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환경에 맞춰 ‘사고 전환’ 이뤄야…중장년 잡기에 집중하는 일본 기업들
‘고령사회의 트렌드세터’는 청년 아닌 중장년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고령사회는 위기이자 기회다. 입바른 말로 준비 여하에 달렸다. 출발은 과거 돈 벌던 시절 성공 경험이 왜 서서히 작동 불능, 기능 부전에 빠졌는지에 대한 재검토다.


십중팔구 배경은 고객의 변화다. 소비 욕구와 방식이 달라진 결과다. 본원적으론 고령사회 구성원이 직면한 경제 환경의 변화다. 지갑 사정의 악화와 고객 연령의 상향 등이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사업모델을 미래의 환경 변화에 조응하게끔 혁신하면 된다. 어렵지만 시대를 비켜선 사업모델은 성공과 멀다. 읽어 내고 받아들여 헤쳐 나가는 수밖에.


◆‘노스탤지어’에서 성장 동력 찾는 츠타야서점


시니어 마켓의 관심은 이 고민이 녹아든 결과다. 고령인구의 금전 사정과 내수시장의 비중 정도 등 한국과 일본 사이 차이점도 많지만 한국에서도 고령 시장이 커질 건 불문가지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의 장밋빛 전망만 믿고 무턱대고 자본을 투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 사례는 벤치마킹보다 반면교사로 좋다. 전제는 치밀하고 장기적인 고객 분석이다. 고객이 뭘 원하고 어떻게 할 때 지갑을 여는지 주도면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앞으로 개막될 한국판 고령사회의 고객 면면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 고령인구는 50%에 달하는 상대 빈곤 처지지만 1700만(1955~1975년생) 광의의 베이비부머가 가세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소비 능력은 물론 학력 수준도 높고 경험도 다양하다.


실제 한국보다 고령 속도가 빠른 일본은 소매유통의 대표주자인 편의점만 봐도 청년에서 중고령으로 고객층이 옮겨 갔다. 인터넷쇼핑·스포츠클럽 등 청년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소비 품목도 중고령의 역전승이 나타났다.


기업 마케팅은 상황 변화에 순응, 중고령 고객을 위한 중점 설득에 나섰다. ‘영유아→시니어’의 비중 변화가 뚜렷한 기저귀처럼 간판 상품은 달라진다. 어른 소비로 통칭, 중장년까지 포섭한 마케팅도 잦다. 묵직한 내구소비재는 물론 완구·화장품·의류·식품 등 예외는 없다.


노안을 노린 안경 업계도 비슷하다. 원래 소매 업계의 마케팅 타깃은 ‘가족’과 ‘젊음’의 양대 축이었다. 이 둘의 조합으로 장기간 성장해 왔지만, 급격한 인구 변화가 상황을 혼돈에 빠트렸다. 청년 소비는 줄고, 노년층의 소비가 늘어나는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가족 수요과 청년 시장만으로 성장을 구가하기는 힘들어졌다.


탈출구는 시니어를 포함한 중고령 세대의 소비력과 기업의 성장력을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로 집약된다. 중고령 인구가 트렌드 주도 세력(trends-setter)으로 부각된 셈이다. 와중에 ‘새로운 어른세대’로 불리는 4060세대는 2020년 어른 고객(20대↑)의 8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벌써부터 특징적인 소비 트렌드를 요구한다. 디저트만 해도 서구식보다 전통과자 등 과거 지향적인 라인업을 즐긴다. ‘노스탤지어 소비’다. 중고령 세대가 유소년기부터 자주 경험한 체험이 소비로 연결된다.


다이칸야마 명물인 츠타야서점에 1960~1970년대 히트한 명작 영화나 복간 CD가 진열된 이유다. 자녀 양육이 끝나고 퇴직자가 늘면서 시간 해방적, 자기 부활적, 꿈 실현적 소비도 잦아진다.


◆‘온라인’으로 옮겨간 고령층의 소비


일본의 경우 최근 등장하는 중고령 고객은 새로운 어른 세대답게 고정관념을 깬 소비 패턴을 보인다.


대표적인 게 달라진 구매 방식이다. 청년층의 전유물이던 인터넷쇼핑이 그렇다. 정보기술(IT) 문맹을 벗어나 시대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어른 고객이 많다. 인터넷에 밝은 중년 인구가 늙어 가면서 IT에 친근한 어른이 늘어난 덕이다.


실제 6080세대의 인터넷 이용 빈도와 조작 능력은 모두 향상됐다. 스마트폰 덕이다. 통계를 보면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 이용은 2015~2016년 기준으로 50대(55%→64%)는 물론 60대(26%→31%)도 늘어났다. 60대(76%)·70대(54%)·80대(23%) 등 전체적인 인터넷 이용률도 높아졌다.


스마트폰은 연령 불문 일상생활의 전부다. 압권은 어른 세대의 선호와 사용이다. 2018년은 전년보다 5% 증가, 전체 연령 중 스마트폰 이용자가 96%에 달한다. 일등공신은 5060세대의 이용 가세 때문이다. 정보네트워크산업협회에 따르면 어른 고객을 위한 맞춤 상품이던 피처폰은 2013년 50%에서 2018년 4%까지 추락했다.


반대로 50대 이상 스마트폰 이용자의 규모는 닐슨제팬에 따르면 2017~2018년 27%가 증가, 전체 세대 중 37%를 점유한다. 시간 여유가 많아서인지 이들의 하루 평균 사용 시간도 3시간 14분으로 18~34세의 3시간 23분과 거의 차이가 없다.


고무적인 건 앞으로다. 평균수명의 연장 흐름 속에 IT에 밝은 중년 인구가 고령 고객으로 바뀌면 인터넷 소비 환경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2040년 전체 인구 중 36%가 고령 인구라니 비중만으로 압도적이다.


최근 인터넷쇼핑 업체가 고객 확장에 나서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기존 채널을 위협하는 수준의 적극적인 행보다. 막강한 충성 고객을 지닌 편의점조차 허덕일 정도다. 저가 공세와 배달 편리에 힘입어 반복 소비가 발생하는 일상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가상 쇼핑에 대한 거부감도 갈수록 감소한다. 이로써 고령 고객 특유의 오프라인 대면 쇼핑 선호론도 설득력을 잃었다. 스마트폰 보유 여부가 인터넷쇼핑의 전제였다는 점에서 기업 대응은 본격적이다. 소비시장의 절반 비중을 장악한 시니어뿐 아니라 중장년까지 향후 늙어 간다는 점에서 신속한 유통채널 체제 정비와 전략 수정은 당면 과제다.


고령사회에 맞물릴 유통채널의 변화 양상은 초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온라인쇼핑을 주요 구매처로 택한 중장년 고객은 막 생겨났을 뿐이다. 대부분은 여전히 이메일 확인, 교통 서비스, 일기예보 등의 정보 취득이 주요 목적인 가운데 상품·서비스 구매 거래는 60대 이상에서 40% 용처에 그친다. 온라인 구매가 일상인 청년 세대와는 비교된다.


그럼에도 앞날은 밝다. 값싸고 편한 온라인의 장점 확산과 인터넷 친화적인 고객 증가는 고령 시장의 핵심 화두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정책적인 지원 확대도 기대된다. 쇼핑 난민의 염려를 덜기 위해서도 교통·이동권의 제약이 불가피한 어른 고객이 인터넷을 활용하는 건 우호적인 까닭이다.


방치하면 복지 지출이되, 지원하면 시장 창출의 일석이조를 정책화하는 건 당연하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새롭게 등장한 고령 시장이 만들어 낸 지금의 일본을 면밀히 분석하면 우리로선 미래의 기회를 얻는 소중한 힌트가 될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