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무역·이민 등 장벽 정치 큰 반발 불렀지만 트럼프노믹스로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

[워싱턴(미국)=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0일로 취임 한 달을 맞았다. 미국 언론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뉴욕타임스는 한 달을 즈음해 “견습생 대통령의 좌충우돌 한 달”이라고 혹평했다. 국정 지지율도 39%로 역대 대통령 중 최저로 나왔다. 외교 면에서도 그다지 좋은 평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다르다.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했던 전문가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좋은 모습이다. 주가는 뛰고 신흥국 채권 가격이 오르고 있다. 감세와 규제 완화를 기조로 한 ‘트럼프노믹스(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가 글로벌 시장에 훈기를 넣고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우선주의’를 기조로 한 경제·통상·이민·외교·안보정책으로 선거판을 승리를 이끌었다. 무역·이민·입국·일자리 등에서 장벽을 치는 ‘고립주의’ 성격이 강한 공약들이었다.

미국 내 저소득 백인 층을 겨냥한 지나친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공약이라는 비판 때문에 취임 후 대부분이 손질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공약을 실행하기 위한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대부분이 원본 그대로다.

오바마 케어 폐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멕시코 장벽 설치, 테러 위험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 한시 금지, 화석연료 규제 완화 철폐 등의 공약들이 행정명령을 통해 한 달 동안 쉴 새 없이 시행 단계에 들어갔다. 총 26건의 행정명령이 나왔다. 주말을 제외하면 하루 한 건 이상의 법령이 공표됐다.

◆‘하루 한 건’ 설익은 정책 발표가 화근

물론 부작용도 있다. 입국 금지 행정명령은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대법원 판결에서 입국 금지 행정명령이 위헌으로 최종 판결나면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 동력을 상실하게 될 공산이 크다. 주류 언론과 민주당 등의 반발 속에 오바마 케어 폐지, 환경 규제 완화, 멕시코 장벽 설치 등 굵직한 공약들도 장기 표류 상태로 남겨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 자신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너무 서둘렀다는 평가다. 백악관 내부의 파워게임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백악관에는 개혁파인 스티브 배넌 선임고문 및 수석 전략가와 켈리언 콘웨이 선임고문이 공화당 주류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과 맞서고 있다.

대통령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 선임고문은 양쪽에 적당히 거리를 두며 중도 성향을 보이고 있다. 배넌파와 프리버스파는 인사와 이슈 선점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초반은 배너파의 판정승으로 보인다.

이민 규제 강화, 환경 규제 폐지, 보호무역주의 통상정책 등 공약들이 원본 그대로 발표되고 있다. 프리버스 비서실장은 이미 언론과 정치권에서 배넌 다음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사도 깔끔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급 인사 21명 중 7명은 아직도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앤드루 퍼즈더 노동장관 후보는 불법 가정부 고용 의혹으로 인준을 받기도 전에 중도 하차했다.

외교·안보 정책의 사령탑인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 보좌관도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으로 한 달도 채 안 돼 옷을 벗었다. 플린 보좌관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고려됐던 로버트 하워드 예비역 해군제독은 대통령의 제의를 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저기서 계속 체면을 구기고 있다.

◆금융시장, 기대감 점점 커져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전후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나왔던 ‘트럼프 리스크’, ‘트럼프 탠트럼(트럼프 발작)’같은 용어들이 자취를 감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감세와 규제 완화 등 강력한 내수 부양 정책을 약속하면서 달러 약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감세와 인프라 투자 확대 등 재정 적자 공약과 함께 재정 균형도 강조했다. 서로 ‘모순된’ 경제 공약이다.

또 중국·멕시코 수입품에 대한 35~45% 관세 부과, 중국 환율 조작국 지정, 교역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한 전면 조사 등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도 전면에 내걸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공약이 세계경제에 또 다른 위기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멕시코 페소화와 터키 리라화는 사상 최저치로, 중국 위안화는 최근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각각 곤두박질쳤다. 신흥국의 주식·채권·부동산 시장에서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는 점차 기대감으로 변해 가고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최근 2만 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신흥국 주식·채권시장도 서서히 달궈지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인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러시아·브라질 등에 투자하는 신흥국 펀드에 유입되는 자금은 6주 연속 증가세다.

채권도 지난해 말부터 유입액이 유출액을 웃돌았다. 통화가치도 안정세로 돌아섰다. 브라질 헤알화는 미국 대선 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멕시코 페소화도 연중 고점을 경신하며 트럼프 당선 충격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글로벌 자본 유출→신흥국 자본시장의 붕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단 기우로 증명돼 가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주가와 기업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며 “유럽·중국·일본 등 전 세계 주요국 경기 상황도 개선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