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고령 인구의 TV 의존율 높아…방송·광고도 시니어 타깃으로 대이동
‘TV에 빠진 일본 노인들’ 드라마 주연도 올드 스타들이 점령
(사진) 2013년 방송된 50대 주연의 후지TV 드라마 ‘안고 싶어요’ 포스터.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한일 양국의 ‘늙음’이 갈수록 화두다. 인구나 산업이나 뚜렷이 재편되는 분위기다.

멤버 구성이 바뀌면 관심 영역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늙음이 확인되는 대표적인 공간은 방송계다. 방송 내용과 등장인물의 고령화가 뚜렷하다.

특히 TV 업계가 돋보인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주인공과 줄거리 모두 확연한 고령화다. 주된 시청자의 연령 구성이 변하니 눈높이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일본인의 연령 중앙값은 46세다.

◆ TV아사히, 시니어 시프트로 화제

TV 방송은 ‘현역 주제→고령 관심’으로 전환 중이다. 요컨대 TV 업계의 ‘시니어 시프트’다. 지상파는 물론 전체 업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간병·빈집·상속·치매·무연사망·구매난민·노후자산 등 고령사회의 메인 이슈는 단골 주제다.

처음엔 다큐멘터리와 토론 방송 등 사회문제 프로그램(이하 프로)에 한정됐지만 지금은 드라마에까지 확산됐다. 연애 드라마 주인공이 20대라는 고정관념은 깨진 지 오래다. 30~40대 주연이 나오더니 이젠 50대까지 등장했다. 2011년엔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만화 영화(‘昭和 物語’)도 나왔다.

TV 업계의 시니어 시프트는 부지불식간에 완성된 느낌이다. 방송 프로든 광고 내용이든 타깃 고객은 황혼 인구로 맞춰진다. 광고주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TV 업계가 중·고령 고객을 위한 프로 제작에 몰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중·고령층의 높은 시청률 및 구매력을 감안하면 시대 세태의 단면일 수밖에 없다. 신규 드라마는 물론 재방송되는 드라마도 태반은 중·고령자가 좋아할 만한 스토리로 구성된다. 늘 비슷한 패턴인 형사·서스펜스는 물론 케케묵은 과거 명작도 자주 재방송된다. 이들이 즐겨 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가요 방송은 짧게는 20년, 길게는 40~50년 전 활약한 가수가 재등장해 시니어의 과거 소회를 거들어 준다. 버라이어티 방송도 20대는 극히 일부, 대부분은 40대부터 6070세대가 고정 자리를 꿰찬다.

최근 시니어 시프트로 화제를 모은 것은 ‘TV아사히’다. 2017년 봄을 목표로 중·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드라마를 속속 신설할 것으로 밝혔다. 드라마로는 드물게 황금 시간대에 배치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과거 지향적인 주인공·줄거리 등을 통해 역으로 청년 세대에게 다양한 세대 초월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다.

제1탄은 ‘편안한 고향’이란 타이틀의 드라마다. 종전의 히트를 친 국민 드라마 각본을 많이 쓴 유명 작가의 작품으로 일찌감치 주인공이 결정됐다. 남녀 주연의 연령은 70세를 웃돈다. 일본의 압축 성장기를 대표하는 왕년의 톱스타들이다.

내용은 희극적이다. 전성기 때 영화·드라마 업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배우·작가·음악가·예술가 등이 한데 모인 노인 전용 주택단지가 무대다. 과거 유명 스타의 집합 거주지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가 핵심 소재다. 면면은 하나같이 당대를 주름잡던 유명 스타로 구성된다.

물론 드라마에 등장하는 자녀 세대는 현재 활동 중인 청년 배우들이다. 세대 초월의 공조 출연으로 서로를 이해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이 때문에 어둡고 부정적인 소재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 방송 업계의 ‘시니어 짝사랑’

실제 시니어 인구에게 TV는 일상생활의 지적 호기심 충족 및 정보 취득의 유력한 채널이다. 고령자의 일상생활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일상 정보의 취득 채널 1순위에 오른 게 TV다. 평균 79%(남 80%, 여 78%)로 신문(64%)이나 가족(38%)보다 월등히 높다(2015년, 내각부).

정보 취득이 아닌 일상 유희를 물은 항목에서도 TV와 라디오의 지지율은 압도적이다. 83%의 응답 비율로 1위를 기록했다. 신문·잡지(55%), 동료·친구(48%), 식사·음식(47%), 여행(41%). 가족 행복(40%) 등을 확실히 제쳤다.

결국 은퇴 생활의 재미는 상당 부분이 방송 부문에서 획득된다는 의미다. 인터넷·휴대전화 등 신형 채널로 일상 재미를 찾는다는 응답은 고령 인구 안에서도 남자(21%), 60~64세(22%), 본인·부모 세대(23%), 정규직(30%) 등 일부에 한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고령 인구의 TV 의존율은 높다. 60대는 하루 257분 TV를 보지만 10대는 103분에 불과하다. 20대(127분)도 50대(177분)보다 적다(총무성). 인터넷 등 대체재가 활성화된 것도 이유지만 TV 업계의 시니어 편향성이 원인으로 자주 지적된다. 내용 자체가 고령 인구의 관심사에 집중되니 청년 세대의 선택 카드는 별로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린이·청년 세대의 박탈감과 함께 TV 시청의 이탈 흐름도 심각하다. 길게 봤을 때 고령 인구 편향적인 프로 제작이 자충수가 될 것이란 주장까지 있다. TV 업계 종사자의 자연스러운 연령 상향에 따른 자기 함몰성도 문제로 꼽는다. 본인 연령이 프로 제작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업계의 시니어 짝사랑은 계속될 전망이다. 주력 인구의 고령화에 맞서서는 생존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일본적 특징이지만 고령 인구의 경제력이 평균적으로 현역보다 낫다는 점도 성장 배경이다.

스폰서도 실질 구매로 이어질 소비 욕구를 자극하자면 이들의 입맛에 맞춘 프로에 광고비를 지출할 수밖에 없다. 즉 젊은 시청자의 잠재 매력이 낮아졌다.

제작 측면의 리스크도 고령 파워에 힘을 싣는다. 중·고령 대상의 방송은 새로운 스타 발굴의 필요와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유명 인물들이기에 기존의 명성만으로 평균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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