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슈퍼마켓에서 남은 채소 등 수거…과잉 음식물 쓰레기 해법으로 주목
“못생겼다고 버리지 마세요” 식재료 재활용 음식점 인기
(사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영업 중인 인스톡의 셰프가 수거한 감자를 손질 중이다. /김민주 객원기자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객원기자] 네덜란드에선 환경에 관심이 많은 젊은 사업가들의 아이디어 덕분에 버려진 식재료들이 멋진 음식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슈퍼마켓의 재고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인스톡(재고라는 뜻의 영어 )과 겉모양이 못나 폐기 처분되는 채소나 과일로 수프를 만드는 식품업체 크롬코머(‘비틀린 오이’라는 뜻의 네덜란드어)가 이에 해당된다.

네덜란드 정부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인들이 한 해 평균 매출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경제적 가치는 25억 유로(약 3조807억원)에 달한다. 인스톡과 크롬코머는 이 같은 쓰레기 과잉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껴 그린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됐다.

◆ 폐기 처분될 재료가 다시 식탁 위로

지난여름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영업을 시작한 인스톡을 최근 찾았다. 인스톡은 2014년 암스테르담의 팝업(한시적 운영) 레스토랑으로 출발했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뜨거워 현재는 암스테르담과 헤이그에 정식 매장을 열었고 조만간 위트레흐트에서도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 레스토랑은 네덜란드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알버트하인의 직원 4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음에도 팔리지 않아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식재료들을 활용할 방안을 찾다가 만들어졌다.

창업한 이들은 아예 인스톡을 비영리 재단으로 등록했고 후원금과 레스토랑 운영 이익 등으로 직원들의 인건비와 매장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인스톡 헤이그 지점은 헤이그에서도 쇼핑객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비넨호프 광장과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근처에 있어 접근성이 매우 높다.

매장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트렌디해 젊은 층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였다. 인스톡의 매장 입구에는 ‘음식을 구할 준비가 됐나요?’라는 문구와 함께 인스톡의 운영 철학과 메뉴가 적혀 있어 행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레스토랑 직원인 니나 덴 아이싱어 씨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에게 슈퍼마켓의 남은 재료로 요리한다는 것을 알려줬을 때 일부는 당황해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러한 시도에 놀라며 흔쾌히 주문한다”고 반응을 전했다.

인스톡은 메뉴를 만들 때 슈퍼마켓에서 무상으로 공급받은 재료를 80% 이상 사용하고 있고 요리에 필요한 올리브 오일이나 조미료·우유 등은 구입하고 있다. 인스톡의 직원들은 매일 아침 레스토랑 인근의 알버트하인을 돌며 전날 팔다 남은 재료들을 직접 수거한다. 매일 확보할 수 있는 식재료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스톡의 메뉴는 날마다 바뀐다.

점심시간에는 프렌치토스트, 스패니시 오믈렛, 감자튀김 등을 기본 메뉴로 판매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매일 다른 재료가 사용된다. 메뉴와 재료가 늘 바뀌기 때문에 매장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칠판 같은 대형 메뉴판을 가지고 와 충분히 읽어보고 식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 그날그날 달라지는 메뉴…가격도 저렴

식사에 앞서 생과일주스를 주문하자 니나 씨는 “조금 물러져서 팔지 못한 귤과 포도를 넣어 만들었다”고 알려줬다. 이러한 설명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주스는 충분히 달고 신선했다. 이어 주문한 프렌치토스트와 네덜란드식 빵과 샐러드 메뉴가 나왔는데 프렌치토스트를 크루아상으로 만들어 독특했다.

네덜란드식 빵에는 팔다 남은 립아이 스테이크와 가지가 가득 들어 있었고 웨지감자와 래디시·비트·콜리플라워·당근·석류 등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도 샐러드로 제공됐다. 심지어 초콜릿 한 덩어리도 토핑으로 얹어졌다.

남은 재료들을 한데 모으다 보니 오히려 더욱 다채로운 샐러드가 완성됐다. 물론 기존 레스토랑처럼 싱싱한 샐러드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감안하고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점심은 단품 메뉴의 가격이 5~6유로(약 6000~7000원) 선이라 꽤 저렴한 편이었다.

셰프인 호빈 골라드 씨는 “네덜란드와 유럽의 음식물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며 “유통기한에 임박했거나 상한 과일 옆에 놓여 있어 팔리지 못한 멀쩡한 식재료들이 많이 버려지고 있는데 이것들을 구해 음식을 만드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인스톡에서도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레스토랑처럼 정부(NVWA, 네덜란드식품소비재안전공단)의 규정을 따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셰프의 주방 테이블엔 팔리지 않아 남은 잼과 피클, 절임 반찬, 감자로 가득했다. 셰프는 이들 모두 아직 쓰이지 않았을 뿐 결코 쓸모없는 먹거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한편 네덜란드의 젊은 여성 창업가 3인(옌터·리산느·샹탈)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의 채소나 과일을 수프로 만들어 판매하는 크롬코머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경제학도였던 옌터·리산느 씨는 로테르담의 유명한 재래시장인 블라크시장을 찾았다가 장이 끝날 때 버려지는 많은 양의 먹거리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두 학생은 음식물 쓰레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던 샨탈 씨와 만나 본격적으로 새로운 수프 브랜드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 자신들과 뜻을 함께할 소비자와 농부·레스토랑·유통업체 등을 모았다. 나아가 2014년 1월 버려지는 채소와 과일을 포장용 수프로 제작하는 비즈니스를 현실화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크롬코머는 2개월 만에 약 3만 유로(3700만원)의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 돈으로 크롬코머는 총 3종류의 수프를 생산할 수 있는 첫 공정 라인을 만들었고 현재 토마토·오이·호박·비트·당근 수프 등 다양한 맛의 수프들을 만들어 네덜란드의 50여 개 소·도매점에 납품하고 있다.

크롬코머의 담당자는 “소비자가 비트 수프 하나를 먹을 때 175g의 비트를, 토마토 수프를 먹을 때는 500g의 토마토를 구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크롬코머는 유통업체와 계약, 팔리지 않는 수프도 폐기하지 않고 이를 다시 수거해 먹을 수 있는 곳에 보낸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