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견제 장치 마땅치 않고 중립성 논란- 與 의원 “공수처 화살, 거꾸로 우리에게 돌아오지 말란 법 없다”
“정권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공수처법
[한겨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솔직히 걱정이 된다. 정권이 바뀐다면 지금과 정반대로 우리가 이 조직을 없애자고 할지 모르겠다.”
익명을 요구한 더불어민주당의 법조 출신 한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를 통과한데 대해 이런 반응을 보였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문재인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공수처가 설치되면 이를 견제하고 중립성을 담보할 장치가 없다며 이렇게 우려한 것이다. 그는 “정권이 바뀐다면 공수처의 화살이 현 여권에 돌아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했다.
공수처법 국회 통과와 관련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 기관을 해체하기 시작한 데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한다”며 “민주주의의 일보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논란이 적지 않다. 우선 모호한 법 조항으로 인해 검찰과 수사 관할권을 두고 갈등이 예상된다. 검찰을 견제하겠다는 공수처를 통제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는 점도 논란을 부른다.
이미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상설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도가 존재하는데 또 다른 권력 기관을 만들어 ‘옥상옥’이란 지적도 있다. 위헌 논란과 삼권 분립 훼손 우려도 제기된다. 공수처법을 놓고 벌어지는 쟁점을 정리해 본다.

①수사 대상 고위 공직자 약 7000명
수사 대상은 대통령·국회의원·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광역단체장·교육감·국무총리·판검사·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군 장성, 청와대·국정원·감사원 3급 이상 공무원 등이다. 이들의 배우자·직계존비속도 포함된다. 대통령은 4촌 이내 친족까지 대상이다. 수사 대상 고위 공직자는 약 70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법관(3200여 명)이 가장 많고 검사(2300여 명)가 그다음이다. 전체 80%가 넘는다. 수사 범위는 형법 제122~133조에 규정된 고위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 직권 남용, 피의 사실 공표죄 등이다.

②삼권 분립 훼손 논란
법관들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가능해지면서 삼권 분립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판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 공수처로 밀려들어올 가능성이 높고 법관을 대상으로 한 공수처의 수사와 기소가 이어지면 재판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재판 독립이 저해되는 부분에 대한 특별한 유념이 필요하다”고 했다. 채명성 전 대한변협 법제이사도 “대통령이 공수처를 통해 사실상 견제 받지 않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삼권 분립은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③위헌 논란도…“헌법적 설치 근거 빈약”
공수처 설치를 두고 위헌 논란도 일고 있다. 위헌론을 제기하는 측은 공수처 설치가 헌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점을 꼽는다. 수사와 기소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만큼 헌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상당수 전문가들은 헌법 제89조 제16호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임명하는 수사 기관의 장은 검찰총장이 유일하다’는 것을 위헌론의 근거로 들고 있다.
헌법상 범죄 수사와 기소의 총책임자인 검찰총장보다 공수처를 상위에 둔다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는 것이다. 일반 국민이 고위 공무원이 됐다고 별도의 기관에서 수사 받는 것은 법 적용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수처가 사법부·입법부·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헌법과 정부 조직법상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④검찰 견제하겠다는 공수처는 누가 통제하나
공수처는 수사권뿐만 아니라 논란이 됐던 기소권도 갖는다. 검찰의 기소 독점권이 65년 만에 깨진 것이다. 공수처의 권한은 막강하다. 특히 민주당과 4개 소수당의 논의 과정에서 법안에 ‘다른 수사 기관이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인지한 경우 즉시 수사처에 통보하고 공수처장은 수사 개시 여부에 대해 회신한다’는 24조 2·4항을 추가해 공수처의 권력은 더 커졌다.
그럼에도 공수처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여당 의도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할 때 추천 위원 5분의 4 이상이 찬성(7명 중 6명)해야 한다. 위원 7명은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2명, 그 외 교섭단체 2명으로 구성된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반대하면 공수처장 후보는 추천될 수 없다. 민주당은 이런 점을 들어 야당의 견제 장치가 작동됨에 따라 공수처가 정치적인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야당 위원 중 자유한국당 추천 1명, 나머지 1명은 이번 공수처법 제정에 찬성한 여권 성향의 야당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별다른 제동 장치 없이 여권이 선호하는 후보를 공수처장에 임명할 수 있다. 설령 야당 성향 후보 1명이 추천되더라도 대통령이 후보 2명 가운데 여권 성향 후보자를 임명하면 그만이다. 공수처장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으면 직위를 보장받는다. 공수처장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고위 공직자에 대해 수사하거나 반대로 봐주기 수사를 하더라도 마땅한 견제 장치가 없는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공수처의 공정한 운영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중립성·독립성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수처법 처리 때 기권한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수사·기소권을 다 가진 공수처가 권한을 남용하면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느냐”고 했다.
“정권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공수처법
⑤특별감찰관·상설특검제 놔두고 또 ‘옥상옥’ 기구 탄생
지금도 권력층을 감시하고 수사할 수 있는 법적 기구가 있다. 상설특검제는 2014년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도입됐다. 상설특검의 수사 대상은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회의에서 의결한 사건과 법무부 장관이 이해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다. 공수처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특별감찰관제법은 2014년 6월 발효됐다.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이듬해 3월 임명됐지만 ‘우병우 민정수석 특별감찰’ 문제로 박근혜 정부와 마찰을 빚은 끝에 임명 5개월 만에 사퇴했다. 이후 4년 반 가까이 공석이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와 민주당에선 “공수처법을 만들면 되는데 굳이 특별감찰관을 선임해야 하느냐”는 기류가 일면서 후보 추천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공수처법이 통과되면서 특별감찰관제는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상설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가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를 설치한데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의 한 의원은 “상설특검은 특검 후보를 추천할 때마다 국회 합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동되기 쉽지 않고 실제 지금까지 한 번도 운영된 적이 없다. 특별감찰관제는 권한 등에 한계가 있어 권력층 감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당 관계자는 “두 기구가 있는데도 검찰 수사를 빼앗아 올 수 있는 공수처를 만든 것은 정권 마음대로 수사해 자기편을 보호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반박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