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미·대만 단교 37년 만에 정상 첫 통화…동북아 정세 변화 가능성
트럼프 당선인 한 달, 이어진 파격 행보
(사진) 왼쪽부터 차이잉원 대만 총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워싱턴(미국)=박수진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2월 8일(미국 현지 시간) 당선 한 달을 맞았다. 트럼프의 당선 후 행보는 그야말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당선인 신분으로 외국 정상을 자기 집에서 만나고 그 자리에 딸 이방카 트럼프와 사위 제러드 쿠슈너를 동석시켰다.

파격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은 12월 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한 것이다. 이는 당사국인 미국과 대만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있는 중국·일본·한국 등을 모두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대만 정상과 통화한 것은 1979년 양국 간 수교 단절 이후 3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협상의 달인’ 트럼프 당선인이 대중 무역 적자 해소와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대외 정책 근간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며 ‘도발’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웃사이더’ 트럼프 당선인의 우발적인 외교 해프닝이라는 시각도 있다.

◆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의도적 도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2월 2일 트럼프 당선인과 차이 총통의 통화 사실을 처음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즉각 “두 사람이 전화 통화를 하고 긴밀한 경제·정치·안보 관계를 논의했다”고 확인했다. 대만 총통부도 “두 사람이 경기 부양 촉진과 국방 강화로 두 나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공식 확인 뒤 미국 언론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대(對)아시아 외교의 파탄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기존 대중(對中) 정책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중대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중국은 그동안 수교국들에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꼽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해 왔다. ‘대만은 정식 국가가 아니니 (중국의 일부이니) 국가 간 외교 관계를 단절하라’는 뜻이다. 미국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했다. 이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미중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이번 통화가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 주변의 외교 안보 참모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대만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연초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미국과 대만 간 외교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 총통과 통화한 당일 인수위가 꾸려진 뉴욕 트럼프타워를 볼턴 전 대사가 방문했다고 전했다. 볼턴 전 대사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2월 5일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 총통의 전화를 받기까지 수 주 동안 당선자 주변에서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라인스 프리버스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와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업자(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행위원) 등 친(親)대만파 인사들이 정상간 전화 통화를 준비해 왔다는 설명이다.

◆ 통상 이어 외교·안보 갈등 커지나

하지만 이번 전화 통화가 트럼프 당선인의 즉흥적인 행동이었을 뿐이라는 시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있다. 중국은 전화 통화 사실이 전해지자 외교부 홈페이지에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번 전화 통화와 관련해 미국에 엄중하게 항의한다”고 밝혔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행동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통화가 심대한 외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자 트위터에 12월 3일 “미국은 대만에 수십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팔고 있다”며 “당선 축하 전화도 받지 말라는 것은 참 흥미롭다”고 썼다.

또 12월 4일엔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거나 미국 제품에 관세를 매기면서 또는 남중국해에 군사기지를 세우면서 미국에 그래도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없다”고 적었다.

중국이 마음대로 하는 만큼 미국도 앞으로 미국 국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양국 관계의 중대한 변화까지 생각한 전략적 노림수라기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 정도를 보여주는,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정도의 돌출 행동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 총통과 통화하기 직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중국 지도부에 미리 보낸 배경도 주목된다. 트럼프 당선인과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 수차례 상의한 것으로 알려진 키신저 전 장관은 12월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일부 미국 언론은 키신저 전 장관이 중국에 화해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측의 반응도 흥미롭다. 외교부는 미국에 항의의 뜻을 전달하면서도 비난의 화살을 대만으로 돌렸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2월 2일 “대만 측이 일으킨 작은 행동으로 국제사회에 이미 형성된 ‘하나의 중국’이란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번 통화는 대만의 장난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월 5일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지 트럼프 당선인의 개성이 아니다”고 말했다. 중국도 이번 전화 통화를 미중 간 외교 관계의 변화를 알리는 시그널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