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美·中 ‘쌍끌이 압박’에 북한 도발 주춤…북·미 직접 협상으로 이어질 수도
북핵 위기, 새 국면에 접어드나
[워싱턴(미국)=박수진 특파원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위기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중국·일본을 동원한 전방위 압박 작전에 북한이 핵실험 또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삼가는 모양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북·미 간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 등을 놓고 치열하게 갈등하던 틈을 타 지난해 1월과 9월 두 차례나 핵실험을 단행했다.

올 초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며 추가 도발을 예고했다. 실제로 지난 2월부터 네 번의 크고 작은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 관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3월 중순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순방 때 “북핵에 대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은 끝났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로 군사적 조치를 언급했고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 등 전략 자산들의 한반도행이 결정됐다.

◆美·中 북핵 저지 ‘찰떡 공조’

결정타는 4월 6~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 적자 용인을 카드로, 중국의 북핵 해결 노력을 요구했다. 중국 기업들에 대한 직접 제재 압박까지 겸했다. 그동안 북핵 제재에 미온적이었던 중국의 태도가 확 달라진 게 이때부터다.

중국은 북한의 석탄 수출선을 돌려보냈고 자국 항공사의 북한행 운항을 중단했으며 북한 관광 상품을 없앴다. 관영 언론 환구시보는 북한 경제를 지탱하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석유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4월 22일엔 북한이 추가 핵 도발을 감행한다면 미국이 북핵 시설을 타격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는 뜻까지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잇단 고강도 압박에 북한은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과 4월 25일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6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같은 대규모 도발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 대신 중거리 미사일 발사나 화력 훈련 시행 등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북한의 도발 자제로 일단 한반도 4월 위기설은 넘어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5월 9일 정치적으로 가장 예민한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후 당분간은 새 정부 출범으로 어수선한 정국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상존한다.

미국은 아직 대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4월 19일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지금 시점에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트럼드 대통령은 여세를 몰아 북한의 핵 포기 약속까지 받아내겠다는 의지다. 그는 4월 24일(현지 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대사들을 백악관에 초청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현상 유지는 용납할 수 없다”며 “안보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추가적이고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이것(북핵)은 세계에 실질적인 위협이고 세계의 최대 문제가 됐다”면서 “지난 수십 년간 눈감아 온 문제를 이제는 해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미·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일본 도쿄에서 4월 25일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한다면 북한이 감내할 수 없는 강력한 징벌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합의했다.

◆美 ‘북핵 포기 선언’까지 압박 계속할까

미국의 카드는 크게 세 가지다. 일단 중국과 국제사회를 통한 실효성 있는 압박을 계속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초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두 차례나 전화 통화를 했다. 북핵에 관해 한·미·중 간에 완전한 공조 체제가 가동되고 있다.

4월 28일 열린 유엔안보리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기존 북핵 제재 방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됐다. 국제사회가 북핵 포기를 위한 ‘물샐틈없는’ 압박 체계를 만들려는 조치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감지되면 대화도 가능하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와 경제 등에서 한·중·일 3국과 공조해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한편 직접 대화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가까운 학계 인사 등을 통해 북·미 접촉의 내용과 형식을 조율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군사적 조치도 여전히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인명 피해 가능성, 비용 부담 등으로 맨 마지막 순위이긴 하지만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으로 남겨 놓고 있다. 미국은 칼빈슨호 등 전략 자산을 당분간 한반도 인근에 계속 남겨둘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백악관은 4월 26일 이런 내용을 담은 새로운 대북정책을 상원의원 전원(100명)을 대상으로 브리핑했다. 행사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 외교·안보 당국 수장들이 참석했다.

뉴욕타임스의 외교 전문 기자인 데이비드 생어와 윌리엄 브로드는 4월 24일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전략은 “군사 및 경제면에서 압도적인 압박을 북한에 가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테스트를 중단하고 핵물질 재고를 감축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완전한 핵 포기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런 노력이 북한의 핵무기 실전 배치를 몇 년 정도 연기하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