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글로벌 현장]
‘아마존 구축 효과’로 문 닫는 소매점 늘어…담합과 꼼수로 임대료 주기적 인상
빈 상가 늘어나는 맨해튼 쇼핑가…빌딩주는 ‘요지부동’
[한경비즈니스=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세계 최대 쇼핑가로 꼽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상가들이 비어 가고 있다. 10년째 이어진 미국의 경기 확장 속에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전자 상거래 확대 등으로 상점 매출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아마존 구축 효과’가 맨해튼마저 불황에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의류 브랜드 갭(GAP)은 1월 20일 맨해튼 5번가 54스트리트에 있는 3층 규모 플래그숍(680 Fifth Ave.)을 폐점했다. 삭스피프스애비뉴·버그도프굿먼 등 최고급 백화점과 구찌·티파니·루이비통 등 각종 명품 브랜드들이 밀집한 세계 최고 명품 쇼핑거리 5번가에서 철수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근 5번가 55스트리트에 있던 폴로랄프로렌의 플래그숍(711 Fifth Ave.)은 작년 4월 폐쇄된 뒤 아직도 을씨년스럽게 비어 있다. 그 맞은편 뉴욕의 명품 브랜드인 헨리 벤들 매장(712 Fifth Ave.)도 1월 폐점했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도 5번가 매장(647 Fifth Ave.) 폐쇄를 검토 중이고 캘빈클라인은 바로 옆 매디슨애비뉴 매장을 올봄에 닫는다고 1월 10일 발표했다. 백화점 로드앤테일러는 작년 12월 104년 된 5번가 39스트리트에 있던 매장(424-434 Fifth Ave) 운영을 중단했다.

맨해튼 5번가가 비어 간다
센트럴파크로부터 이어지는 맨해튼 5번가, 49~60스트리트 사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곳이다. 부동산 서비스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이 지역의 상가 임대료는 2017년 기준 스퀘어피트당 연 3000달러에 달한다. 1㎡로 따지면 연간 3622만원인 셈이다. 이는 영국 런던의 뉴본드스트리트 1719달러,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1407달러, 미국 베벌리힐스의 로데오거리 875달러보다 훨씬 높다. 이런 금싸라기 점포들이 비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선 5번가에 있는 트럼프타워의 존재가 상권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뉴욕 경찰이 경비 강화를 위해 56스트리트를 아예 틀어막아 통행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뉴욕포스트는 트럼프타워 바로 옆 빌딩에 있는 티파니는 지난해 매출이 11%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5번가의 상황은 맨해튼 전체 상가 경기를 대변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9월 부동산 중개업체인 더글라스엘리먼 설문 조사를 인용해 맨해튼 소매 공간의 약 20%가 비어 있다고 보도했다. 2016년 같은 설문 조사에서 나왔던 7%보다 급증한 것이다. 맨해튼구청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20km 길이의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모두 188개의 빈 상점이 발견됐다. 이런 빈 상점은 브로드웨이·매디슨애비뉴 등 맨해튼의 비싸고 좋은 지역에서도 수두룩하게 발견된다.

전문가들은 전자 상거래 발달로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감소하는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미국에서 토이저러스·짐보리·루21 등 20여 개 소매업체들이 파산했고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메이시스·JC페니 등도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고급 백화점인 니만마커스·노드스트롬도 회사 매각과 구조조정 등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맨해튼의 높은 임대료는 임차 업체들에 큰 부담이 된다. 매출은 꾸준히 줄고 있지만 지속된 경기 호황에 임대료는 그만큼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폴로랄프로렌은 지난해 4월 5번가 점포 폐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50개 매장을 없애 비용을 연간 1억4000만 달러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신 전자 상거래를 담당하는 디지털 인력을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갭의 아트 펙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12월 5번가 점포 폐쇄 계획을 공개하면서 “수익성 없는 매장 폐쇄를 통해 1억 달러 이상을 아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갭은 전자 상거래에 따른 타격뿐만 아니라 자라 유니클로 등 다른 패스트 패션(SPA) 브랜드에 밀려 전 분기 매출이 7% 감소했다.

빈 빌딩 주인에 세금 매기는 방안도 고려
이처럼 뉴욕시 곳곳의 상가가 비어 가자 시는 골치를 썩이고 있다. 상가가 비어 있으면 주변이 슬럼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은 1월 시의회 연설에서 “상가가 비는 것은 빌딩주들의 임대료를 높이려는 시도 때문”이라며 “상가가 빈 빌딩 주인에게 벌금 형태의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몇 년 동안 수많은 빌딩의 가장 목 좋은 점포들이 비어 있는데 그건 인근 지역의 황폐화를 부른다”고 강조했다.

상가들이 비어 가고 있지만 맨해튼 빌딩주들은 꼼짝도 않고 있다. 오히려 담합과 꼼수를 통해 임대료를 주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최근 맨해튼에 사무실을 빌린 한 스타트업은 실제 사용 면적이 자신이 임차한 면적의 3분의 2밖에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맨해튼 빌딩들이 임대 면적에 로스팩터(loss factor)를 27%나 넣어 임대하기 때문이다. 로스팩터는 옥상·기계실·계단·엘리베이터홀 등 원래는 임대할 수 없는 공용면적을 말한다. 맨해튼을 제외한 다른 곳에선 이런 면적은 임대 면적에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맨해튼 건물주들은 이를 전용면적을 넣어 임대료를 더 받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로스팩터는 몇 년에 한 번씩 높아진다. 맨해튼 건물주 단체인 REBNY(Real Estate Board of New York City)에 따르면 로스팩터는 2002년까지 18~20%였지만 2002~2004년 20~22%로 높아졌고 2007년부터는 27%로 올라갔다.

그만큼 임대 면적이 줄고 임대료는 늘어난다. 예를 들어 1만 스퀘어피트(929㎥)의 면적을 쓰고 있는 임차인이 있는데 로스팩터가 기존 20%에서 27% 오른다면 명목상 임대 면적은 기존 1만2000스퀘어피트에서 1만2700스퀘어피트로 증가하게 된다. 빌딩주에게 빌딩 면적은 그대로인데 임대 면적을 늘려 세입자와 재계약하는 것이다. 이런 로스팩터 조정은 맨해튼 건물주 양대 단체인 REBNY와 BOMA(Building Owners and Managers Association)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협회 이사들이 모여 로스팩터를 조정하면 건물주들은 이에 맞춰 임대 면적표를 수정한다. 그러면 부동산 브로커들이 이에 맞춰 임대하는 식이다.

임차인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임대료가 비싼 맨해튼인데 쓰지도 않는 면적에 대해 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건물주뿐만 아니라 맨해튼을 주름잡는 4대 부동산 브로커들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JLL·뉴마크·CBRE 등도 모두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통하지 않으면 사실상 맨해튼의 사무실을 빌릴 수 없는데 이들은 정해진 로스팩터에 맞춰 산정된 면적을 임대한다. 이들은 REBNY와 BOMA 이사진에 모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맨해튼이 섬으로 공간이 한정돼 있는데다 임차 수요가 많아 일어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 건물주는 “건물주와 부동산 브로커들이 뭉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유대인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대인은 맨해튼 내 개인이 소유한 건물의 80% 정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욕시 당국도 이런 로스팩터 조정을 막지 않는다. 임대 면적이 커지면 재산세 등 세금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빈 상가 늘어나는 맨해튼 쇼핑가…빌딩주는 ‘요지부동’
빈 상가 늘어나는 맨해튼 쇼핑가…빌딩주는 ‘요지부동’
realist@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2호(2019.02.18 ~ 2019.02.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