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 유권자의 호감도 9%에 그쳐…백인층 몰표 없이는 당선 불가능}
트럼프, ‘제2의 레이건’ 되나
[워싱턴(미국)=박수진 특파원] 전 세계가 ‘트럼포비아(트럼프 공포증)’를 앓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 선거 출마 1년 만에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자 이러다 대통령까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후보는 한국에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며 ‘방위비 100%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에는 환율 조작국 지정과 45% 보복관세 부과 협박, 멕시코에는 국경 장벽 설치와 비용 청구, 유럽연합(EU)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재편 등을 언급하며 비용 분담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전 세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를 앞세운 트럼프 후보가 집권할 경우 몰고 올 핵폭탄급 파장 앞에 숨을 죽이고 대선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 후보는 과연 미국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을까. 어떤 강점이 있고 어떤 약점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트럼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아 보인다.

트럼프 후보의 본선 상대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으로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트럼프 후보와 클린턴 후보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현 상황에서의 트럼프 후보의 집권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정치 후원금, 클린턴에 크게 뒤져

어느 선거든지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돈·조직·바람이다. 트럼프 후보는 이 중 돈과 조직에서 클린턴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

미국 대선 본선에서는 후보의 정책 홍보와 개인적인 이미지 광고,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 광고 등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다. 트럼프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4900만 달러(약 566억원)를 썼다.

이 중 3500만 달러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민주당 선두 주자인 클린턴 후보가 쓴 금액(1억8700만 달러)의 26%에 불과했다.

그는 슈퍼팩을 둔 클린턴 후보를 ‘월가의 하수인’이라고 비난했다. 자신은 슈퍼팩을 두지 않고 선거를 치르고 백악관에 가서도 할 말을 하고 살겠다고 호언했다.

트럼프 후보는 자신의 개인 자산이 100억 달러에 달해 10억 달러 정도는 선거에 거뜬히 쓸 수 있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가 추산한 트럼프 후보의 재산은 45억 달러다. 이 중 10억 달러를 대선에 쓸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트럼프 후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말을 뒤집고 슈퍼팩을 만들어 선거 자금 모금을 빨리 시작하든지, 당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유명 헤지 펀드 매니저인 스티븐 뮤친을 최근 선거 자금 운영 담당자로 영입했다.

트럼프 후보가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트럼프 후보는 당 주류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트럼프 후보 대신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도 많다.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 주류와 불화를 겪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노선의 차이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는 부자 증세와 자유무역주의 반대, 이민 반대 등 공화당의 전통적인 이념과 정면 배치되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당 주류는 아무리 대선 후보지만 그런 공약으로 대선에 나가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화당 존립 근거를 부정하고 보수적 가치를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수적 가치를 내건 제3당과 3후보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히스패닉계 비호감 ‘결정타’

전문가들은 트럼프 후보의 ‘바람’을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해 6월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당시만 해도 지지율이 한 자릿수대였다.

이를 보름 만에 26%로 끌어올리며 당 지지율 1위로 올라섰고 그 후 줄 곧 선두를 유지했다.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 백인 우월 단체 KKK와의 관계 의혹, 유세장 폭력 사태 등 수많은 위기 요인들도 버텨내며 16명의 경쟁자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CNN방송이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호감도는 57%로 호감도(39%)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호감도(48%)와 비호감도(49%)가 비슷한 수준이다.

둘 다 비호감도 측면에서 대통령 후보로는 기록적이지만 트럼프 후보가 최고 기록이다. 트럼프 후보에 대한 여성(64%)과 유색인종(73%), 18~34세 연령대(70%)의 비호감도는 ‘트럼프만 아니면 다 좋다’는 의견에 가깝다.

여론조사 기관인 ‘라티노 디시즌스’가 지난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후보에 대한 히스패닉 계층의 호감도는 9%에 그쳤다. 비호감도는 무려 87%였다. 히스패닉은 미국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히스패닉에서 87%의 표를 잃는다면 백인표 67%를 얻어야 대권을 잡을 수 있다. 백인 층에서 이런 몰표를 얻은 것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의 초당파적 정치 전문 온라인 뉴스레터인 ‘사보토스 크리스털 볼’의 편집장 카일 콘딕은 “트럼프가 10% 포인트 격차로 클린턴에게 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다른 매체들의 예상도 비슷하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