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 1985년 청주지검에서 첫 만남
- ‘좋은 인연’으로 시작됐으나 35년 뒤 대척점에
-“지역 옮기며 억지 명분” 협량·쫄보 정치, 입 다물고 … ”

[홍영식 대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현 미래통합당)의 ‘4·15 총선’ 공천 문제를 놓고 벌어진 그간의 갈등은 ‘정치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격언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홍 전 대표와 공천 파동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형오 전 공천관리위원장 간 대치에 황교안 통합당 대표까지 싸움판에 가세하면서 갈등 양상이 복잡하게 전개됐다. 외형적으로는 홍 전 대표의 출마지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었지만 차기 통합당 대선 게임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발단은 홍 전 대표가 고향인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으로 공천 신청을 하면서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김 전 위원장은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이 워낙 어려운 국면에 있으니 당을 위해 헌신·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좀 총대를 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 전 대표는 경남 양산을을 선택하면서 갈등이 확산됐다. 홍 전 대표의 명분은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곳에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맞대결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홍 전 대표를 ‘컷오프(공천 배제)’시켰다. 홍 전 대표가 “황 대표가 나서 바로잡아 달라”고 했지만 황 대표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자 대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황교안 · 홍준표, 청주지검 2, 3호 검사의 충돌 … 벌써 대선전?
(사진) 왼쪽부터 김형오 미래통합당 전 공천관리위원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한경비즈니스

◆“컷오프는 私感 때문” “정략 없이 공정하게 공천”

홍 전 대표가 ‘컷오프’를 감수하면서까지 수도권이 아닌 경남지역 출마를 고수한 이유는 뭘까. 홍 전 대표는 “2022년 정권 교체를 위해선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중요하다”며 “호남은 450만 명, TK(대구·경북)는 500만 명, 부·울·경은 840만 명”이라고 말했다. 또 “통합당 (대선) 후보가 누가 되든 부·울·경에서 60% 이상 득표하지 못하면 떨어진다”며 “그러나 부·울·경은 중심축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게 당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가 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된 뒤 대구를 선택한 것은 차선책이다. TK 지역을 대표할 만한 통합당 대선 주자가 보이지 않는 만큼 그곳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통합당으로 복당한다면 TK는 물론 부·울·경까지 아우르는 영남권 대표 주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권에선 황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뛰고 있는 마당에 굳이 자신까지 수도권에 가세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선 확실한 뒷배가 되는 지역적 기반이 중요하다는 것은 지금까지 대선에서 숱하게 봐 온 그대로다.

김 전 위원장이 2017년 한국당 대선 주자까지 지냈던 홍 전 대표에 대해 컷오프라는 초강수를 둔 배경에 대해 일각에선 과거 두 사람의 악연을 거론한다. 홍 전 대표는 “공천은 사감(私感)이 겹쳐 저를 궁지에 몰아넣는 막천”이라며 “당 대표를 두 번 하고 대선 후보까지 하면서 당을 구한 저를 40여 일간 모욕과 수모를 주면서 토사구팽시킨 것은 인간이 할 도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구원(舊怨)이 있다는 얘기였다. 홍 전 대표는 한나라당(현 통합당) 원내대표 시절인 2008년과 2009년 당시 국회의장이던 김 전 위원장과 격하게 대립했던 적이 있다. 예산안과 한나라당이 추진했던 언론 개혁을 위한 미디어법 처리에 속도를 내려고 했지만 김 전 위원장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마찰을 빚었다는 것이 홍 전 대표 측의 설명이다.

홍 전 대표는 대선 구도와도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홍 전 대표는 “황 대표 측의 경쟁자 쳐내기”라는 것이다. 그가 “종지만한지, 큰 그릇인지 황 대표의 그릇을 보자”며 황 대표가 직접 나서 공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한 것도 공천 배제를 이런 차원으로 봤기 때문이다.

황 대표와 김 전 위원장 측은 홍 전 대표의 이런 주장을 부인했다. 공천관리위 관계자는 “공천은 계파 구분 없이 어떤 정략도 개입하지 않고 이뤄졌고 그 목표는 오로지 승리뿐”이라며 “홍 전 대표 같은 대선 주자급 인사들이 수도권 지역에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당으로선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수도권 출마를 권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 측 관계자는 “대선 경쟁 차원에서 홍 전 대표를 공천 배제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 사퇴…황 대표와 공천 과정에서 갈등설

더욱이 통합당 공천관리위가 서울 강남병에 김미균 시지온 대표를 전략 공천한 것을 두고 ‘친문(친문재인) 지지자 공천’ 논란이 일자 이에 책임을 지고 김 전 위원장이 3월 13일 사퇴하면서 갈등 양상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됐다. 이미 그 전날 김 전 위원장에게 공천 전권을 줬던 황 대표가 공천관리위에 6개 지역 공천을 다시 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두 사람 간 갈등설이 흘러나온 터다.

황 대표와 홍 전 대표의 인연과 악연도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85년, 좋은 인연으로 시작됐다. 홍 전 대표가 2017년 기자에게 전해 준 황 대표와의 인연이다. 당시 황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고 있던 때다. “황 대행과 초임 검사 시절 청주지검에서 함께 일했다. 평검사 4명이 있었는데 황 대행이 2호 검사고 내가 3호 검사였다. 바로 옆방에 있었다. 황 대행은 참 정의롭고 바르고 훌륭한 사람이다. 몸가짐도 반듯하다. 황 대행이 대통령을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나라를 잘 끌고 갈 수 있다고 본다.”

두 사람은 1986년 황 대표가 대전지검 홍성지청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두 사람은 검사 시절 걸은 길이 달랐다. 황 대표는 ‘미스터(Mr.) 국보법’으로 불릴 정도로 정통 공안통 검사였다. 김현희 KAL기 폭파, 임수경 밀입북, 국가정보원 불법 도청 등 굵직한 공안 사건을 다뤘다. 홍 전 대표는 강력통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업계 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박철언 당시 통일국민당 의원 등 거물을 줄줄이 구속했고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 땐 ‘조폭 저승사자’로 불렸다.

각자 다른 길을 걷던 두 사람은 35년이 지나 정치권에서 부딪치고 있다. 좋은 인연이 악연이 된 것이다. 둘 다 대선을 꿈꾸고 있는 만큼 충돌은 불가피하다. 지난해 2월 황 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에 선출된 뒤 홍 전 대표가 주로 날을 세우고 있다. 홍 전 대표는 지난해 말 자신의 ‘험지 출마론’이 제기됐을 때 황 대표를 겨냥, “30년 전통의 정당을 독식하려고 덤비는 것은 당을 더 쪼그라뜨리는 것이다. 사장 했던 사람이 머리띠 두르고 노조위원장 한다”고 공격했다.

또 황 대표가 한국당 유튜브 채널에 ‘오늘 황교안입니다’ 코너를 신설하고 색소폰 연주를 하며 자신의 성장 과정을 소개한 것에 대해선 “색소폰은 총선에서 이기고 난 뒤 마음껏 불라”며 “최근 헛발질이 계속돼 답답한 마음”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사례 외에도 홍 전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황 대표 공격에 나섰다.

황 대표도 반격에 나섰다. 3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승리를 위한 선당후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분열하는 세력은 패배를 면치 못한다. 이번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단 한명의 표심이라도 더 모아야 정권 심판의 소명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을 수시로 옮기며 억지로 명분을 찾는 모습은 우리 당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정치 불신만 더 키울 뿐”이라며 "넓은 정치를 부탁드린다” 고 했다. 홍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이에 홍 전 대표는 황 대표를 향해 “오늘 황 대표가 기막힌 말을 했다. 참 가관”이라며 “협량 정치, 쫄보 정치를 하면서 총선 승리보다는 당내 경쟁자 쳐내기에만 급급했던 그대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나”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이제 그만 입 다물고 종로 선거에나 집중하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서울 강남을 등 6곳에 대한 공천 심사 결과에 대해 당 공천관리위에 재의를 요구하면서도 홍 전 대표의 공천 문제 해결 요구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홍 전 대표는 3월 12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이 못된 협잡 공천에 관여한 사람을 나는 알고 있고 복당한 뒤 돌아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와 홍 전 대표 간 악연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8호(2020.03.16 ~ 2020.03.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