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0분 결혼식·2분 장례식의 등장…혼자서도 가능해진 ‘단체 운동’
‘1인 가구’ 증가로 더 빨라지고 쉬워지는 소비법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최근 세력을 확장 중인 새로운 소비 그룹이 있다. 무엇이든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끝내려는 그룹이다. 일본에선 이를 러셔(Rusher)라고 부른다. 생활 전반에 걸쳐 장시간 구속되는 것을 거부하는 그룹이다.

그렇다고 소비하지 않을 수도 없는 품목이다. 그 타협점이 러셔의 출현이다. 현대인의 인식 변화와 맞물린 편리의 추구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의 미래 소비 시장에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준다.

◆출근길 완독 가능한 1000자 분량 ‘인터넷 소설’ 인기

시간 단축으로 귀찮음을 없애주면 기꺼이 지갑을 열겠다는 새로운 소비 그룹의 등장은 꽤 낯설다. 선례는 있다. 드라이브 스루가 대표적이다. 차에서 내릴 필요 없이 승차한 채 필요한 것을 손에 넣는 모델이다.

패스트푸드는 고전 항목이다. 안경·세탁·조제약·병원 등에까지 미친다. 결국엔 관혼상제도 대상에 올랐다. 결혼부터 예외가 아니다. ‘와타베웨딩’은 해외판 드라이브 스루 결혼을 사업 모델로 내걸었다. 결혼을 허들로 여기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틈새를 공략한 결과다.

가령 신랑신부가 라스베이거스공항에 도착한 후 예복으로 갈아입고 웨딩카를 탄 채 결혼식장 출입구에 들어선다. 대기한 목사와 통역과 함께 차에서 결혼 선서, 반지를 교환한 후 결혼 증명서를 받으면 식은 끝난다. 핵심 목적은 지역 관광이지만 귀찮은 결혼까지 겸한다는 점에서 매년 10%씩 이용객이 증가세다.

몇몇 장례 업체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2019년 새로운 장례 스타일로 드라이브 스루 장례, ‘스루 장례식’를 시작했다. 조문객은 승차한 채 주차장에 들어간 후 접수창구에 손을 뻗어 태블릿 방명록에 이름과 금액을 기입, 직원에게 봉투를 전달한다. 이후 불을 붙이지 않는 전열식 향을 올리는 순서다. 일련의 흐름이 녹화돼 식장 내부의 유족에게 예를 표한 후 개폐 버튼을 누르고 귀가하면 끝이다.

체재 시간은 단 2~3분. 논란이 적지 않지만 문의가 증가세다. 비판이 거셀 듯해도 의외로 다수가 필요성에 동의하는 게 현실이다. 2시간 걸리던 장례 조문을 2~3분, 하루 종일 걸리던 결혼식 참석을 10분으로 단축해 준다.

원래는 이동의 제한이 많은 고령자의 예식 참가를 지원하기 위해 고안됐지만 젊은 층에도 통했다. 특이한 것은 생전에 조문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미리 이 방식을 고집하는 예비 당사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지가 반대해도 본인의 간곡한 바람이면 거부하기 힘든 법이다.

관혼상제만이 아니다. 오락에서도 시간 단축이 대세다. 가령 읽는 데 시간이 걸리는 종이 소설보다 인터넷 소설이 인기다. 기존 연재소설은 편당 대략 4000~1만 글자인데 인터넷 소설은 1000자면 충분하다. 출퇴근 시간에 1~2편은 가볍게 읽는다.

장시간에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는 귀찮음을 해결하는 전용 사이트도 늘어나고 있다. ‘히나프로젝트’는 편당 1000자 전후의 투고 소설만 모은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2004년 개설 이후 게재 작품 56만 건에 조회 수 1억5000만 회를 기록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아마존(프라임비디오)’과 ‘넷플릭스(15분 드라마)’ 등 동영상 송출 회사는 회당 시간을 대폭 줄인 프로그램을 늘렸다.
‘1인 가구’ 증가로 더 빨라지고 쉬워지는 소비법
◆혼자지만 외향적인 신인류의 등장

시간 단축은 힘들지만 끝내면 상쾌한 운동에도 제격이다. 피트니스센터(‘X BODY Lab’)는 가령 20분이면 집중적인 근육운동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틈새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의 운동 효과를 제공하는 차원이다.

이곳은 보통 유산소운동을 포함한 근육운동이 주 2회에 회당 2~3시간이 필요한 것을 시간 단축, 효과 유지의 마법 장치로 대폭 줄여 냈다. 근육을 전기로 자극하는 특수한 슈트가 그렇다. 특수 장치를 24곳에 내장한 슈트를 통해 20분 운동만으로 운동 효과를 극대화해 준다.

홀로 즐기고 싶은 수요도 미래 시장의 핵심이다. 대중 술집 ‘호로요이토’는 1인 고객 추천 점포라는 슬로건으로 모객에 성공했다. 대개 술은 밖에서 홀로 마시기 어렵다. 외로운데다 시선마저 불편하다. 그렇다고 동료와 마시자니 재미없고 친구를 찾자니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집이 좋겠지만 안주와 뒤처리가 또 일이다. 홀로 가볍게 단시간만 즐기고 싶은 수요가 좀체 충족되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혼자 마시기 좋은 전국 점포를 무료로 소개하는 사이트 ‘전일본1인음주협회’와 손잡았다. 가맹점에 스티커를 붙여 알리는데 2018년 3000개를 가볍게 넘겼다. 선호 주류와 예산 범위는 물론 원하는 분위기를 입력하면 조건에 맞는 점포를 추천한다. 동참자를 찾을 일정 조정이 필요 없는 데다 뒷말 걱정도, 잔돈 처리도 없애준 사례다.

물론 노래방이나 고깃집, 전골집 등 1인용 업태는 지금까지 많았다. 단 이는 1인 이용을 전제로 한 인테리어 배려에 불과했다. 현장 교류는 없다. 혼자 술을 마셔도 누군가와 섞이고 싶은 대화 욕구는 원천적으로 제거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교류를 자연스레 부추기고 배치와 동선도 차별화했다. 미묘한 욕구의 미묘한 배려가 핵심인 셈이다.

긍정적인 요인은 ‘나 홀로 세대’의 증가세다. 1인용·1인분 시장을 주목한다. 이미 가구 구조상 1인 가구가 압도적이다. 일본은 2020년 193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36%가 1인 가구다. 미래 시장의 핵심 그룹이란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족에겐 부정적인 키워드가 사업 모델의 중심이었다. 불쌍하고 외로운 이미지가 강조된 결과다. 앞으론 보다 적극적인 1인 가구의 소비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혼자인데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신인류의 출현이다. 이른바 ‘솔리스트(solist)’ 시대의 개막이다. 이들은 원래 혼자라면 못할 유희 대상까지 포섭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1인임에도 집단 효용을 그대로 누린다.

가령 ‘래스트풋살시티’에선 초대면의 팀원들과 함께 집단 경기인 풋살을 즐길 수 있다. 원칙상 1인 참가형 플레이로 즉석에서 팀을 짜 게임한다. 개인 참가형 단체 경기인 셈이다.

원래는 하자니 성가시고 힘든 게 팀 구성이다. 팀을 짜도 출석 여부를 확인하거나 스케줄을 조정해야 해 의견 대립 속에 되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십상이다. 누구를 멤버로, 어떤 유니폼을, 어디 연습장을 할지 등등 비용과 수고도 불가피하다. 매번 상대까지 섭외할 뿐만 아니라 운영 방침과 관련한 인간관계도 번잡하기 짝이 없다.

다만 여기에선 매일 100명 정도 모여 개인 풋살을 즐긴다. 인간관계 고민 없이 단체 활동이 가능한 구조다. 혼자라도 원할 때 언제든 가볍게 와 즐기고 돌아가면 끝이다. 솔리스트용 비즈니스의 진화다.

실적 증대를 원해도 소비 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성숙된 시장의 공통점이다. 이미 많이 가진데다 돈까지 있지만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관건은 하나뿐이다. 지갑을 기꺼이 열 소비자의 새로운 욕구 발굴이다. 달라진 시대답게 이전엔 없었던 소비의 갈증을 상품과 서비스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렵다. 이들이 뭘 원하는지 조사하기 어렵고 분석하기 쉽지 않다. 고전적인 방식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물밑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거액을 들인 기존 광고가 먹히지 않는 대신 뜻하지 않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단발 노출이 히트 상품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빅데이터로 힌트를 얻는다지만 무엇이 힌트인지 해석하기가 더 어렵다.

이 때문에 새로운 소비 욕구로 귀찮음을 주목하는 것을 단순 명쾌하다. 관찰·인터뷰·경험도 좋지만 우선시되는 것은 고정관념 또는 편견에 묻혀 버린 귀찮음의 발굴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9호(2019.08.26 ~ 2019.09.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