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FOCUS 글로벌 현장]
파리·프랑크푸르트, 유럽 금융 새 중심지로…아시아에선 싱가포르 주목
흔들리는 금융 허브 런던, ‘차기 주자’는
(사진) 런던 금융 중심지 역할을 하는 카나리 워프 지역./ 로이터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 김민지 인턴기자] 차기 금융 허브 자리를 놓고 유럽 도시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금융 허브는 세계 각지의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한곳에 모여 주식과 채권을 거래하고 돈을 중개하는 시장을 일컫는다. 현재 세계 최고의 금융 허브는 영국 런던이다.

영국 지옌그룹과 중국종합개발연구원(CDI)은 2007년부터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세계 주요 금융 도시에 다섯 가지 평가 항목(△기업 환경 △인프라 △인적자원 △금융 산업 발전 정도 △평판)을 토대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를 발표해 왔다.

GFCI는 특정 도시가 금융센터로서 경쟁력이 있는지 평가하는 지수다. 지난 3월 발표된 보고서 ‘GFCI 21’에 따르면 런던은 종합 점수 782점으로 또다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세계의 금융 허브 런던은 흔들리는 모습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결 이후 런던 내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대거 이탈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GFCI 21에서 런던의 점수는 작년 9월 대비 13점 하락했다.

프랑크푸르트와 파리 등 유럽 주요 도시들은 이러한 금융업계의 움직임을 자국에 새로운 ‘금융 허브’를 유치할 기회로 보고 있다.

◆ 가시화된 런던 ‘대탈출’ 시나리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EU)과 영국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영국에 자리 잡은 금융사들은 ‘패스포팅(passporting) 권한’ 덕분에 EU 내 한 국가의 감독 기관에서 인가를 받으면 이후 복잡한 절차 없이도 다른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패스포팅 권한 또한 잃게 된다. 따라서 많은 글로벌 금융사들은 장벽이 지어지기 전에 재빨리 ‘탈(脫)런던’에 동참하고 있다.

유럽 총괄본부를 런던에 두고 있는 글로벌 금융사들은 영국·EU 단일 시장 접근권이 없어질 것을 대비해 사업부를 이전해 EU 단일 시장에 대한 접근 권리를 유지하거나 런던 사업부의 직원들을 대량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에 본사를 둔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런던 인력을 절반 수준인 3000명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JP모간 또한 브렉시트 협상 결과에 따라 런던 내 최대 400명의 인력을 유럽 지역 3개 사무소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대니얼 핀토 JP모간 기업 및 투자 금융 부문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고객들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유럽에 있는 3곳의 은행을 중심지로 삼을 것”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수백 명의 직원들을 재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진행될 협상 추이를 살피면서 장기적으로 얼마나 더 재배치할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른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다. 독일의 도이치뱅크는 4월 영국 내 직원 9000명 중 4000명을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이전할 가능성을 내비쳤고 앞서 영국의 홍콩상하이은행(HSBC) 또한 런던 직원 1000명을 프랑스로 재배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사들에 발생할 비용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중·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벨기에 소재의 싱크탱크인 브뤼겔(Bruegel)은 금융사들이 런던에서 자산을 옮긴다면 런던은 1만 개의 은행업 일자리와 2만 개의 금융 서비스업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흔들리는 금융 허브 런던, ‘차기 주자’는
◆ 차세대 금융 중심지는 어디?

런던 금융 허브를 대체할 차기 금융 허브 후보로 여러 도시가 손꼽히고 있다. 그동안 런던은 세계시장에서 높은 외환 거래 점유율을 유지하며 글로벌 외환시장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발표된 국제결제은행(BIS)의 조사에 따르면 런던의 외화 거래 업무 점유율은 약 37.1%로 분석돼 1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런던이 상실한 외환 거래 중 상당한 규모가 아시아 금융권으로 흘러가고 있다. 홍콩·싱가포르·도쿄 등 아시아 주요 금융 중심지들의 통합 점유율이 2013년부터 6%포인트가 증가해 21%에 다다랐다고 BIS는 분석했다.

블룸버그 또한 지난해 9월 런던 금융 허브를 대체할 새로운 금융 허브 후보로 싱가포르를 지목하고 싱가포르의 낮은 세율이 경쟁에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은 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의 평균 세율인 22.8%보다 낮다.

유럽에서 런던을 대체할 차세대 금융 허브 후보지로는 파리와 프랑크푸르트가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2021년까지 서부 외곽 라데팡스 지역에 7채의 초고층 건물을 지어 새로운 금융지구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월 보도했다.

프랑스가 금융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5월 ‘친EU 정책’을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프렉시트’ 추진을 공약한 극우정당의 마린 르펜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파리 금융 허브 구축 계획이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최대 장점은 유럽중앙은행(ECB) 본부와 유럽보험 당국 등 유럽의 주요 금융회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지난 5월 프랑크푸르트에 런던을 대체할 EU 거점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세 비냘스 SC 이사회 의장은 “프랑크푸르트로 이전하는 것은 산하 조직에 지장을 최소화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 ‘대한민국이 전 세계 금융 허브 경쟁에 뛰어들려면?

중국종합개발연구원(CDI)과 지옌그룹이 올해 3월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21’에 따르면 서울은 24위로 지난번 조사 결과에 비해 무려 10계단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또한 9계단 하락한 50위(626점)를 기록했다. 서울의 종합 점수는 1000점 만점에 697점으로, 2015년 GFCI 18에서 가장 높았던 6위를 기록한 후 계속해 하락 중이다.

에마뉘엘 피칠리스 맥킨지 금융부문 선임자문역은 2016년 서울 국제금융 콘퍼런스에서 금융 중심지로서 한국의 취약점을 “낮은 노동생산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이 글로벌 금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선 글로벌 금융사들이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velyn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