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 삶 보호하고 여행객 추태 막는 데 주력…‘관광객 혐오증’까지 등장
몰려드는 관광객에 ‘강력 규제’ 시작한 유럽
[베를린(독일)=박진영 객원기자] 포르투갈 북부 포르투 주의 주도인 포르투는 인구 20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다.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바로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중 하나인 렐루 서점이다.

관광객들에게는 ‘해리포터’의 작가 J K 롤링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일명 ‘해리포터 서점’으로 불린다. 서점 앞은 현지인 대신 5유로짜리 입장권을 구매하려는 관광객들이 늘어선 줄로 붐빈다.

관광객이 점점 많아지는데 사진만 찍고 책은 팔리지 않는 현실에 대한 대책으로 렐루 서점은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무려 방문객 수가 120만 명에 달해 매출 700만 유로(약 90억원)를 기록했다. 관광객에게 등 떠밀린 현지인들은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

지역민을 위한 공간이 글로벌 관광지가 되면서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소외되는 현상은 비단 렐루 서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가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유럽의 도시들은 그 심각성이 더해 가고 있다.

◆저가 항공 성장이 관광객 폭증 불러

최근 여행은 사치품에서 일상의 상품으로 바뀌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항공에서부터 숙소, 각종 여행 상품을 그것도 ‘염가’에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여행지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일례로 올여름 독일공항에서는 대혼란이 발생했다. 비행기 결항이 상반기에만 146% 증가했고 지연 건수가 31% 증가했다.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승객들이 넘쳐나면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해 항공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베를린공항도 골칫거리이기는 마찬가지다. 저가 항공사들의 출발과 도착이 거의 90%에 달하는 베를린 쇠네펠트공항은 지난 10년간 승객 수가 600만 명에서 13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점점 저가 항공사들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베를린 테겔공항 역시 심각한 체증을 앓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뒤셀도르프·베를린과 같은 일부 독일의 공항에서는 심지어 여행객들에게 이륙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 줄 것을 당부하기에 이르렀다.

과부화된 항공 교통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유럽에서만 올 상반기 항공교통 체증이 1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항공교통 관제사인 유로컨트롤은 2시간 늦게 출발하는 비행편 수가 2040년까지 7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배경에 저가 항공사의 급격한 성장이 있다. 현재 독일과 유럽의 저가 항공사들은 3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 수치는 앞으로 계속 높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처럼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관광객의 급증으로 도시와 지역 주민들이 겪는 불편이 심각해지고 있다.

주거난, 문화 훼손, 교통대란, 소음과 공해, 쓰레기 대란 등의 현상이 속출해 지역민들의 삶이 공격받는 이른바 ‘오버투어리즘’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도를 넘어서는 일부 관광객들의 추태까지 더해져 관광객에 대한 지역민들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반(反)관광객’ 운동을 벌이는 이들은 관광객들이 넘치는 많은 장소에 ‘관광객들은 집에 가라(Tourists go home)’ 페인트를 뿌리는가 하면 스페인의 마요르카에서는 공항과 호텔에서 ‘반관광객’ 항의를 벌이는 ‘행동하는 여름’을 선포하기도 했다.

역시 스페인의 팔마에서는 관광객들에게 말똥을 던지는 사례가 있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지난해 극좌 정당인 민중연합후보(CPU)의 청년 조직 ‘아란’이 임대 자전거와 관광버스 타이어를 터뜨리는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는 해적들이 나서 크루즈의 입항을 막는 극적인 조치까지 이뤄졌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단기 임대주택의 급증으로 살 집을 찾지 못한 현지 주민들이 최근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파리·암스테르담·로마 등도 규제 나서
몰려드는 관광객에 ‘강력 규제’ 시작한 유럽
사태가 심각해지자 유럽 내 각국은 관광객 규제에 돌입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관광산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새로운 호텔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파리는 에어비앤비 및 다른 임대용 아파트 전용 플랫폼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고 팔마에서는 플랫폼에 있는 휴가 전용 아파트의 임대마저 완전히 금지했다.

이탈리아에서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규제를 하고 있다. 로마에서는 더 이상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트레비 분수에 뛰어드는 사람에게 450유로(59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관광객의 증가로 주민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베네치아 역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은 관광객에게 임대할 수 없게 하고 호텔 신규 개장을 금지하는가 하면 인근 운하나 바다에서 수영이나 다이빙을 하는 사람에게 450유로, 거리에 음식물을 버릴 경우엔 200유로(26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피렌체 역시 거리에서 음식을 먹으면 최대 500유로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유럽 내에서도 가장 강력한 규제로 눈길을 끈다. 85만 명의 도시 암스테르담에 매년 18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며 각종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2년 전에는 엄격한 대책을 담은 ‘시티 인 밸런스’를 개발, 에어비앤비 같은 주택 공유 플랫폼에 연간 최대 60일 동안만 임대할 수 있게 했고 이는 2019년까지 30일로 줄일 계획이다.

도심에는 호텔 신축이 금지됐고 2017년 11월부터 단체 관광객들이 맥주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는 이른바 ‘맥주 자전거’를 금지했다. 지난 4월에는 오후 11시 이후 홍등가 관광을 금지하고 20명이 넘는 단체 관광을 불허하는 등 홍등가 관광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보다 강력한 조치는 기념품 가게와 같은 관광객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의 신규 사업체를 전면 불허하기로 한 결정이다.

올여름에는 시 당국이 나서 ‘즐기되 존중하라(enjoy & respect)’라는 캠페인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 캠페인은 18세에서 34세 사이의 파티를 좋아하는 남성을 대상으로 했다.

암스테르담을 찾는 관광객 가운데 술집을 순례하거나 ‘총각 파티’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의 추태가 가장 심각하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됐다.

이들이 유흥가와 홍등가 지역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때마다 암스테르담은 존중받을 만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구호가 나타나고 큰소리로 노래하거나 음란한 행동을 하면 140유로(18만원), 거리에서 술을 마시면 90유로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내용을 담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