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美 “재협상 이미 시작” vs 韓 “협상 전 손익 관계부터 따져봐야”
한·미 FTA 개정 둘러싸고 '기 싸움'
(사진)백악관에서 6월 29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 간 상견례 및 만찬이 열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워싱턴(미국)=박수진 특파원] 한국과 미국 간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2개월 만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지 한 달도 안 돼서다. 핵심 현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다.

◆예견된 한·미 FTA 재협상 논란

한·미 FTA 재협상 논란은 사실 지난해부터 예고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한·미 FTA로 미국의 일자리 10만 개가 사라지고 대(對)한국 무역 적자가 두 배로 늘었다”고 비판했다.

또 “한·미 FTA는 미국 내 일자리를 죽이는 나쁜 협정”이라며 집권하면 곧바로 재협상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막상 취임 후 한·미 FTA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한·미 FTA 재협상 얘기가 나온 것은 4월 26일 성주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가 완료된 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비용 10억 달러는 한국이 내는 게 옳다. 한국 측에 그렇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또 “한·미 FTA는 클린턴(전 대통령)이 체결한 끔찍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협정”이라며 “재협상하거나 종결시키겠다”고 취임 후 처음 협정 재협상 이슈를 꺼냈다.

미국 워싱턴에서 6월 말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한·미 FTA는 핵심 이슈가 됐다. 당초 최대 현안이었던 사드 배치 문제가 문 대통령의 ‘결정 번복은 없다. 안심하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되자 미국 측은 곧바로 통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 간 만찬 자리에서부터 한·미 FTA 재협상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튿날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에서도 미국 측은 “한국과의 무역 적자를 두고 볼 수 없다”며 협정 재협상 이슈를 부각하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방어했고 정상회담 후 7시간 뒤 나온 공동 성명서에는 한·미 FTA와 관련된 단어가 한 자도 들어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워싱턴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 무역대표부(USTR)에 한·미 FTA 재협상 준비를 지시했다’고 하자 “한·미 FTA 재협상 문제는 합의 외의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 사항’일 뿐 양국 정상이 외교·안보·경제·사회·과학 등 각 분야에서 합의한 내용에는 빠져 있기 때문에 ‘논외’라는 것이다. 한국 대표단은 통상 압박을 잘 방어했다며
‘자축’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문제가 거기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생각한 것은 한국 측의 ‘희망 사항’이었다. 정상회담 12일 후 트럼프 대통령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명의로 한·미 FTA 개정 및 수정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공동위원회를 워싱턴에서 30일 이내에 갖자고 공식 제안했다.

협정문에는 한쪽이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하면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30일 이내에 응해야 한다고 돼 있다. 미국이 이런 내용을 근거로 협정 재협상 문제를 정부 공식 창구를 통해 공식화한 것이다.

곧바로 논란이 일었다. 미국이 원하는 게 ‘재협상이냐’는 것과 ‘언제부터 협상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 측 서한에는 ‘협정의 개정 및 수정을 위한’ 회의를 갖자고 돼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재협상이 아니라 소폭의 개정 및 수정을 위한 요구”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최대한 협상 시기를 뒤로 미루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미국은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을 보낸 다음 날 파리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한국에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6개월을 앞두고 7월 21일 백악관에 내놓은 자료에서도 “한·미 FTA 재협상을 시작했다”고 명기했다.

◆회의 명칭과 장소, 내용 놓고 기싸움

한국의 대응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재협상에 앞서 기본 사실 관계부터 찬찬히 따져보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 측에서 서한을 보내온 다음 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양국의 자동차 교역 현황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FTA가 발효된 5년 동안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한 것은 오히려 줄고 반대로 미국으로부터 한국이 수입한 것은 많이 늘었다”며 “한·미 FTA로 미국이 손해를 봤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한·미 FTA 발효 후 교역 내용을 조사·분석·평가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백운규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런 방침을 기반으로 7월 25일 미국 측에 역제안을 내놓았다. 개정 협상에 앞서 FTA의 경제적 효과를 먼저 분석해 보고 특별공동위 개최 시기는 통상교섭본부 설치와 본부장 임명 등 조직 개편이 완료된 이후에 가까운 적절한 시점으로 하자는 것이다. 회의 개최 장소도 워싱턴이 아닌 서울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측 요구대로 한·미 FTA를 재협상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크게 이익을 보게 협정 내용을 손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용으로 재협상 발언을 하고 있다”고 얘기한 배경이다.

현실적으로 큰 틀을 고치기 힘들지만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 자신을 바라보는 국내 노동자들에게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한국 측은 미국이 바라는 게 재협상보다 무역 적자 개선에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미 FTA가 무역 불균형의 직접적 원인이 아닌 만큼 협정의 틀을 손보기보다 △미국 내 제조업 투자 확대 △에너지·방산 분야에서의 수입 확대 등 FTA 틀 밖에서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해법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FTA 다음 이슈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 특별공동위가 열리면 미국은 통상 문제뿐만 아니라 안보비용 분담 얘기를 함께하면서 압박해 올 것”이라고 말했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