일까.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포함한 어느 언론 매체도 당시 자이언츠가 시즌 아웃됐다고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미국 UC 버클리대와 조지아텍의 산업공학과 경영공학 학생들은 자이언츠의 시즌 종료를 학교 인터넷 페이지에 게재했다. 이들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비웃듯 자이언츠가 남은 전 경기를 다 승리하고 다저스가 모든 경기를 다 패하더라도 자이언츠는 이번 시즌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무슨 근거로 자이언츠의 탈락을 선언했을까.

야구에서 시즌 탈락 팀을 판별해 내는 것은 각 팀의 전략을 비롯한 메이저리그 운영상 매우 중요한 정보다. 리그 내 시즌 탈락 팀은 남은 경기에서 주전을 아끼고 신인들에게 실전 경험 기회를 주며 다음 시즌을 준비할 것이다. 탈락하지 않은 팀들은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상대 팀의 탈락 여부에 따라 전략을 짤 것이다. 어떤 팀이 시즌 탈락했느냐는 경기 입장권 판매와 방송사 광고 매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연간 운영 규모가 수백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보의 가치는 엄청나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시즌 중 탈락 팀을 명확하게 랭킹에 표기하고 스포츠 언론 매체들도 리그 탈락이 결정된 팀을 신속히 보도한다.

시즌 탈락이란 매우 중요한 정보를 두고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UC 버클리·조지아텍 학생들은 서로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과연 누가 맞을까.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승패 계산 방식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다. 리그에 속한 팀들이 리그 선두인 다저스와 꼴찌인 자이언츠 두 팀만 존재한다면 사무국의 계산 방식은 정확히 팀의 리그 탈락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계산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리그에는 이들 팀뿐만 아닌 두 개의 팀이 더 있다는 사실이다. 자이언츠의 남은 22경기는 다저스뿐만 아니라 파드리스 그리고 로키스와의 경기 일정도 포함돼 있다. 자이언츠와 다저스 경기에서 자이언츠가 승리하면 다저스는 패한다는 의미다. 무승부가 없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팀의 승리는 상대팀의 패배를 의미한다. 즉 남은 경기들 중 어떤 팀과 몇 번의 경기가 남았는지를 복합적으로 계산해야 정확히 시즌 탈락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계산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네 팀이 20경기 이상 남은 상황에서 남은 각 경기 승패를 따지면 100만 개 이상의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UC 버클리와 조지아텍 학생들은 이런 복잡한 상관관계를 수학에서의 선형계획법(linear programming)이란 방식을 통해 정확히 시즌 탈락 팀을 선정해 냈다. 찰링 코프만스와 레오니드 카토로비치가 선형계획법 연구 공로로 1975년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이 방식은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복잡한 상황에서도 신속히 최적의 솔루션을 산출할 수 있다. 경제 해석을 비롯한 복잡한 자원 배분, 투자 결정, 유통망 설계 등 경영의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되고 있다.

앞의 메이저리그 예처럼 비즈니스 현장에서 정확한 계산 하나가 엄청난 금전적 가치를 지닌 것이 더러 있다. 하지만 중요한 판단을 잘못된 직관이나 경험에만 의지해 결정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을 낭비하거나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를 실제 비즈니스 환경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유통 경로, 재고량 책정, 제품의 가격 결정 등 비즈니스의 핵심 운영에 과학적 방식을 적용해 결정함으로써 업계의 독보적인 지위를 얻은 기업도 있다.


BMW의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한 투자 최적화
BMW는 전 세계 생산망에서 어떤 생산 기지에서 어떤 제품을 얼마 동안 얼마만큼 생산해야 최적인지 과학적으로 산출해 공급 사슬망의 전략적 결정에 활용하고 있다. BMW 공급 사슬망의 전략적 계획에 관해 알아보자.

1917년 비행기 엔진 제조업체로 시작한 독일의 BMW모터스는 BMW 브랜드와 함께 미니와 롤스로이스 브랜드를 가진 글로벌 럭셔리 자동차 기업이다.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2010년 기준으로 독일·멕시코·러시아·영국·오스트리아·미국·남아프리카 등 7개국에 있는 9개의 생산 기지에서 수십 종에 달하는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BMW 브랜드의 주 제품 라인은 소형 경량급 1 시리즈, 그리고 소형, 중형인 3과 5 시리즈, 스포티한 6시리즈와 8시리즈, 대형급 7시리즈, 크로스 오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X1·X3·X5·X6 모델 그리고 스포츠카인 Z4 등 총 11개의 시리즈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각 시리즈별 엔진의 유형(디젤·가솔린)과 배기량, 본체 유형(세단·컨버터블·쿠페), 기타 품목에 따라 각 시리즈당 많게는 10개 이상의 모델을 갖고 있다. BMW 브랜드 하나만으로 100개가 넘는 제품 라인을 갖고 있다. 여기에 미니와 롤스로이스의 다양한 제품을 더하면 제품 라인의 종류는 200개가 넘는다.

BMW 본사 경영 기획팀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이러한 다양한 제품이 어디에서 얼마만큼 생산되는지 결정하는 공급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그림1>은 이러한 공급 계획의 예로 미국에서는 X5와 Z4시리즈를, 독일 뮌헨에서는 3시리즈 세단과 3시리즈 콤팩트의 생산이 계획된 것을 알 수 있다.
‘복잡한 의사결정은 기계에’…BMW의 공급망 최적화 알고리즘
이러한 제품 공급 계획은 모델별 향후 12년간 각 생산 기지별 예상 판매량을 결정한 후 각 지역 생산 기지별 최대 가능한 생산량에 맞춰 물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생산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를 거친다. BMW의 각 모델은 5년의 생산 수명을 지니므로 현 모델과 다음 세대 모델을 고려해 향후 12년간의 계획을 바탕으로 수립한다.

공급 계획의 결과는 <그림2>처럼 특정 생산 기지에서의 각 모델과 연도별 생산 계획을 나타내는 그래프로 요약된다. 이 생산 라인에서는 4가지 다른 종류의 모델(18·19·29·30번 모델)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29번 모델은 2005년 10만 대 차량 생산이 계획돼 있고 이후 2006년까지 물량이 늘어난다. 2006년 이후로는 18번과 19번 생산이 이 생산 기지에서 추가로 생산, 2007년 이후 29·18·19 등 총생산 합이 25만 대에 근접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각 생산 기지는 차량 도색 작업을 담당하는 페인트 숍과 조립을 담당하는 조립 라인으로 구성된다. <그림2>에서 굵은 점선은 페인트숍의 최대 생산량을, 가는 점선은 조립 라인의 최대 생산량을 의미한다. 각 생산 기지의 생산능력은 페이트 숍과 조립 라인의 생산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공장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대수의 총합은 이 페인트 숍과 조립 라인의 최대 생산량을 초과하지 못한다. <그림2>에서도 전체 자동차 생산량이 이 두 점선(페이트 숍과 조립 라인의 최대 생산량)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페인트 숍의 생산능력은 2007년 25만 대에서 2008년 35만 대로 증설되고 조립 라인 역시 2006년과 2012년 두 단계에 걸친 증설 작업으로 최대 40만 대까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각 생산 기지별로 어떤 제품을 어느 공장에서 어느 시점에 몇 대까지 생산할지 결정하는 게 공급 계획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결과물이다.
‘복잡한 의사결정은 기계에’…BMW의 공급망 최적화 알고리즘
수학적 최적화(mathematical optimization)
이 같은 공급 계획의 문제는 BMW뿐만 아니라 다른 자동차 기업을 비롯해 다양한 상품을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숙제다. 이에 대한 단순한 해결책은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검토해 최선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가 많다. BMW를 예로 들어보자. 200여 개의 차종을 9개 생산 기지에서 제조해야 하는 이 회사에서 어떤 차종을 어느 공장에서 생산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고려해 봐야 할 경우의 수는 약 2만1800, 즉 10이 500개 이상인 수에 달한다.

이처럼 현실적 어려움과 복잡성으로 인해 지금까지는 ‘최선의 선택’ 대신 과거의 ‘경험’과 ‘관행’에 의존해 의사결정이 이뤄져 왔다. “이제까지 A공장에서 B란 상품을 생산해 왔으니 B의 후속 모델도 계속 A 공장에서 생산한다”거나 “C공장은 이번에 출시될 D 제품의 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에 가장 근접한 곳에 있으므로 D제품은 C공장에서 생산한다”는 식의 상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에서 공급 계획이 결정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BMW는 바로 “이게 최선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공급 계획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앞에 설명한 수학적 최적화 방식을 활용한다.

BMW는 2000년 초 효율적인 공급 사슬망 계획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과거 경험에 의존해 공급망 생산 계획을 짜 왔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과학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독일 아우구스부르크대와 3년간 산학 합동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 BMW가 요구하는 최적의 공급 생산 계획을 산출할 수 있는 수학적 최적화 방식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BMW의 공급망 최적화 문제는 6만 개의 의사결정 변수와 14만 개의 제약 조건식으로 이뤄져 있다. 비록 방대한 방정식이지만 발전된 알고리즘을 통해 단시간에 최적의 값 산출이 가능하다. 문제를 단순화한 알고리즘 덕택에 6만 개가 넘는 의사결정 변수를 5200개로, 14만 개의 제약 조건을 4100개로 각각 줄이는 데 성공한 덕택이다.

그렇다면 BMW는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단순화할 수 있었을까. 문제의 특성을 이해하면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아도 답을 찾을 수 있는 방식이 있다. 18세기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를 알면 그 비밀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철학자 칸트의 고향이자 작곡가 바그너가 살았던 도시로 유명한 쾨니히스베르크에는 도시 중심을 가르는 프레겔강이 있다. 남북을 나누는 이 강에는 두 개의 섬(A와 D)이 있어 이 지역은 남북 두 지역과 두 섬에 의해 총 4개의 지역으로 나눠지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지역은 총 7개의 다리로 서로 연결돼 있다.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은 ‘7개의 다리를 각각 딱 한 번씩만 건너 모든 다리를 다 지날 수 있을까’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다리1-다리2-다리4-다리5-다리6-다리7’의 순서로 건넜다면 나머지 남은 ‘다리3’을 지나기 위해서는 이미 건넌 다리 중 하나를 한 번 더 건너야 가능하다.


즉 이 경로로는 각 다리를 한 번씩만 거쳐 모든 다리를 다 지나기는 불가능하다. 과연 앞에 제시된 조건을 만족시킬 경로는 있을까. 물론 8개 다리가 존재함으로써 각 순서의 모든 조합인 ‘8!=40320’의 경우의 수를 모두 검토하면 이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오일러는 그래프를 이용해 보다 간편하게 답을 찾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그림3>에서 오른쪽 그림은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를 그래프로 간단히 표현한 그림이다. A·B·C·D 등 네 개의 점은 각 지역을, 각 점을 연결하는 선은 각각의 다리를 의미한다. 오일러는 그래프의 모든 점이 홀수의 선으로 연결돼 있으면 모든 선을 한 번만 거치는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즉 위 문제를 풀기 위해 모든 조합을 검토해 풀 수도 있지만 오일러의 증명을 이용하면 점과 선의 수만 헤아리면 간단히 답을 찾을 수 있다.
‘복잡한 의사결정은 기계에’…BMW의 공급망 최적화 알고리즘
BMW의 문제에서도 문제의 구조를 파악해 해당 문제를 단순화한 알고리즘을 개발해 엄청난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하지 않고도 간편하고 빠르게 답을 구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냈다. BMW는 또한 이 공급 계획에 필요한 데이터를 따로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데이터베이스와 이 알고리즘을 연동해 수요 변화나 생산 기지의 생산량 변화에도 신속히 최적의 공급 계획을 수립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수학적 최적화의 가치는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질문에 “예, 이게 최선입니다”라는 답(적어도 수학적 측면에서 볼 때 최선의 답)을 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전까지는 문제의 복잡성 때문에 그 누구도 최선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수학적 최적화를 이용하면 바로 최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또한 최상의 답을 제시하는 의사결정은 의사결정 그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기업 구성원들 간의 신뢰 구축과 의사 결정 투명성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1호(2019.09.09 ~ 2019.09.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