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폐기 줄여라'…팔 걷은 대형 마트들
영국의 슈퍼마켓들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에 나섰다. 이는 불황의 여파로 끼니를 걱정하는 빈곤층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 업체들이 먹을 수 있는 멀쩡한 식품들을 매일 대량 폐기하고 있다는 시민들의 지적에서 시작됐다. 결정적으로 올 초 프랑스 의회가 ‘프랑스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팔다 남은 재고 식품을 버리는 대신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동물의 사료로 써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는 내년부터 400㎡ 이상 면적의 슈퍼마켓이 새 법안을 따르지 않으면 최고 7만5000유로(9336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프랑스 집권 사회당이 주도한 법안은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프랑스 국민 한 사람이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연간 20~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약 240억 원에 달한다. 정부는 법안 통과로 10년 후에는 절반 수준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서 매년 1500만 톤 쓰레기로 버려져

지난 10월 영국 내 500여 지점을 둔 대형 슈퍼마켓 체인 모리슨스는 쓰레기 절감 차원에서 팔다 남은 식품 전체를 지역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모리슨스는 최근 요크셔와 북동부에 있는 112개 매장을 대상으로 재고 식품의 기부 실험을 실시했고 내년 상반기까지 이를 전체 매장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음식은 매년 최대 3500톤이 기부될 것이며 지역 자선단체와 노숙자보호센터 등에 전달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리슨스 측은 유통기한을 넘긴 음식은 제외하고 팔리지 않은 음식 가운데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만 선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뿐만 아니라 통조림 식품 등도 포함된다.

앤드루 클라펜 모리슨스 서비스사업본부장은 “우리는 좋은 음식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매장에선 팔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갈 곳을 찾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업의 중요한 과제는 함께할 지역 커뮤니티 내의 파트너를 찾는 것”이라며 “우리가 가진 다양한 재고 식품을 잘 요리할 수 있는 단체와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모리슨스의 이 같은 결정에는 시민 단체의 영향이 상당했다. 올해 5월 영국의 캠페인 사이트인 ‘38도’는 대형 슈퍼마켓들이 팔다 남은 식품을 폐기하는 대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 주자는 온라인 청원 운동을 전개했고 이에 대해 10만 명 이상이 찬성 서명에 동참했다. 해당 캠페인을 이끈 38도의 리지 스와프 씨는 “슈퍼마켓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리는 대신 재고 식품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정부에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슈퍼마켓과 일반 가정을 통해 매년 1500만 톤의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 반면 식량 지원 기관인 푸드뱅크에 의존하는 영국인들이 2014년 기준 100만 명(트루셀 트러스트 자료)을 넘어서고 있어 “이건 아니다”는 시민들의 각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러한 때 대형 슈퍼마켓이 재고 식품을 모아 먹을 것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나눠 주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많은 시민 단체들도 이를 반기고 있다.

팔리지 않은 식재료로 요리해 판매하는 비영리단체 푸드사이클도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하기로 했다. 이 단체의 대표 메리 매그래스 씨는 “모리슨스 매장 근처 10군데 정도에 허브(사무실)가 있기 때문에 재고 식품을 기증받게 될 것”이라며 “그곳에서 받은 음식들은 외로움과 고립, 배고픔 등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공급될 것”이라며 기대를 표했다.

한편 영국 내 고급 슈퍼마켓 체인으로 통하는 막스 앤드 스펜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을 활용하기로 했다. 동물 보호 운동이나 자원봉사자 모집 등 지역 공동체 기반의 캠페인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기업 ‘네이벌리’와 손잡은 것이다.

막스 앤드 스펜서는 네이벌리가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와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 매장에 남아 있는 음식들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올릴 예정이다. 자선단체들은 앱을 이용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과일·채소·빵·케이크·식료품들의 재고량을 확인하고 이를 제공 받을 수 있게 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150개 매장이 오는 12월부터 이를 진행하고 내년 봄부터 전국 매장이 참여할 예정이다.

세인즈버리, 효과적인 방법 찾기에 175억 원 투자

막스 앤드 스펜서는 2020년까지 매장 내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을 20% 줄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8개월 동안 45개 매장을 대상으로 남는 식품을 버리지 않고 재분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실험을 진행해 왔다.

그중 하나로 지난 4월부터 바스와 브리스톨 지역의 6개 매장에서 네이벌리와 협업을 펼쳤다. 온라인 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통해 매장에서 팔다 남은 식품의 양을 업데이트하고 음식이 필요한 단체에 이를 재분배한 것이다. 해당 기간 동안 브리스톨 북서부 푸드뱅크와 어퍼 홀필드 커뮤니티 트러스트 등 지역 내 자선단체에 약 4톤에 달하는 남는 식품들을 전달했고 업체 측은 이를 전체 매장에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또 다른 대형 슈퍼마켓 세인즈버리는 가정용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5년 동안 1000만 파운드(175억 원)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세인즈버리는 우선 100만 파운드(17억 원)를 투자해 시범 마을(테스트 타운)을 선정한 후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1만5000명에서 30만 명 사이의 주민이 살고 반경 5마일 내에 세인즈버리가 있는 마을을 대상으로 테스트 타운 신청을 받기로 했다. 업체 측은 시범 마을이 결정되면 주민들과 함께 식품의 신선함을 오래 유지시키는 새로운 포장 방식 개발, 쓰레기를 통에 넣으면 팁을 주는 ‘말하는 쓰레기통’ 등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실험할 계획이다.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객원기자 vitamjk@gmail.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