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밀집된 뉴욕시에서 건강과 안전 위협할 수 있어 반대 목소리 커져
슈퍼 리치의 장난감 ‘헬리콥터’…뉴욕의 골칫거리로
[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 ] 뉴욕시는 슈퍼 리치의 도시다. 1000만 달러(117억8000만원)가 넘는 주택이 전체 주택의 25%가 넘는다.

최근 헤지펀드 시타델의 켄 그리핀 창업자는 맨해튼 센트럴파크 인근의 초고층 콘도의 펜트하우스를 2억3800만 달러(2803억6400만원)에 구매해 가장 비싼 주택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또 세계 최고의 부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도 최근 맨해튼 5번 애비뉴, 매디슨 스퀘어 파크 인근의 콘도형 아파트 3채를 8000만 달러(942억4000만원)에 구매하기로 계약했다.

뉴욕시 다섯 개 구 가운데 맨해튼에 가장 많은 슈퍼 리치가 몰려 산다. 어퍼이스트라고 불리는 센트럴파크의 동쪽이 가장 유명한 부촌이다.
슈퍼 리치의 장난감 ‘헬리콥터’…뉴욕의 골칫거리로
◆헬리콥터로 붐비는 맨해튼의 출근길

하지만 맨해튼을 벗어나 인근 숲속에 자리 잡은 부촌도 많다. 최근 블룸버그가 2016년 미 국세청의 소득세 납부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ZIP코드(행정구역별 우편번호) 기준 연간 소득이 가장 많은 동네를 꼽았더니 상위 20개에 뉴욕과 뉴저지 주에 자리한 동네가 6개에 달했다. 미국 내 4만2000개 ZIP코드 단위 가운데 상위 6개가 뉴욕시 인근에 몰려 있는 것이다.

뉴욕시 인근의 부촌으로 유명한 곳은 롱아일랜드 이스트햄튼과 뉴욕 주 웨스트체스터, 뉴저지 주 알파인과 쇼트힐스 등이 꼽힌다. 이곳의 주택들은 수만 평의 부지 위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뉴저지 주 알파인에서 방 20개에 실내 농구코트와 테니스코트, 리조트 수준의 수영장, 20명이 들어가는 극장, 1마일 길이의 자전거길 등을 갖춘 집이 2500만 달러(294억5000만원)에 나오기도 했다.

이런 주택에 사는 슈퍼 리치들 가운데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 수단은 헬리콥터다. 집과 직장에 헬리콥터 이착륙장(헬리패드)을 설치해 놓고 타고 다니는 것이다.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어 차로 2시간 이상 걸릴 거리를 10~15분이면 닿는다. 월스트리트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등 부호들이 그런 식으로 출퇴근한다.

맨해튼 5번가 트럼프타워에 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초기에 계속 트럼프타워에서 살면서 헬리콥터로 백악관까지 90분씩 출퇴근하는 방안을 고려했다가 보안 문제로 포기하기도 했다.

맨해튼 양쪽을 흐르는 이스트강과 허드슨강 위에는 거의 항상 헬리콥터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하늘에서도 정체가 빚어질 정도다.

세계적인 가수 빌리 조엘도 그렇게 헬리콥터를 타고 맨해튼을 오가는 사람이다. 조엘은 롱아일랜드 끝부분에 자리한 부촌인 센터아일랜드에 산다. 185가구 중 54채가 공시 가격 300만 달러(35억3400만원)가 넘는 곳이다.

연중 정기적으로 맨해튼에 있는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공연하는 조엘은 저녁에 센터아일랜드의 집에서 헬기를 이용해 40마일(6만4374m) 거리를 15분 만에 날아가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공연한 뒤 돌아오는 게 일상이다.

◆소음부터 추락 사고까지…각종 문제 일으키는 헬리콥터

최근 이 마을에는 난리가 났다. 조엘 등 세 가구 주민들의 헬리콥터 출퇴근을 제한하기 위해 일부 주민들이 청원을 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제기한 가장 큰 문제는 소음이다. 주민들은 2017년 이후 15건의 소음 관련 고소를 제기했다. 소음이 자신들의 생활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집값을 떨어뜨려 재산권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카운티는 새로운 헬리패드를 설치하는 것은 금지했지만 기존 패드를 없애지는 않았다.

청원을 낸 이들은 또 헬기 추락 사고가 날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들이 낸 청원은 기존 헬리패드를 가진 이의 헬기 운항을 본인이나 가족이 탑승한 경우에 한해 매월 15차례로 제한하고 집을 매각하면 즉시 헬리패드를 없애는 내용이다.

지난 5월 센터아일랜드 카운티 의회는 새 헬리패드 건설을 막고 소음을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선 추가 연구를 진행하기로 표결했다.

또 지난 5월 민간 항공 회사인 휠업이 맨해튼 34번가 강변 헬리패드와 이스트햄튼 공항을 오가는 정기 헬기 운항(편도 995달러)을 시작하면서 이스트햄튼에서도 헬기 운항을 금지해야 한다는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주민들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맨해튼 인근의 지방자치단체에는 이런 청원이나 입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맨해튼 시민들이 만든 ‘헬기를 멈춰라(Stop The Chop)’라는 시민단체도 있다. 이 단체는 헬리콥터가 수많은 인구 밀집 지역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고 FAA 규정을 위반해 과도한 소음과 대기오염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맨해튼 도심 빌딩 위를 날아다니는 헬리콥터는 거의 볼 수 없는 것도 규제 때문이다.

과거에는 맨해튼 미드타운의 팬암빌딩(지금의 메트라이프빌딩) 59층 옥상에서 존 F. 케네디 공항을 왔다 갔다 하는 헬리콥터 셔틀도 있었다. 요금이 40달러로 인기를 끌면서 한 해 6만 번 이상 날아다녔다.

하지만 1977년 5월 착륙하던 헬리콥터가 추락하면서 로터블레이드(날개)가 날아가 5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사망자 한 명은 인근 매디슨 애비뉴를 걷는 여성이었다. 이후 병원과 응급 용도를 제외하고 상업용이나 개인 소유 헬리콥터가 맨해튼 도심 위를 날아다니는 것이 금지됐다.

이 때문에 헬리콥터 이착륙장 헬리패드를 갖는 것은 뉴욕시에서 큰 특권이다. 지금은 무산되긴 했지만 아마존이 지난해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에 제2본사를 짓기 위해 뉴욕시와 협의하면서 요구한 것 가운데 하나가 헬리패드 설치였다.

뉴욕에서는 1983년 이후 적어도 28건의 헬리콥터 관련 사고로 1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1년 뉴욕 시의회가 한 헬리콥터의 이스트강 추락 사고 이후 관광 헬리콥터 전면 금지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워낙 편의성이 높고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블레이드란 회사가 허드슨강과 이스트강변에 있는 세 곳의 헬리패드에서 JFK공항·라과디아공항·뉴왁공항까지 헬리콥터 셔틀을 운영(요금 195달러)하고 있다.

또 월스트리트 강변 헬리포트에서는 다섯 곳의 회사가 관광용 헬리콥터를 운영하고 있다. 15분에 평균 224달러 정도 비싼 요금을 받지만 맨해튼의 마천루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 해 관광 수요를 채우기 위해 헬리콥터가 뜨는 횟수는 6만 회에 달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3월 이스트강에 관광용 헬리콥터가 사고로 추락해 승객 5명이 모두 숨지는 일이 벌이지기도 했다. 또 올 5월 초에도 한 대가 허드슨강에 추락했다.

realist@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8호(2019.06.10 ~ 2019.06.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