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소홀한 가족 사망 후 빚 떠안는 사례 늘어…상속 포기 이어지며 사회 부담으로
'느닷없는 부채 공포'... 사회 문제 된 일본의 돌연 상속
[도쿄(일본) =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다사사회(多死社會)는 새로운 풍경이다. 전쟁·기근·질병 등 ‘맬서스의 함정(소득 증가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소득이 정체되는 현상)’이 없는데도 인구가 급감해서다. 의료 발달과 수명 연장으로 고령사회가 한참 진행돼야 불거지는 새로운 현상이다.

일본 사회는 노인다사(老人多死)발 사회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연금·복지 개혁은 당면 숙제로 부각된다. 개별 가계의 체감 위기는 더 심각하다. 저성장과 맞물린 가족 해체와 소득 단절의 불확실성이 중첩된다. 최근 주요 언론은 다사사회의 대표적인 잠재 폭탄으로 상속 이슈에 주목한다. 그만큼 범위와 규모가 광범위해서다.
◆‘다사사회’ 진입하며 나타나는 ‘돌연 상속’

상속은 죽음과 동반된다. 생전의 재산 이양인 증여와 구분된다. 즉 다사사회에선 중대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준비와 대응도 활발하다. 유언대용신탁을 비롯해 미리미리 상속 갈등을 제거하는 시도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예상을 빗나간 갈등부터 느닷없는 친척 상속까지 틈새가 많다. 일본 언론은 이를 ‘돌연 상속’이라는 키워드로 정리, 상속 포기를 포함한 다사사회한 고령사회의 새로운 함정으로 규정한다.

실제 돌연 상속은 일본 사회의 핫이슈 중 하나다. 말 그대로 갑자기 상속 이슈가 발생한 경우다. 가족 해체가 일찌감치 진행된 사회답게 어릴 적 이혼한 후 연이 끊긴 부모나 소원해져 생사조차 모를 숙부모 등 일가 친척이 사망했을 때 자주 발생한다. 혈연관계를 근거로 상속권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플러스 재산이면 좋겠지만 돌연 상속이란 표현처럼 마이너스 부채 승계가 대부분이다. 자산 가치가 없는 부동산이나 생각지도 못한 빚을 갚으라는는 통지가 날아오면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상속 갈등은 가족 관계의 해체와 소원이 유력한 원인이다. 심화된 가족 분화가 상속 정보의 단절로 연결된 결과다. 부모 생존 시에는 그나마 명절 등을 통해 형제 간 교류가 있지만 사망 이후엔 그마저 소원해진다. 그 아래의 사촌 관계도 마찬가지다. 늘어난 이혼·재혼도 상속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피가 다른 형제끼리 교류가 잦을 리 없기 때문이다. 재혼 자녀의 상속 여부도 골칫거리다. 복잡해진 가족 유형 때문에 상속 갈등이 늘어나는 식이다. 혈연 중시적인 상속과 가족 다양화의 현실이 충돌한 셈이다.

종합하면 감당할 수 없는 변제 금액마저 왕왕 발생한다. NHK가 보도한 한 일본 남성의 사례를 보자. 어느 날 연고조차 없는 모 지자체가 1775만 엔(약 1억9000만원)의 연체 세금을 내라며 청구 서류를 보냈다. 10년 넘게 연락이 없고 장례식에조차 가지 않은 삼촌 명의였는데 이후엔 1억 엔(약 10억8000만원)의 은행 채무까지 밝혀졌다. 삼촌의 배우자는 사망했고 자녀들은 상속을 포기해서다. 그다음 상속인인 부모·형제도 사망한 터라 자연스레 형제의 자녀에게 상속권이 부여된 것이다.

늘어난 해외 이주도 문제를 확대한다. 외국에 살던 한 여성은 친척 사망 후 3년이 흐른 후 상속 여부를 알아 부채 변제 압박에 시달렸다. 다행히 특수성을 인정받아 상속을 포기했지만 그 결과까지 많은 수고와 비용이 불가피했다. 실제 법률상 상속 포기 기한을 넘긴 시점에 상황을 인지해 재판까지 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골칫거리는 채무만이 아니다. 재산인 채권조차 두통거리로 전락한다. 빈번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상속 대상은 자산 가치가 없는 토지·주택 등 부동산이다. 많은 이들이 재산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손해인 경우다. 부동산(不動産)이 부동산(負動産)이 된 것이다.

가령 상속 순위자의 연이은 포기로 건물을 떠맡게 되면 보유세(고정자산세)와 함께 유지·관리비마저 지출해야 한다. 상속 포기와 무관한 관리 책임 때문이다. 빈집 방치 후 화재 등 문제가 발생하면 배상 등의 책임이 부과된다. 헐어버리면 해체 비용이 든다. 대부분의 지방 건물은 팔리지도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떠맡은 부동산이 결국 본인 자녀의 뒷덜미를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상속 위험의 확장이다. 피하려면 비용을 얹어서라도 처리하는 수뿐이다.

물론 상속 포기라는 회피 카드가 있다. 상속인임을 안 후 3개월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상속받도록 했는데 그 기간에 포기하면 된다. 이른바 ‘3개월 룰’이다. 또 처음부터 돌연 상속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법률상 상속 순위가 있다. 배우자-자녀-부모 등의 순서다. 그다음이 방계로 사망한 자의 형제자매다.

문제는 이때부터 커진다. 형제자매마저 사망하면 소원한 조카에게 상속권이 부여돼서다. 따라서 차순위에의 명확한 상속 포기 통보가 없다면 또 다른 친척 간 갈등을 유발한다. 범위도 넓다. 재산·부채뿐만 아니라 연체된 사회보험료는 물론 세금까지 상속 대상으로 잡힌다. 부동산이면 해당 공간에 있었던 나무·석재는 물론 기르던 반려동물도 떠안도록 규정된다. 또한 상속 포기도 돈이다. 대행 비용은 사례마다 다르지만 건당 5만~15만 엔(약 54만~163만원)이 소요된다.
◆상속 포기로 늘어나는 지방의 빈집들

다사사회답게 상속 포기는 증가세다. 지방 권역의 지가 하락과 친인척 간의 교류 단절이 심화되면서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트렌드로 안착했다. 상속 포기는 2019년 21만 건에 달한다. 10년 전보다 1.5배 늘었다(2008년 14만5000건). 당장 상속인인 사망자가 늘어난 게 컸다. 2019년 136만 명이 사망했다.

지가 하락도 영향을 미친다. 도쿄 등 3대 대도시는 올랐지만 지방 주거 지역의 공시 지가는 2019년까지 26년 연속 하락세다. 상속 포기로 빈집이 늘어났다. 2019년 850만 채로, 전체 주택의 13.6%를 차지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사망자는 2030년 160만 명까지 불어난다. 상속 포기가 만만치 않은 사회 문제인 것이다.

물론 대응책도 있다. 한정 승인이 대표적이다. 전부 상속 혹은 전부 포기의 중간 단계다. 부채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정확한 금액을 모를 때 유효하다. 상속을 받되 유산보다 부채가 많으면 유산 금액만큼만 변제 책임이 주어진다. 빚잔치 후 남으면 상속받고 부족해도 책임을 안 지는 방식이다.

단 이때는 모든 상속인의 동의가 필수다. 조건이 엄격한데다 방법도 복잡해 이용자는 적다. 3개월 인지 여부도 폭넓게 적용되는 추세다. 먼 친척일수록 사망 인지와 상속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어 다툼의 소지가 적지 않아서다. 법원은 충분한 사정이 있다면 상속 포기를 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상속 포기를 위한 부채 확인도 늘어난다. 빚이란 게 잘 감춰진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또 상속 여부의 결정 없는 재산 처분은 경계된다. 섣부르게 망자의 재산을 처분하면 그 자체가 상속 인정으로 받아들여 상속 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경제·환금성이 있는 물건이면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다.

상속 포기가 완전한 문제의 해결도 아니다. 개인은 끝나도 사회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즉 상속 포기 부동산은 곧바로 국고 회수의 수순을 밟지는 않는다. 빈집으로 방치된다. 경매에 부쳐지지만 처분 때까지 유산 관리인의 고용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그냥 빈집으로 방치하는 게 현실이다. 행정상으로는 최종적인 처리비용은 지자체의 몫이다. 사회비용으로의 전가인 셈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2020.02.03 ~ 2020.0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