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75세 이상 수도권 전입 급증, 부모 모실 수 있는 전용 주택 인기
병든 부모 어쩌나…일본에서도 ‘도시로 모셔오기’ ‘노노 간병’ 등 안간힘
(사진)모셔온 부모님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 선전 문구.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고령사회는 필연적으로 간병 문제를 내포한다. 늙으면 아프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 간병 수요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사회보장이 미약하고 사각지대가 많은 사회에서 간병 이슈는 중차대한 해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빨간불은 켜졌다.

한국 노인 중 상당수가 건강 불만(44%), 의사 진단의 만성질환도 3개 이상(46%)인데다 병원 방문은 월평균 2.4회에 달하지만 수발 대상은 전적으로 가족(92%)이 도맡기 때문이다(2014년 노인 실태 조사). ‘간병 파탄→빈곤 절벽’에 성큼 다가선 셈이다.

◆ ‘간병 지옥’, 가정 파탄까지 부른다

알고리즘은 단순하다. ‘고령사회→노인 급증→노환 증가→간병 필요→금전 부담→가족 해체’의 악순환이다. 실제로 간병을 포함한 의료비는 노년 생활의 최대 난적이다. 간병 노환에 걸리면 쟁여둔 자산이 순식간에 바닥난다.

가정 파탄도 많다. 본인은 물론 자녀까지 빈곤 함정에 노출된다. 부모 간병을 위한 자녀 퇴직도 증가세다. 일본이 ‘간병 지옥’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낸 이유다.

간병 문제가 목에 찬 일본은 새로운 풍경마저 목격된다. 요컨대 간병 신풍속도다. 먼저 지방 부모의 도시 정착기다. 부모 간병을 걱정해 떠올린 유력 카드가 ‘모셔오기’다.

요즘 일본에선 ‘모셔온 고령자’가 확산 중이다. 과거였다면 부모 간병 때 자녀 세대의 고향 회귀가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도권 4050세대의 40%가 지방 출신이듯이 75세 이상 일본 노인의 수도권 전입 속도가 가팔라졌다.

그렇다고 동거는 아니다. 자녀 세대와 도보 왕래가 가능한 지역으로의 근거(近居)다. 독립생활을 보장하면서 부모 봉양의 편리성을 감안한 선택지다. 모셔오기의 배경은 다양하다. 자녀 세대의 맞벌이가 늘어 원거리 부모 간병이 힘들어진 데다 그나마 자녀 형제가 적어 간병 교대를 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용 주택(서비스 부가 고령자 주택) 공급량이 최근 5년에 4만 채 가까이 늘었다는 점도 유력한 이주 근거다. 질환 단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간병 서비스 맞춤별 제공 주택이다.

이들의 도시 정착기가 무난한 것은 아니다. 되레 도시 전입 지방 노인은 새로운 사회문제로까지 연결된다. 도시 생활에 정착하지 못해 우울증에 빠지거나 은둔적인 외톨이로 전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다.

사회 전체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현재 추세라면 수도권의 후기 고령자가 2030년 약 2배가 되는데, 이를 커버할 간병·의료 서비스의 공급 부족이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고령 복지에 추가 소용이 발생하면 가뜩이나 나쁜 지자체의 재정 상황은 더 악화된다. 따라서 오히려 수도권 고령자를 지방으로 분산·이주시키자는 제안도 힘을 얻는다.

◆ 간병시설, 입주 대기자 52만 명
병든 부모 어쩌나…일본에서도 ‘도시로 모셔오기’ ‘노노 간병’ 등 안간힘
(사진)모셔온 부모님에 대한 문제를 다룬 책.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간병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급 체계가 부족해 발생하는 새로운 풍속도도 있다. 당장 간병인 확보 전쟁이 본격적이다. 상시 간병이 붙는 공공 요양원(특별양호노인홈)에서의 사망 건수가 연간 10만 명(9만9375명, 2014년)으로 10년 전보다 3.5배 늘었지만 이를 커버할 전문화된 간병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간병 수요의 틈새를 노린 무등록 시설도 급증세다.

간병 시설 입주 전쟁도 치열하다. 요금이 저렴하고 서비스 만족도가 높은 공공시설에 입주 신청을 넣은 대기자만 52만 명에 달한다. 민간 시설이 대안이지만 경비 부담이 살인적이어서 큰 도움이 못 된다.

공공시설이 월평균 10만 엔대 초반임에 비해 민간 시설의 평균치는 월 26만 엔에 달한다. 인력난 때문에 일부 공공시설은 빈방이 있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딜레마까지 가중된다.

일본 정부가 재정 악화 때문에 ‘시설 간병→재택 간병’으로 사회보장 개혁에 나서 공급 부족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집에서 간병하기 위한 맞벌이 자녀 세대의 ‘간병 퇴직’이 이미 10만 건을 넘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노노(老老) 간병’이다. 아픈 고령자를 건강한 고령자가 돌봐준다는 개념이다. 동세대 간병인은 경험 공유, 심정 이해 등에서 간병 품질의 관리·상승에 우호적이다. 은퇴 이후 근로소득이 단절돼 잉여 인간으로 불리기 십상인 취업 희망자로서도 간병 직업은 괜찮은 선택지다.

일부 시설은 경험 부족과 체력 불안 등을 감안해 청년 간병인과 역할을 분담, 효율성과 만족도를 높인다. 식사·청소 등 가벼운 간병 업무를 전담하고 입욕·배변 등 신체 능력이 필요한 간병 수요는 청년 간병인에게 맡기는 식이다.

한편 배우자의 간병 사례도 노노 간병이다. 실제 간병 대상자와 동거 중인 가족 간병인은 남녀 각각 65% ·61%다. 간병 수급자의 연령이 75세 이상인 경우도 25%에 달한다.

새로운 간병 풍속 중 압권은 양로원으로 변한 교도소에서 확인된다. 수감자 중 12%가 65세 이상으로 숫자만 6280명이다(2015년 6월). 문제는 증가세다. 신규 수감자 중 노인 비율은 2004년 4.2%에서 2014년 10.4%로 늘었다. 수감자 의료비도 32억 엔에서 60억 엔으로 급증했다. 게다가 60세 이상 수감자 중 17%는 치매 환자다. 당연히 간병 요구가 높다.

일본 정부는 고령화가 심각한 32개 교도소(65세 이상 수감자 20% 이상)에 간병 전문가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또 전국의 70여 교도소가 노인 수감자의 질환 문제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3곳의 전용 교도소를 추가할 계획이다.

치매 방지 게임기나 체조 프로그램도 도입 중이다. 계단을 없애고 경사로를 신설하고 보행 보조기도 곳곳에 배치한다. 성인용 기저귀도 공급한다. 교도관은 노인 환자를 위한 특별 교육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