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 의료 분야 적극 도입 예상…통신·국방·교육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될 전망

[심용운 SKI 딥체인지연구원 수석연구원] 공상과학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에서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연결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비행기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여주인공이 헬기 조종법을 뇌로 다운받아 바로 헬기를 몰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러한 이야기가 최근 과학 기술의 발달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바로 뉴럴링크(neuralink)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 AI를 연결하라…‘뉴럴링크 기술’ 어디까지 왔나

디지털 초지능을 구현하는 뉴럴링크
뉴럴링크는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16년에 1억 달러(약 1186억원)를 투자해 설립한 생명공학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고 이를 통해 뇌에서 발생하는 생체 신호를 측정하고 해독해 기기를 제어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 Brain Computer Interface)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AI)을 연결해 디지털 초지능(digital super intelligence)을 구현하는 것이다.

뉴럴링크에 대한 초기 관심은 2019년 7월 인간의 뇌에 이식이 가능한 AI 칩에 대한 백서가 발표되면서부터다. 이 백서에 따르면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연결하는 초소형 칩인 뉴럴레이스를 개발하고 향후 레이저를 이용해 두개골을 뚫고 이를 인간 뇌에 심는다는 것이다.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뉴럴링크에 대한 논의는 올해 2월 머스크 CEO가 뉴럴링크가 곧 한 단계 진전된 칩 이식 기술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히면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이번 발표를 통해 2020년 안에 뉴럴링크 AI 칩을 인간의 뇌에 이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한다는 개념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일부 과학자들은 뇌 활동을 해석하고 뇌의 뉴런을 자극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왔다. 2004년 미국 브라운대 연구팀은 사지 마비 환자의 대뇌 운동 영역에 96개의 작은 바늘 모양 전극이 달린 초소형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2011년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뇌의 혈액이 몰리는 영역을 분석해 뇌에 어떤 정보가 오가는지 알아내는 기능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향후 인간의 뇌에 다양한 능력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어 2014년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팀은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에게 유타 어레이라는 미세 바늘로 이뤄진 전극 배열 칩을 뇌에 심어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제어하게 하는 실험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비록 2018년 말 해체됐지만 페이스북도 빌딩8이라는 AI 하드웨어 개발연구소를 설립하고 미래 인간 뇌와 직접 소통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 바 있다.

하지만 뉴럴링크가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대략 3가지다.

첫째, 뇌에 연결하는 전극 방식의 차이다. 기존에 이용하는 기술은 인간의 뇌에 손상을 줄 위험이 있는 단단한 바늘 형태의 유타 어레이를 이용한다. 이해 비해 뉴럴링크는 뇌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폴리모 소재의 인간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유연한 실(threads)을 이용한다.

둘째, 두뇌 칩을 뇌에 이식하는 기술의 차이다. 현재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인간의 두개골을 뚫고 전극을 삽입하는 침습형이 있고 또 하나는 전극 대신 신경 영상 기술을 사용하는 비침습형이 있다. 침습형은 유타 어레이라는 바늘 칩을 이용하기 때문에 뇌손상 우려가 있고 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데이터 양이 적다. 반면 비침습형은 침습형에 비해 뇌손상 위험이 적지만 뇌신호를 탐지하는 데 정확성이 떨어진다. 뉴럴링크는 침습적 방법을 사용하지만 뇌에 1000개가 넘는 실을 삽입함으로써 대용량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또 재봉틀 방식의 신경외과용 로봇을 개발해 뇌손상을 최소화하고 라식 수술처럼 간편하게 이식할 수 있다. 이미 뉴럴링크는 쥐와 원숭이의 뇌에 수 백 개의 전극을 삽입하는 데 성공해 안전성을 검증 받은 바 있다.

셋째, 전극을 통해 뇌 활동을 전송하고 해석하는 칩이다. 인간의 뇌와 AI가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데이터 전송 통로인 대역폭이 커야 한다. 뉴럴링크는 이를 위해 뇌파를 잘 해독하고 신호를 증폭시킬 수 있는 칩을 개발하고 이를 USB 형태의 유선 연결이 아닌 무선 형태의 블루투스로 연결한다. N1 칩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세서를 뇌에 이식하고 귀 뒤쪽에 장착한 장치(pod)와 연결한 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제어할 수 있게 한다. N1 칩은 뇌의 아날로그 신호를 증폭하고 디지털로 전환해 신호를 귀 뒤쪽 장치에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미 원숭이 뇌에 N1 칩을 이식하고 이를 통해 직접 컴퓨터를 조작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뇌에 AI를 연결하라…‘뉴럴링크 기술’ 어디까지 왔나
뉴럴링크가 적용될 가장 유망한 분야는 의료 분야다. 간질·자폐증·정신분열증·기억상실증 등 뇌 관련 질병이나 장애를 치유하는 데 사용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럴링크는 뇌의 특정 신호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촉각이나 시각적 장애가 있거나 사지가 마비된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머스크 CEO도 뉴럴링크를 뇌 질환 치료 등 의료 영역에 우선 활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20년 말까지 척수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에게 전극을 삽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뉴럴링크는 또한 인간과 컴퓨터 또는 기계 간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는 데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현재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든 정보를 손가락과 음성으로 접근하고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스트리밍 시장의 확대와 실시간 쌍방향 통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간 커뮤니케이션 정보 전달의 속도를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인간 간의 텔레파시 통신이나 생각만으로 운전이 가능한 전기자동차 테슬라에 뉴럴링크가 사용될 것이라는 머스크 CEO의 전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말대로라면 미래에는 소위 스타링크(Starlink)를 통해 눈을 깜박이면서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고 대용량 정보를 간단히 다운로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생을 꿈꾸며
이처럼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은 인간이 가진 정신적·육체적 한계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러한 꿈같은 기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기술적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뇌에 이식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안전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된다. 생체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거나 손상시킬 가능성이 낮아야 하고 인간의 뇌에 장시간 이식돼 있어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뇌에서 안전한 전극 코팅, 저전력 국소 신호 처리 등 많은 칩 설계 기술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머스크 CEO는 올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위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인간 대상 시스템 테스트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간의 뇌와 관련된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최종 승인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뉴럴링크의 등장은 또한 기존의 AI와 관련된 많은 윤리적 논의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각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강한 AI의 탄생으로 인류를 파괴하는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AI의 등장으로 인류는 새로운 기술 무기 경쟁에 돌입했다고 주장하며 데이터를 사용해 다른 나라를 통제하는 ‘데이터 식민지’를 우려하고 있다. 소위 ‘뇌 해킹’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데이터를 가진 자가 미래의 삶 자체를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I와의 경쟁을 넘어 인간과 AI의 공생을 꿈꾸고 있다는 머스크 CEO의 관점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머스크 CEO는 뉴럴링크가 AI와 인류 사이의 ‘공생 관계’를 위해 개발되고 있고 궁극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인간을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뇌에 AI를 연결하라…‘뉴럴링크 기술’ 어디까지 왔나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7호(2020.03.09 ~ 2020.03.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