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서 시험 주행 마쳐…앱으로 탑승 예약도 가능}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한경비즈니스 객원기자] 유럽의 도로들이 무인 자동차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변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은 무인 자동차를 합법화하고 있지 않지만 주행 실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허가를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피아트·푸조·아우디·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무인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자율 주행 테스트에 나서고 있고 기술 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GPS·센서로 장애물 피해 운행

국토 대부분이 평평한 지형이어서 직선 도로가 많은 네덜란드는 무인 자동차 상용화에 특히 관심이 높은 편이다. 올해 1월에는 승객을 태운 무인 전기 버스가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의 공공 도로에서 시범 주행을 마쳤다.

위팟(WEpod)이란 이름의 6인용 미니버스는 네덜란드 동부 헬더를란트 주의 바게닝겐대 캠퍼스 부근을 오갔다. 유명 식품 기지인 푸드밸리도 지난다.

도심에 비해 차량이나 보행자의 수가 비교적 적은 이 지역에서 위팟은 운전자·페달·핸들이 없는 대신 위성항법장치(GPS)와 360도 카메라, 레이더 센서를 통해 도로 위의 장애물을 피해 가며 스스로 운행했다.

운전자가 없는 대신 제어실에서 차량의 상태를 점검하며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응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무인 전기 버스 ‘위팟’, 도로를 달린다
(사진) 올해 1월 세계 최초로 공용 도로에서 시범 주행을 마친 네덜란드의 무인 버스 ‘위팟’. /연합뉴스

최대 시속이 40km(테스트 기간에는 25km)여서 고속도로나 원거리 주행은 어렵겠지만 이미 프로그램이 입력된 노선대로 다니기에는 무리가 없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평이다.

캠퍼스 내에서의 실험이 성공하면 6월부터 대학과 에데이바게닝겐 기차역 사이를 오가며 실제 운행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네덜란드 도로교통공사(RDW)의 허가도 떨어졌다. 승객들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탑승 예약도 할 수 있다. 향후에는 이 앱을 이용해 마치 택시처럼 원하는 곳에서 승하차할 수 있도록 예약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위팟은 프랑스의 차량 제조업체와 로봇 업체인 이지마일이 만든 것으로, 이번 실험은 바게닝겐대·델프트대·네덜란드응용과학연구소(TNO) 등의 합작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헬더를란트 주는 전통적인 버스가 아닌 보다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 대중교통의 대안을 찾겠다는 목표로 340만 유로(45억 원)를 투입했다.

◆트럭, 집단 자율 주행 테스트도

지난 4월에는 스웨덴·독일·벨기에에서 출발한 트럭 집단이 자율 주행 기술을 통해 네덜란드의 항구도시 로테르담까지 도착하는 실험이 진행됐다. 다프·다임러·이베코·만·스카니아·볼보 그룹까지 총 6개의 업체가 참여한 이번 테스트에서 트럭들은 600~2000km의 거리를 내달렸고 국경을 넘어 자율 주행을 시도한 최초의 시도로 기록됐다.

네덜란드 정부 주도하에 진행된 이번 실험은 ‘유럽 트럭 플래투닝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는데, 플래투닝(platooning)은 뒤차가 앞 차량과의 간격을 15m 이내로 바짝 좁히며 따라붙는 주행 방식을 뜻한다.

마치 여러 대의 객차 칸이 연결돼 있는 기차처럼 무선 랜을 통해 첫째 트럭의 속도와 이동 루트를 후발 차량들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 때문에 차량마다 운전자가 탑승해 있지만 그저 자동차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만 하면 될 뿐이다.

이처럼 차량 간의 간격을 좁혀 이동하면 고속도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앞차 때문에 뒤차의 공기저항이 줄어들어 최대 10% 정도 연료 감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사고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돌발 상황에서도 사람이 대처하는 것보다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네덜란드 정부는 밝혔다.

자율 주행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내년에는 로테르담 항구에서 트럭을 출발시켜 유럽 각지로 물건을 운반하는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유니레버와 주요 슈퍼마켓 업체들이 플래투닝 기술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다른 기업들도 경비 절감에 효과적인 집단 자율 주행에 거는 기대가 높다. 향후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한 명의 운전자가 여러 대의 트럭까지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수송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두 차량에만 운전자가 탑승하고 나머지에는 운전자가 없는 무인 주행 시스템을 비즈니스의 영역에 적용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인공지능에 따라 프로 운전사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독일의 국영 철도 업체 도이치반은 기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을 위해 무인 자동차를 도입할 계획이다. 도이치반은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처럼 고객들이 앱을 통해 자동차를 예약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

뤼디거 그루브 도이치반 대표는 독일 경제 주간지 비르츠샤프트보케와의 인터뷰에서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드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무인 자동차를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과 가까운 거리에서 이동 수단을 해결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일종의 픽업 서비스 셈이다.

그루브 씨는 구체적인 도입 시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자동 주행 기술은 향후 10년 동안 철도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고 이러한 대중교통 기술이 스마트한 도시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도이치반은 향후 기관사 없는 열차를 상용화하는 데에도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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