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신체의 자유에서 시작된 독일의 나체주의 문화운동…1980년대 이후 쇠퇴 일로
120년 역사의 독일 나체주의 문화운동 ‘FKK’...전용 해변 줄고 회원수 감소
[베를린(독일)=박진영 유럽 통신원]독일 베를린의 한 호숫가. 호수 수영을 즐기는 독일 사람들의 더운 여름날 평범한 물놀이 풍경은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옷을 전혀 걸치지 않은 누드 상태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남녀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 온천 수영장도 마찬가지다. 나이 불문하고 누구라도 자기 의지에 따라 ‘완전 탈의’ 상태로 즐길 수 있다. 1주일 중 어느 날 ‘수영복을 입는 날’이 정해져 있기도 하지만 ‘입어도 되는 날’일 뿐 ‘입어야만 하는 날’은 아니다. ‘수영복을 입는 날’이 아닌 요일에 수영복을 입고 갔다가는 따가운 눈총과 직원의 주의 때문에 결국 수영복을 벗어야 한다.

이 광경은 어느 특별한 날이나 시즌에 이뤄지는 이벤트가 아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놀라지도 않는다. 그 누구라도 옷을 입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부여된 ‘탄생복(birthday suit)’라고 불리는 자연 상태의 몸 문화를 사랑하고 이를 높이 평가해 온 독일의 나체 문화는 조금씩 쇠퇴하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강렬하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더 그렇다.

독일은 ‘직물이 없는’ 것에 대해 너른 관용의 태도를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물이 없는’ 것을 좋아한다. 수백 개의 온천과 웰니스 리조트, 공원, 호수 등 독일 사람들은 옷을 벗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은 이른바 FKK(Freikoerperkultur, free body culture : 자유로운 신체 문화)의 나라다. 하지만 나체주의 문화 옹호론자들은 비공식적 운동인 FKK가 독일 공공장소에서의 나체 금지와 알몸 수영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곧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자유로운 신체 문화 ‘FKK’ 협회 회원 수 감소 양상
120년 역사의 독일 나체주의 문화운동 ‘FKK’...전용 해변 줄고 회원수 감소
최근 신간 ‘누디티 혼돈’을 펴낸 작가 커트 스타케 씨는 “FKK는 더 이상 유행이 아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그는 한때 독일 휴양지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던 누드 관행이 이제는 구식으로 여겨지고 너무 규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FKK 전용 해변이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반려견 산책객들을 위해 마련된 해변이 FKK 전용으로 결합되는 양상마저 띠고 있다고 말한다.

동베를린 태생의 그레고르 기지 독일 좌파당 원내교섭단체장 역시 지난해 FKK의 쇠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나체주의자들을 위한 지역을 더 많이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정치인은 한 성 연구원의 연구를 빌려 동독에 널리 퍼져 있던 누드 목욕의 즐거움을 파괴한 것은 독일 통일 이후 서구인들의 ‘포르노그래피적 시선’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 내 FKK 협회 회원 수는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3만2000명의 회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1980년대 이후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특히 18세에서 30세 연령의 회원 수가 가장 급격히 감소했다. 이는 상대방의 시선과 자신의 이미지를 가장 많이 의식하는 연령대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부 FKK 추종자들은 FKK의 소멸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대해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3292명의 회원을 보유한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자유체문화협회의 회장인 크리스티안 유테흐트 씨는 “확실히 이 운동은 몇 년 동안 절망적으로 노령화돼 왔지만 이 운동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FKK를 완전히 옹호하며 점점 더 나이가 어린 가정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체주의의 역사, 동독 노동자 계급에 큰 영향

독일의 최초 FKK 조직은 1898년 창설됐고 특히 베를린·북해·발트해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 자연주의 운동은 육체를 성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을 수치심,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초기의 산업화라는 붐비는 도시의 건강하지 못한 생활환경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뿐만 아니라 건강에 관한 운동이기도 했다. 당시 FKK 문화 전용 잡지와 영화가 수십 편이나 있었다.

최초의 FKK 해수욕장은 1920년 독일과 덴마크의 국경에 자리한 실트섬에서 개장됐다. 오랜 기간 해변·호숫가·야영지의 전 구역은 ‘벌거벗기’를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 법으로 보호됐고 나체에 대한 수치심을 엄격하게 거부하는 관습은 국가 정신에까지 스며들었다.

FKK는 전쟁 때 나치에 의해 처음에는 금지됐지만 ‘자연주의’ 관행은 곧 돌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다시 부활한 FKK 운동은 1970년대 가장 많은 수의 추종자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억압적인 국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유’로서의 상징성을 띠며 구서독보다 동독 국가 지역에, 그중에서도 노동자 계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GDR(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서는 발트해에 있는 FKK 해변이 표준이었고 옷을 입거나 입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수영할 수 있는 별도의 누드 해변이 없을 정도였다. 한편 GDR 국가가 나서 ‘나체주의’를 장려하기도 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 인접한 덴마크 등으로 도망을 칠까봐 수영 보조 기구들이 금지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예전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운 신체를 추구하는 나체주의는 독일 문화의 한 부분이다. 그 수가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해변이나 스파 심지어 공원에서도 수많은 FKK 지역을 발견할 수 있다.

100년 전 첫 개장된 이후 FKK 해변으로 지정된 해변 수는 빠르게 확산됐지만 현재는 그 수가 많지 않다. 다만 독일인들은 FKK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도 ‘나체’ 상태로 수영을 하거나 일광욕을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엄격히 따지면 지정된 지역에서만 허락된다. 물론 어린 아이들은 일반 호수나 해변에서도 나체 상태로 수영하고 활보하는 경향이 강하다.

누드 파크도 있다. 뮌헨에 있는 잉글리시 가든과 베를린에 있는 티어가르텐은 누드 허용 구역을 가진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들 중 하나다. 베를린의 마우어 파크, 프리드리히 샤인 등도 나체 일광욕이 허용된다. 역시 FKK 표지판으로 지정돼 있다.

스파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독일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 활동 중 하나다. 커다란 실내 수영장 외에 사우나 등이 온천 시설에 포함돼 있는데 대부분의 스파는 남녀 혼성으로 운영된다. 2016년 독일 사우나협회에 따르면 약 3000만 명의 독일 사람들, 1700만 명의 남성과 1300만 명의 여성들이 규칙적으로 독일의 2300개 공공 사우나를 방문한다. 수영장은 수영복이 필요하지만 사우나는 ‘직물이 없는’ 구역으로,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누드 상태를 지향한다.

FKK 운동이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의 움직임을 더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누드 스포츠클럽의 탄생은 자연스럽다. 이 클럽의 회원들은 하이킹·배구·수영 등 모든 종류의 스포츠를 누드 상태로 즐기며 직물로 된 옷이 아닌 무릎 보호대 등의 안전 장비는 허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체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코스도 있다. 독일 하즈(Harz) 산악지대의 깊은 곳에는 18km의 벌거벗은 등산로도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2호(2019.09.16 ~ 2019.09.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