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2009년 미국 연수 중 만난 한 미국인은 집에 총을 31자루를 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취미가 새로 나온 총을 사는 것과 겨울철 헌팅 시즌이 되면 사슴 사냥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자리에 참석했던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총을 5자루 갖고 있다는 친구는 그나마 적은 편이었다.
총이라고는 군복무 당시 만져 본 게 전부인 기자로서는 누구나 집에 총을 두고 있는 그런 문화가 신기하면서도 불안하기만 했다. 이들이 만약 흥분하거나 좌절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총기 사고 빈발…하루 90여 명 사망
결과는 누구나 예상하는 그대로다. 미국은 총도 많고 사고도 많은 나라다. 미국 인구는 2013년 7월 현재 3억1000만 명이다. 전 세계 인구(71억3000만 명)의 4.4%다. 하지만 총기 보유 비율은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보유한 총기(군대 보유분 제외)는 총 2억7000만 정에 이른다. 전 세계 민간인 보유 총기 6억4400만 정의 42%다. 4.4%의 미국인들이 세계 전체 총기의 42%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사고 건수도 압도적이다. 대형 총기 사건을 기록하는 웹 사이트 ‘매스 슈팅 트래커’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4명 이상 사상자를 발생시킨 총기 사건만 총 336건에 달했다. 이 때문에 338명이 죽고 1239명이 다쳤다.

올해는 더 늘었다. 11월 말까지 351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447명이 죽고 1292명이 다쳤다. 4명 이상 사상자를 낸 것만 카운트한 수치다. 1명 이상 죽거나 다친 것까지 다 합하면 미국에선 평균 하루 90여 명이 총기 사고로 죽는다. 이 가운데 60여 명은 총을 이용해 자살하고 있다.

비영리 민간 기구인 ‘총기안전평화마을’의 조사국장 테드 알콘은 “지난 12월 2일 미 샌프란시스코 샌버나디노에서 총기 난사로 14명이 죽고 21명이 다쳤지만 같은 날 총기 사고로 죽은 사람은 88명이나 더 있다”고 말했다. CNN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통계를 이용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내에서 테러로 사망한 사람은 3380명이었지만 총기 사고 사망자(자살 포함)는 총 40만6496명에 달했다.

상황이 이런데 미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임기를 시작한 후 총 16차례에 걸쳐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샌버나디노 사건 직전인 지난 11월 28일에도 콜로라도 주 총격 사건을 한탄하며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총격 사건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정상이 아니며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기 규제의 필요성은 정상적인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뉴욕타임스는 12월 5일자 1면에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사설을 실었다. ‘총기 창궐’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민간인이 살인을 목적으로 설계된 무기를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격분할 일이며 국가적 수치”라고 주장했다.

막강 로비력 자랑하는 NRA의 파워
하지만 이런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의회로 가면 논쟁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만다. 분명 뭔가를 해야 한다고 누구나 느끼지만 막상 뭔가를 하려면 할 게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총기 규제 논쟁의 역사는 17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은 헌법을 개정, 총기 소지를 헌법상 권리 중 하나로 못 박았다. 수정헌법 2조에서는 ‘규율 있는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정부의 안보에 필요하며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부 개척 시대 사냥을 주업으로 하면서 노상강도 등 외부의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미국인들의 자기방어권을 명문화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했지만 이 규정은 여전히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그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다. 총기 규제론자들은 총기 소유 전면 금지가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에만 소유를 제한하자고 요구한다. 총기 구입 희망자를 대상으로 신체 및 정신건강 테스트를 실시해 문제가 있으면 구매를 제한하고 돌격 소총 등 고성능 무기는 시판을 금지하자는 게 핵심이다.

첫 총기 규제는 1934년 도입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모든 총기 생산·판매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총기 유통상에게 총기 판매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두도록 했다. 알 카포네 등 갱단들이 고성능 무기로 무장하고 불법적인 사업을 벌이는 데 대한 조치였다.

1968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과 199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면서 규제가 강화됐다. 총기 구입자의 신원을 사전 조회하고 일반인들이 구입할 수 있는 총기의 종류도 제한하는 규제가 추가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총기 생산업자들의 로비가 본격화되며 규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총기 구입과 소유에 관한 한 미국은 서부 개척 시대로 다시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주도한 것은 미국총기협회(NRA)다. NRA는 1871년 남북전쟁 후 북군 출신 장교들이 주축이 돼 병사들의 사격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420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고 지난해 공식 로비 자금 3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2800만 달러를 정치자금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최대 정치자금 후원 단체로, 최고의 로비력을 자랑한다.

이들은 대선 주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공화당 주자들은 대체로 총기 규제 반대론자다. NRA 후원을 받는 벤 카슨은 “현행 총기규제법은 지금까지의 총기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총의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안고 있는 정신질환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주 상원의원은 비행기 탑승 금지자에 대한 총기 판매 금지 방안에 대해 “그 명단에 포함된 사람 중에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보통 미국인들이 많다”고 반대하고 있다.

워싱턴=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