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아니면 도’식의 톤틴연금 인기몰이…상품 출시 3개월 만에 1만4000건 계약
고령화로 판 커지는 일본의 ‘장수 금융’ 상품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대가 바뀌면 시장도 변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딱 그렇다.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생존 모델을 요구받는 시대가 됐다. 고령사회의 개막이다. 기업 역동, 시장 성장, 정부 재정, 가계 구조 모두 내리막길이라는 전대미문의 길에 섰다. 핵심은 인구 변화다.

◆기존의 사업 방식으론 금융업 생존 불가능

어느 회사·제품이든 주력 고객(인구)의 비율과 규모가 바뀌면 매출 상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저성장·저금리와 맞물린 인구 변화는 그동안의 금융 상품이 갖던 설득력을 갈수록 훼손한다. 고령 인구의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은 장수 사회에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노후 생활의 불확실성이 되레 위험 자산의 적극 운용과 기대 수익의 추가 확보로 직결된다. 반면 후속 세대의 금융 장벽은 소득 한계와 경험 부재 등으로 점차 높아진다.

고객 변화는 수요 변화를 뜻한다. 그러면 금융회사로선 수요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상품 제안이 필수다.

실제 금융회사의 노후 자금 보장 상품은 갈수록 고도화된다. 저금리여서 예·적금만으로 노후 충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보통예금 금리가 0.001%인 일본에서 안전 자산이면서 플러스알파까지 가능한 상품은 없다. 그러니 장수에 대한 불안감이 더 높아진다. 불리지도 못하는데 더 길게 살자면 틈새가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장수 금융 상품 사례는 톤틴연금이다. 원래의 톤틴연금은 계약한 수급 연령 전에 사망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금리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계산하면 10명이 100만 엔씩 갹출 후 5명이 생존하면 200만 엔씩 분배한다. 사망한 5명은 낙(落)이다.

미쓰이스미토모는 일본 은행 중 최초로 별칭 ‘장수 연금’인 톤틴상품(종신연금보험)을 내놓았다. 미국·호주 달러로 운용되는 외화 상품으로, 엔화보다 높은 적립 이율의 종신보험이다. 엔화가 강세면 수급은 감소한다. 가입자가 대략 83세를 넘기면 이득인 것으로 추산된다.

장수 금융은 2017년부터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으며 세를 확장 중이다. 톤틴연금을 비롯한 유사 상품이 봇물 터지듯이 출시됐다. 선두 주자는 2016년 보험업계 최초로 톤틴 상품을 내놓은 일본생명보험이다.

상품명은 ‘그랜드 에이지’인데 발매 직후 3개월에 계약 건수가 1만4000건에 달했다. 예상을 초월하는 순조로운 판매 행진을 보여 화제를 모았다. 1년 동안 4만6000건이나 팔려나갔다.

◆원금 상실 위험은 감수해야

다이이치생명보험은 ‘장수 스토리’라는 유사 상품을 선뵀다. 보험료 납입 기간을 짧게 할 수 있는 선택지가 특징이다. 다이요생명보험은 간병 필요도 2 이상일 때 종신연금이 나오는 종신생활간병연금보험과 세트로 계약하는 ‘100세 시대 연금’을 출시했다.

극단적인 원금 상실을 원하지 않는 고객에겐 간보생명보험의 ‘장수의 행복’이 권유된다. 보증기간이 최장 20년으로 어떤 가입자든 최소 보험료의 70% 이상을 되받는다. 그 대신 연금 수령도 최장 30년으로 100세 이상의 장수 위험에서 비켜 선다. 이에 고무돼 노무라증권은 장수 투신을 내놓았다. 연 3% 목표 이자를 설정해 고령 고객의 눈높이에 맞췄다.

톤틴 상품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선 꽤 보편적이다. 2000년대부터 베이비부머의 장수 위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폭넓게 채택됐다. 보험료만 연 30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했다. 다만 일본에선 고객의 이해가 쉽지 않아 최근에야 상품으로 출시됐다. 보험료 원금을 상실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품의 특징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극단 배제 차원에서 날리는 돈을 줄인 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잠재 고객은 한정적이다. 납부 여유가 있는 고령 고객만이 해당된다. 당장 보유 자금을 불려야 할 대부분의 고령 가계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초저금리를 이기자면 톤틴 구조를 더 반영한 상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추세를 보건대 평균수명을 넘겨 장수하는 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들의 금전 불안을 줄일 극단성도 상품 가치가 충분하다는 논리다. 실제 공적연금의 한계 극복 차원에서 가입을 검토하는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

가령 ‘그랜드 에이지’를 50세 때 가입한 경우를 상정해 보자. 남성은 월 5만790엔, 여성은 6만2526엔의 보험료를 20년 납부하면 70세부터 평생 연간 60만 엔의 연금을 받게 된다. 연금 수급액이 납부 보험료를 웃도는 경계 연령은 남성 90세, 여성 95세 정도다. 그 이상 생존할수록 유리해진다.

다만 연금 수령 전에 사망하면 납부 보험료의 약 70%가 되돌아온다. 장수 통계를 보면 회사가 손해를 볼 확률은 낮다. 해당 연령까지의 생존 확률은 50세 남성 4명 중 1명뿐이다. 100세까지 생존 확률은 1.6%뿐이다.

수급 연금도 보험료의 1.5배 정도다. 소수의 장수 고객이 수혜를 보고 다수는 원금 수령까지 가기 어렵기에 성립되는 구조다. 그래서 계약 가능 연령은 50세 이상이다. 자력의 자산 증진 및 시간 여유가 충분한 현역 세대에겐 메리트가 낮다.

그도 그럴 것이 평균수명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2016년 남녀 80.98세, 87.14세인 일본의 평균수명은 2050년 각각 84.02세, 90.40세로 대략 3~4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은퇴 이후의 노후 생활이 길어진다는 의미다.

생전에 축적 자산이 고갈되는 불안이 구체적인 이유다. 따라서 은퇴 연령에 근접한 인구라면 고민이 깊다. 단순한 이해득실을 넘어 장수 위험을 피하자면 노려봄직하다. 특히 단신 가구에 제격이다. 자산 증여와 상속 여지가 적고 생존 기간의 보장을 두텁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원금 사수 여부다. 개별 상품마다 원금 상실 비율이 달라 충분히 해당 위험을 이해하는 게 필수다. 톤틴 구조가 설계 내용별로 마이너스 금리 사회에서 맞춤별 장수 위험의 분산 카드로 각광받는 배경이다.

◆톤틴 구조

종신연금과 유사한 제도로 1650년 유럽에서 시작됐다. 연금제도의 하나로 가입(출자)자의 사망 때마다 그 권리가 생존자에게 넘어간다. 당시 전쟁이 잦아지면서 재정난은 물론 전사자에 대한 생활 보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프랑스가 채택한 구조다.

아이디어를 낸 은행가 로렌조 톤티의 이름을 딴 상품으로, 가입자가 일정액의 원금을 내면 매년 연금 이자를 받는데, 단 가입자가 사망하면 해당 이자를 다른 생존자에게 나눠 주는 구조다. 생존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게 된다. 일찍 사망하면 원금 회수는 불가능하다.

사실 공적연금도 톤틴 구조로 운영되는 종신연금이다. 지급 개시 연령을 늦추면 수급액이 증액되기도 한다. 장수 대비 차원이다. 65세 개시 연령을 최대 70세까지 늦추면 연금이 42% 증액된다. 평균수명까지 살면 여성은 충분히 플러스, 남성도 거의 균형 수지가 맞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