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가상병원’ 도입하는 등 원격진료 가속화…연 4~5%씩 성장하는 ‘건강 경제’
독일 의료계에 부는 ‘디지털 스마트 헬스 케어’ 바람
[베를린(독일)=이은서 유럽 통신원]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위기’라며 ‘사회적 연대’를 강조했다.

독일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이 중 35억 유로(약 4조7000억원)를 의료 산업과 의료 인프라 확충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2월 24일까지 독일은 코로나19 감염자가 16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북부 지방으로 스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무더기로 발생해 2월 25일부터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5월 4일 현재 16만6000명, 사망자가 6866명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의료 인프라 현황이 여실히 드러나게 됐다. 독일은 현재 확진자 수 증가 대비 병원의 중환자실·인공호흡기 등은 아직 충분하지만 마스크·보호복·장갑 등 병원 의료진을 위한 보호 장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독일 정부는 추경예산 중 35억 유로를 독일 병원과 연구소에 지원, 보호복·마스크와 관련 백신·치료제 연구·개발과 국민 정보 제공을 위해 지출할 예정이다. 또 550억 유로 규모의 예산을 ‘전염병 방지 예산’으로 책정해 필요 시 호흡기 등 의료 장비 구입과 의료 인력 충당 등 코로나19 대처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준비했다.

이렇듯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직접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현재 독일 내 확진자가 가장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 주에서는 3월 30일부터 원격 진료(telemedizin)가 가능한 가상 병원(virtuelles krankenhaus) 서비스를 시작했다.
◆위기 상황에서 변화하는 보건·의료 시스템

독일은 오랫동안 원격 의료 금지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해 원격 진료가 현실화되는 이 상황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2015년까지 독일 의약품법에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이 있어야만 처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2015년 e헬스법이 통과되면서 의료의 디지털화를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2018년 이후 원격 의료 금지를 전제로 했던 여러 법 규정을 정비해 세계 최초로 건강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처방을 가능하게 하는 등 의료의 디지털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던 중이었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독일 최대의 종합병원 샤리테(Charite)에서는 코로나19를 원격으로 진료할 수 있는 앱을 오픈했다. 먼저 증상에 관한 간단한 설문 조사를 마친 후 코로나19 의심 증상인지 아닌지 판명해 준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응답을 마치고 조사자가 원하면 원격 진료를 예약할 수 있도록 바로 예약 페이지로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다. 직접 병원에 가지 않고도 화상 통화를 통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2020년 1월 독일에서 출시된 원격 진료 전문 앱 KRY도 4월 20일부터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는 환자들이 무료로 원격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KRY는 원격 진료 스타트업으로, 2014년 스웨덴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유럽 전역에 원격 진료 앱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웨덴·독일·노르웨이에서 직원 400명, 의사 700명이 일하고 있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150만 명의 환자가 KRY 앱을 통해 진료를 받았다.

독일 최대의 병원 온라인 예약 사이트 독토리브(doctolib)는 기존에 주를 이루던 전화 예약을 온라인 예약으로 유도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독토리브에서는 화상을 통한 원격 진료를 시범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 건강 관리 앱 ADA의 홈페이지에서는 ‘COVID-19 스크리너’라는 서비스를 통해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통해 코로나19를 진단할 수 있고 영어와 독일어로 이용할 수 있다. HIH(Health Innovation Hub)에서는 ‘코로나봇’이라는 이름의 챗봇을 통해 문자를 통한 코로나19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또 온라인으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셀카피(Selfapy)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한 무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의료계에 부는 ‘디지털 스마트 헬스 케어’ 바람
◆독일 경제의 12% 차지하는 건강·의료 분야

독일은 8300만 명의 인구에 40만 명의 의료 전문 인력, 300개의 보험 회사와 2000여 개의 종합병원이 있기 때문에 디지털 헬스 케어 시장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시장이다. 독일 정부는 이와 같은 인프라에 걸맞게 보건·의료산업을 의미 있는 경제 영역이라고 부르며 ‘건강 경제(Gesundheitswirtschaft)’의 개념을 일찍이 발전시켜 왔다.

건강 경제는 병원·의료보험사·의료기기·약국·건강보조식품 등 건강과 관련한 모든 산업을 통칭한다. 2019년 독일의 건강 경제 영역의 부가 가치는 전 경제 영역의 12%(3720억 유로)를 차지하고 있다. 고용 시장의 16.6%(7500만 명)가 건강 경제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총수출액의 8.3%(1312억 유로)가 건강 경제 분야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인구 통계학적 추세와 의료 기술의 발전,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역동성 등에 따라 독일의 의료 관련 산업이 연간 4~5%의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디지털 헬스 케어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는 소비자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2019년 5월 독일 정보통신산업협회가 발표한 설문 조사(16세 이상 독일 시민 1005명 대상)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의 65%가 건강 관련 앱을 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건강 정보를 알려주는 앱(25%)이고 심장 박동 수나 혈압 등을 체크해 주는 트래킹 앱(24%)이 그 뒤를 이었다. 운동 방법을 알려주는 앱을 사용하는 사람은 17%, 생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강 관련 조언을 해 주는 앱을 사용하는 이는 15%였다.

독일 유력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피트니스 트레이닝 앱, 명상·요가 관련 앱의 매출이 734억 유로로 전년도 대비 두 배 늘었고 2021년까지 1266억 유로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원격 의료를 비롯한 디지털 헬스 케어 시장의 성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6호(2020.05.09 ~ 2020.05.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