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프랑스·독일 이어 덴마크에도 문 열어…“과도한 포장이 쓰레기 주범”
‘가방에 담아 가세요’ 유럽서 번지는 ‘포장 제로’숍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한경비즈니스 객원기자] 요즘 유럽은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묘안을 짜내느라 분주하다. 각국 정부나 대형 유통업체의 노력 못지않게 젊은 사업가와 사회운동가들도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 400개 유기농 상품, 포장 없이 판매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북유럽 최초로 ‘포장 제로’ 슈퍼마켓이 문을 열었다. 로스 마켓이란 이름의 이 가게에서는 곡물·과일·채소·와인·비누·세제 등 400여 개의 유기농 상품들이 포장 없이 판매된다.

고객들은 직접 챙겨 온 가방이나 용기에 구입한 상품을 담아 갈 수 있고 필요하면 가게에서 판매하는 유리병이나 천 보자기, 분해가 가능한 종이 가방을 사용할 수도 있다. 와인이나 올리브 오일처럼 액체류를 담았던 병은 세척 후 다시 사용된다.

로스 마켓을 만든 두 설립자인 프레데릭과 콘스탄스 씨는 이미 프랑스와 독일에서 운영 중인 포장 제로 숍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들이 말한 프랑스 릴의 데이바이데이, 독일 베를린의 오리지널 언페키지드에서는 최근 2~3년 새 쓰레기 제로를 표방한 식료품점을 열었다.

이 업체들은 포장을 없애는 친환경적인 판매 방식을 통해 지속 가능한 슈퍼마켓 쇼핑의 표본이 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이 가게들을 방문했던 로스 마켓의 설립자들은 “덴마크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과한 상품 포장에 지쳐 있기 때문에 포장이 없는 물건을 살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았다”며 덴마크에서의 결과 역시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연합(EU) 통계담당 기구인 유로스타트는 EU 내 국민 1인이 한 해 평균 156kg의 포장 쓰레기를 배출한다고 발표했다. 덴마크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덴마크인 1명이 1년간 생산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42kg(2014년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프레데릭과 콘스탄스 씨는 무포장 마켓을 통해 과도한 상품 포장과 무분별한 음식물 낭비 상황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또한 이들은 해당 숍을 통해 유기농 식재료를 생산하는 덴마크의 지역 농민들을 지원하고 환경에 영향이 덜한 쇼핑의 개념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이보다 앞선 올해 2월, 덴마크의 한 시민단체는 코펜하겐에 재고 식품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인 위푸드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위푸드는 대형 슈퍼마켓이나 카페·식당 등으로부터 외형이 손상됐거나 유통기한이 임박해 버릴 처지에 놓인 멀쩡한 음식들을 공급받아 시중가보다 30~50% 정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위푸드는 덴마크의 슈퍼마켓 체인 중 하나인 포텍스와 단스크 슈퍼마크트 등으로부터 빵과 여러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업체는 저소득층과 음식물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다. 비록 남는 먹거리를 팔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거부감은 없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애초에 위푸드는 식품 업체들로부터 잉여 제품을 기부 받아 판매하려고 했지만 기부품에 부가세가 붙는다는 점 때문에 기존 상점들이 버린 제품을 수거해 파는 방법을 구상하게 됐다.

현재 위푸드는 자원봉사자들이 공급 업체에서 직접 구해 온 빵·과일·유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고 수익금은 최빈국 지원 활동에 사용된다. 키예르 한센 덴마크 농식품부 장관은 “음식이 단지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위푸드는 음식물 낭비에 대처하기 위한 전투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위푸드는 매장 운영을 통해 매년 음식물 쓰레기를 70만 톤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포르투갈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최상품질기한(Best before date)에 가까운 상품만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성업 중이다. 굿애프터닷컴이란 이름의 이 업체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 ‘유통기한’ 대신 ‘최상품질기한’

각종 통조림과 음료수·파스타, 반려동물 사료를 비롯해 샴푸·세제·자동차 방향제 등 다양한 제품을 갖춰 놓았고 기존의 온·오프라인 상점보다 최대 70%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이 쇼핑몰은 음식물 쓰레기 절감을 위한 캠페인의 일부로 시작됐지만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유통기한(Use by date)과 최상품질기한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에도 중요한 목표를 두고 있다.

굿애프터닷컴 운영진은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섭취해선 안 되지만 최상품질기한은 최소한의 소비 날짜를 안내해 준 것일 뿐 이 기한을 넘긴다고 하더라도 식품의 안전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판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굿애프터닷컴에서는 최상품질기한에 임박했거나 이 날짜를 지난 제품들을 대형 슈퍼마켓 체인이나 식품 가공 업체 등으로부터 제공 받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물론 포르투갈 식품 안전 기관으로부터 안전 승인을 받은 제품만 파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재 이 쇼핑몰은 오프라인 상점 진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