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트렌드]- 위워크의 적자 지속으로 버블 논란 제기…‘시장’, ‘고객’ 관점에서 기술의 본질 평가해야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IT)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다. 첨단 기술의 등장과 시장 트렌드 변화를 기회 삼아 다양한 스타트업이 등장해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여러 스타트업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2의 닷컴 버블’ 논란 일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
많은 스타트업들이 혁신 선도자로 부상하면서 이들에 대한 기대도 한껏 커졌다. 실제로 우버·슬랙·핀터레스트·줌·리프트·페이저듀티 등 높은 성장성을 인정받은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스타트업들의 성공 스토리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논란의 도화선이 된 기업은 바로 위워크다. 위워크는 신생 기업을 대상으로 사무 공간을 임대하는 비즈니스를 추진하면서 일약 대표적인 공유 경제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창업 열풍이 거세지면서 이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위워크의 전략은 큰 호응을 받았다. 순식간에 기업 가치가 470억 달러(약 57조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상장을 추진하던 위워크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위워크의 실적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부상한 것이다. 엄청난 적자가 지속되면서 미래 생존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여기에 창업자 애덤 노이만이 구설에 오르면서 결국 위워크는 상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위워크의 상장 실패는 소위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불리는 거대 스타트업들에 대한 의심으로 빠르게 번졌다. 위워크보다 앞서 상장한 핀터레스트·리프트·우버 등 다수의 기업들이 여전히 뚜렷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발한 사업 전략, 독특한 신기술 등 유행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의 가치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다는 비판도 줄을 이었다. 스타트업들이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의미에서 언더콘(undercorn)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유전자 분석 기업 23앤드미(23andMe)나 자동차 렌털 기업 겟어라운드(Getaround) 등 다수 기업들이 연이어 직원 감축에 나서고 있는 등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과 함께 스타트업의 성지로 부상하는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고평가 논란이 이어지면서 스타트업 투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 공유 자전거 스타트업 오포가 파산하고 우버의 경쟁자로 부상한 디디추싱도 상장을 연기하는 등 이런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제2의 닷컴 버블에 대한 우려
이와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많은 이들은 제2의 닷컴 버블 사태가 도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터넷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인터넷 기반의 신기술과 서비스 제공을 내세운 기업들이 시장의 큰 기대를 받으면서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의 역량이 과대평가됐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이들 기업들은 연쇄적으로 쓰러졌다. 충격의 여파가 계속되면서 글로벌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받았다.

최근 상황 역시 닷컴 버블 시대와 닮은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닷컴 버블 시절에는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마찬가지로 현재 IT업계에서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관련 기업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인기도 급등했다. 신기술 투자가 급증하는가 하면 빅데이터·AI 등을 전사 핵심 전략으로 선언한 기업도 크게 늘었다.

닷컴 버블 시대에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거의 모든 산업의 비즈니스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인터넷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기업은 물론 인터넷·닷컴 등의 단어를 사명에 포함하는 기업들도 대거 등장했다. 이와 유사하게 현재 IT업계에서는 플랫폼 등의 경영 트렌드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 등 플랫폼 전략을 앞세운 기업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여러 스타트업들도 플랫폼을 주요 전략으로 앞세우고 있다.

닷컴 버블 시기에는 뚜렷한 매출이 없었던 기업들도 첨단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기대감으로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실제 경영 실적과 거리가 먼 지표나 주관적 판단이 기업 가치 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의 사기 스캔들로 파산한 혈액 검사 기업 테라노스는 보유 기술에 대한 객관적 검증보다 투자자들의 맹목적 신뢰가 더해지면서 가치가 90억 달러(약 11조원)까지 평가되기도 했다.

신기술의 성공 가능성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과거에 소외 받았던 기술들이 근래에 재평가받기도 하고 주목 받는 기술들도 예상과 달리 시장의 외면을 받기도 한다. 또한 신기술을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움직임이 등장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기술의 고도화가 심해지고 여러 분야 간 융·복합이 한층 심화되면서 스타트업의 미래 가치는 투자자마다 매우 상이하다.

하지만 과거 닷컴 버블 사태가 재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의 상황은 닷컴 버블 시기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닷컴 버블 사태가 가져온 충격을 생생히 경험한 투자자들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여지가 낮다는 의견도 있다.

닷컴 버블 시기에는 인터넷 열기에 편승해 충분한 사업 역량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등 각종 IT 인프라를 저렴한 비용에 사용할 수 있고 오픈 소스 등의 활성화로 각종 신기술을 활용하기 수월해지는 등 스타트업들의 기초 체력이 과거보다 탄탄해졌다는 것이다.

이전보다 스타트업의 옥석을 가리기가 한층 수월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새롭게 등장한 기업들이 충분한 검증 과정 없이 엄청난 자금을 투자 받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지속적 업력과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유망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스타트업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닷컴 버블 시기에 증시에 상장한 기업들의 평균 업력이 4~5년이었던 것과 달리 우버·슬랙·핀터레스트 등 최근 상장 스타트업들의 업력이 10년을 넘는 등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기업들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의 업력이 늘어났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가치를 판단할 수 있고 기업들 역시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닷컴 버블 시기와 달리 스타트업들의 매출 규모가 크고 다양한 사업을 복합적으로 추진하는 곳도 많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연쇄적 기업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주장도 있다.

첨단 기술의 본질 파악 노력이 강조될 것
지금의 상황이 제2의 닷컴 버블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향후에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는 화려한 기술 등 외연적 모습이 주목 받았다면 향후에는 꾸준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가 주요 검증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벤처 투자가들도 과거와 달리 뚜렷한 성과를 창출하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늘리는 등 수익성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의 전략 방향 역시 고속 성장에서 이익 창출로 무게 중심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기술력과 규모의 확대 등 외연 강화는 물론 고객의 니즈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시장 강자로 부상한 스타트업들이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경쟁 기업들을 넘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시장과 고객의 가치 극대화에 집중한 결과였다.

최근의 논란은 스타트업을 넘어 IT업계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는 새롭게 등장한 기술에 대한 열광적 관심과 투자가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면 향후에는 시장과 고객 등 다각적 관점에서 기술의 본질을 평가하는 것이 한층 강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첨단 기술 트렌드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기술을 통해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가치를 찾는 활동과 조화를 이룰 때 혁신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6호(2020.02.29 ~ 2020.03.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