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이스라엘·러시아·에너지정책 등 놓고 충돌…트럼프 불쾌감 표출
미국 트럼프-오바마 '정권 갈등' 어디까지
(사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워싱턴(미국)=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혁명’이다. 그는 미국 240년 역사상 양당 체제에 속하지 않는 첫 비(非)주류 출신 대통령이다. 형식적으로는 공화당이라는 틀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는 뼛속 깊이 ‘이단아’다.

트럼프의 승리는 기존 질서의 ‘붕괴’를 뜻한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세계 질서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변화에는 ‘거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곳곳에서 파열음이 울린다. 그 울림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 오바마 ‘말뚝 박기’…“평상심 잃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쿨 가이(cool guy)’로 통한다. 지난 8년 동안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냉정심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의 진지하면서도 사려 깊고 쿨한 모습은 많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요즘 평정심을 잃었다는 평가다. 트럼프 당선 이후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강경 조치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23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회원국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정착촌 건설 중단 촉구 결의안’ 채택을 놓고 표결했을 때 기권했다.

미국은 그동안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해 왔다. 미국이 이번에 기권을 선택해 유엔 안보리가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을 내도록 방조했다. 유엔 안보리가 이스라엘 결의안을 낸 것은 37년 만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에게 ‘한 방’ 먹였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하루 전(지난해 12월 22일) 의장국인 이집트에 결의안 상정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의안 채택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시그널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주일 후인 지난해 12월 29일에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을 위한 해킹 행위에 대해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고 외교 시설 2곳을 폐쇄하는 등의 초강경 조치를 발표했다.

외교정책뿐만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12월 20일 북극해에 속한 미 영해와 대서양 일부 영해에서 석유와 가스 시추를 영구히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북극해 중 알래스카 인근의 뷰포트-추크치 해와 매사추세츠 주에서 버지니아 주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31개의 해저 협곡이 대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임 대통령이 이를 뒤집지 못하도록 번복이 불가능한 법을 찾아냈다. 1953년 제정된 ‘외곽 대륙붕 이용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률은 환경보호를 위해 대통령이 시추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면 후임 대통령이 이를 번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을 폐기하거나 대체 입법을 하지 않는 한 해당 지역에서의 시추가 불가능하게 됐다. 석유·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에너지에 대한 개발과 수출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반(反)탄소 규제’ 정책 기조에 대못을 박은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을 한 달 앞두고 이런 극단적 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자신의 업적을 지키기 위해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이란 핵 협상을 타결시켰다. 2003년 협상을 시작한 지 12년 만이었다. 핵 협상 타결은 중동 평화에 큰 발걸음으로 평가받았다.

◆ 트럼프, 오바마 정책 총체적 실패로 규정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라엘과의 불편한 관계도 감내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주적’(主敵)으로 간주하고 있다. 전통 맹방인 이스라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 핵 협상을 타결했으니 반대가 적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도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희생하고 이란의 핵 야욕도 없애지 못한 형편없는 협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내내 이스라엘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2국가 해법’을 밀어붙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자치령에 이스라엘인 정착촌 건설을 확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도 6년 내내 불편한 사이였다.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 내전, 크림반도 합병 등으로 곳곳에서 세력 확장을 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등으로 맞섰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런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를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 친러시아 정책으로 중국 견제와 시리아 내전 중단, 이슬람무장국가(IS) 괴멸 등 묵은 숙제를 한꺼번에 푼다는 복안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강화는 민주·공화 주류층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는 카드다. 또 이스라엘과의 관계 회복은 이란과의 핵 협상을 폐기하고 중동 정책을 다시 짤 때 밑바탕이 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의 이런 외교 노선이 큰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 해킹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국제적 행동 규범을 위반해 미국의 국익을 해친 활동에 대한 필요하고 적절한 대응”이라며 “모든 미국인은 러시아의 행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어깃장’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28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의 선동적인 발언과 어깃장을 무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면서 “(오바마 행정부와) 순조로운 정권 이양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1월 20일(대통령 취임일)은 머지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과 동시에 오바마 흔적 걷어내기에 나설 전망이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 내정자는 지난 1월 1일 ABC방송에 출연,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과 동시에 오바마 대통령이 만든 많은 규제와 행정명령을 즉각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급한 현안이 많은 상황이어서 트럼프 당선인이 곧바로 러시아 제재 번복, 에너지 개발 금지 무력화,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추가 조치 등 오바마 대통령이 박은 ‘대못’ 뽑기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