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정 후보자도 총리 수행 성적표 따라 대선 반열 오를 수도- “문 대통령, 李-丁 경쟁 구도 염두에 둔 인사”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대선을 겨냥한 양수겸장(兩手兼將) 포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17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임에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한 것을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이런 해석이 나왔다. 양수겸장은 장기에서 두 개의 말이 한꺼번에 장을 부르는 것으로 양쪽에서 동시에 하나를 노린다는 뜻이다. 이 총리와 정 후보자가 여차하면 대선을 함께 겨냥할 수 있는 초석을 놓아 주는 인사라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의 이번 인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총리와 정 총리 후보자가 각각 전남과 전북 출신이어서 호남 민심을 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또 둘 다 중도적 성향을 띠고 있어 내년 총선에서 중도층 잡기 목적도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총선을 넘어 대선 구도를 염두에 둔 인사다. 이미 확고한 대선 고지에 올라 있는 이 총리뿐만 아니라 정 후보자도 총리 수행 성적표에 따라 대선 후보 반열에 진입할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 이번 인사에서 진짜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이 총리 후임 정세균 발탁, 대선 겨냥한 ‘양수겸장’ 카드
이낙연 총리/한국경제신문
◆“정 후보 지명, 이 총리 독주 따른 힘 쏠림 막기 위한 포석”


대선판에서 특정 정당 후보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금상첨화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언제 어느 순간 유력 후보자가 낙마할 수 있는 만큼 그렇다. 또한 유력 주자 한 사람이 독주하는 것보다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게 좋다. 치열하게 경쟁해야 여론의 주목도를 높여 경선 흥행을 가져올 수 있다. 또 다른 측면도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으로선 임기 후반기에 이 총리의 독주 현상이 지속되면 힘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이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라며 “정 후보자를 내세워 힘을 분산할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기 대선이 2년 4개월 넘게 남은 만큼 정 후보자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있다는 것이 여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 후보자로서도 친문(친문재인) 진영 내에서 뚜렷한 대선 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총리직 수행은 이들의 구심점을 만드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정 후보자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쪼개질 땐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당내 친문 진영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총리직은 그의 약점으로 꼽히는 카리스마와 대중성 부족을 채워 줄 기회도 될 수 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정 후보자는 대권의 꿈을 갖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대선까지 2년 반 가까이 남아 있는 만큼 총리직을 잘 수행하면 지지도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정 후보자도 그런 계산을 하면서 총리직을 수행할 것이다. 이 총리와 정 후보자가 전·현직 총리로서 경쟁 의식을 갖고 할 것이다. 독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경쟁하는 게 민주당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좋다.”

두 사람을 경쟁시키는 게 민주당을 위해서도 좋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이번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여권에선 대선 주자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여권의 유력 잠룡들이 대선 가도에서 이런저런 악재로 사실상 낙마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이 총리를 총선에서 활용할 수밖에 없고 정 후보자도 대선 주자 반열에 올려놓는 게 시급한 상황이 됐다.

이번 인사로 이 총리에겐 잠재적 대선 경쟁자를 만나게 된 동시에 내년 총선에서 활동할 길이 공식적으로 열렸다. 문 대통령은 “이 총리가 이제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놓아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했다. 그의 총선 역할론을 두고 여러 얘기가 나온다. 서울 종로에 출마해 정치 1번지를 사수하게 하는 것과 비례대표로 출마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하는 방안 등이다.

민주당이 이 총리가 조속히 당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현 이해찬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이해찬 대표가 옛날만큼 샤프하다는 느낌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운동권 이미지가 강한 이 대표로서는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중도층과 부동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선거 전략통으로 꼽히는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와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로 설명했다. 회고적 투표는 과거에 해 온 정책을 두고 투표하는 정권 심판 성격을 띤다. 2007년 대선 때 이전의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한 평가가 2008년부터 일하게 될 대통령을 뽑는데 영향을 준 게 대표적인 예다. 반면 전망적 투표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미래를 이끌 정치 지도자를 보고 투표하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집권 3년 차에 치러지는 선거에선 국민이 과거에 해 온 것을 두고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를 하는데 이런 투표는 어떤 정권이든 손해를 본다”며 “회고적 투표 성향을 줄이고 미래의 ‘전망적 투표’로 돌리는 것이 우리 당의 중요한 선거 전략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선 차기 대선 주자가 전면에서 움직여야 한다”며 “그러면 사람들이 그 주자를 보고 찍는다. 이 총리가 조속히 당에 돌아와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유권자, 총선서 차기 유력주자 보고 찍을 것”

관건은 오랫동안 당을 떠나 있던 이 총리가 ‘그립’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느냐다. 박지원 의원은 이 총리가 당에 돌아와서도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릴 수 있을지에 대해 “그건 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기 지지 기반과 추종 세력이 거의 없는 ‘단기필마’로 나서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 총리도 “지도자급 정치인에게 필요한 게 두 가지라고 본다. 다수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과 확실한 자기 세력”이라며 “전자는 비교적 얻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후자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당의 확고한 장악력을 가진 이 대표와의 관계 설정이 관건이다. 친문 정서에 가까운 이 대표와 중도층·호남에 기반을 둔 이 총리가 공천 등 과정에서 선거 주도권을 두고 부닥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주어진 길을 가는 총리직과 주도해 나가야 하는 정치 지도자의 길은 차이가 있다”며 “친문 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당에서 이 총리가 강고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철희 의원은 “권력은 항상 유력한 차기 쪽으로 몰린다”며 “공천은 당 대표 권한이지만 유력한 차기 주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총선 성적표다. 이 총리가 선대위원장을 맡아 지휘한 선거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다. 대선 가도의 1차 관문에서부터 타격을 입는다면 이 총리로선 여간 큰 손실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정 후보자를 발탁한 배경엔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총리 후임 정세균 발탁, 대선 겨냥한 ‘양수겸장’ 카드
정세균 총리 후보자/한국경제신문
이 총리가 종로에 출마한다면 정 후보자가 두 번 총선에서 내리 승리한 이 지역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정 후보자는 2012년 총선 땐 정치 거물 홍사덕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를, 2016년엔 한국당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각각 꺾은 바 있다. 물론 정 후보자가 총리직 수행 과정에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런저런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안고 있는 두 사람이 총리직을 바통 터치하는 순간 본인들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대선 레이스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낙연 총리 약력 : 1952년 전남 영광 출생.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동아일보 정치부·외신부 기자, 도쿄 특파원, 논설위원, 국제부장. 제16대~19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 민주당 사무총장.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 전남도지사.정세균 총리 후보자 약력 : 1950년 전북 진안 출생. 전주 신흥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 고려대 총학생회장. 쌍용그룹 상무. 제15대~20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대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국회의장.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6호(2019.12.23 ~ 2019.12.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