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 양당, 급조 정당 끌어들이고 비례 순번 놓고 진흙탕 싸움 ‘자책골 경쟁’
- 소수당 “토사구팽 당해”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범여권이 제1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당제 폐해를 줄이고 소수 정당의 목소리를 존중하겠다”며 도입을 강행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우리 정치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여권이 준연동형 비례제를 담은 선거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비례 위성 정당을 추진하겠다고 했던 미래통합당은 예고대로 미래한국당을 창당했고 이를 ‘꼼수’라고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도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 “소수 정당의 의사를 의정에 반영하겠다”고 했던 말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4·15 총선’도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거대 양당 대결 구도가 됐다. 두 거대 정당의 실질적인 의석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소수당들은 들러리를 서게 된 꼴이다.

원내 제1, 2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국민의당이 아예 지역구를 포기한 것은 정상적인 민주 국가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어이없는 일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기 위해 ‘의원 빌려 주기’와 ‘위장 전입’이라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통합당에선 위성 정당을 만든 주체인 ‘큰 집 정당’과 ‘작은 집’인 위성 정당이 비례대표 의원 순번 문제를 두고 충돌한 끝에 대표를 비롯한 ‘작은 집’ 지도부가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준연동형 비례제가 한국 정치의 왜곡과 형해화(내용이 없고 뼈대만 남음)를 낳고 말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양한 정치 세력의 의회 진입을 돕는다는 준연동형 비례대표 취지는 선거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라진 것이다. 출범 한 달도 안 된 민생당 내에선 비례연합정당 참여 찬반을 놓고 격돌을 벌였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막장 선거’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 됐다.

대통령제에서 다당제를 지향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란이 적지 않았음에도 여당이 선거법을 밀어붙인 것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처리를 위해 소수당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여당이 위성 정당 창당에 나서자 정의당 등 소수당 내에선 “여당이 이제 와서 우리를 ‘토사구팽(兎死狗烹)’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설정당·위장전입…‘비례 잡탕당’ 부른 ‘연동형제’
◆올 들어 비례 의석 노린 1회용 가설 정당 창당 봇물

준연동형제 도입으로 비례 의석을 노린 ‘1회용 가설 정당’들도 잇달아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이 한 명 이상 소속된 원내 정당은 9개다. 더불어민주당(129석), 미래통합당(117석), 민생당(18석), 미래한국당(6석), 정의당(6석), 국민의당(2석), 자유공화당(2석), 민중당(1석), 친박신당(1석) 등이다. 이 가운데 미래통합당·민생당·미래한국당·국민의당·자유공화당·친박신당은 올 들어 만들어진 정당들이다. 원외 정당 창당도 잇따르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원내·원외 정당과 창당을 준비하는 정당 수를 합하면 모두 78개다. 지난해 12월 39개에 비해 두 배 늘어났다. 등록된 정당 수는 47개로, 2012년 19대 총선 전 19개, 2016년 20대 총선 전 21개에 비해서도 크게 늘어났다. 4월 총선을 겨냥해 급조한 정당들이 대부분이다. 상당수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질 1회용 가설 정당들이다.

신당 창당이 크게 늘어난 것은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준연동형제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정당 득표율 3% 이상 얻으면 이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배분 받을 수 있다. 물론 3% 이상 득표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 3% 이상을 얻은 정당은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정의당·국민의당 등 5개 정당이다. 3% 이상 지지율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범여권 비례 전문 정당인 비례연합정당을 포함해도 6개에 불과하다.

정당들이 우후죽순 창당되는 또 다른 목적은 비례 연합정당에 참여하려는 것이다. 독자 세력으로는 지역구·비례대표 모두 의석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다른 정당들끼리 연합 정당을 만들어 3% 이상 득표한다는 것이다.
가설정당·위장전입…‘비례 잡탕당’ 부른 ‘연동형제’
(사진) '시민을위하여' 우희종(오른쪽 둘째), 최배근(셋째) 공동대표 등은 국회 정론관에서 3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비례 위성 정당 이름이 '더불어시민당'으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연합뉴스
◆“꼼수”비판했다가 말 바꾼 민주당…양당 대결로

민주당은 당초 한국당 창당을 “정치 후진적 행태”, “꼼수 정당”이라고 비판했다가 말을 바꿨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월 10일 “비례정당은 국민투표권을 침해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가 3월엔 “의석을 도둑맞게 생겼다”며 위성 정당 참여를 정당화했다.
민주당이 태도를 바꾼 것은 위성 정당 없이 민주당만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를 내 선거를 치렀을 때 통합당에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최근 각종 여론 조사에서 당 지지율을 바탕으로 의석수를 산출해 보니 민주당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냈을 때 통합당(한국당 예상 비례 의석수와 합산)에 비해 6~10석 적을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비례연합정당을 따로 만들어 후보를 냈을 때는 역으로 통합당에 비해 6~10석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더불어시민당) 파트너는 가자환경당·가자평화인권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시민을위하여 등이다. 민주당은 당초 정의당을 주요 파트너로 추진했지만 정의당이 참여를 거부하자 이름도 생소한 정당들을 연합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들 정당들은 의원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더불어시민당은 사실상 민주당의 위성 정당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내에선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정당들을 끌어들여 ‘비례 잡탕당’을 만들고 있다”는 불만들이 터져나온다.

2016년 창당한 가자평화인권당을 제외하고 올 들어 급조한 정당들이다.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주요 파트너인 시민을위하여는 ‘조국 수호’ 시위를 주도한 ‘개싸움 국민운동본부’가 주축이다. 이 때문에 더불어시민당이 ‘친문(친문재인)’ 정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을위하여는 플랫폼 정당이다. 플랫폼 정당은 권력 창출이 아닌 소수 정당이 원내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 총선만을 위한 1회용 정당이라는 얘기다.

기본소득당은 구 노동당 일부 탈당파들이 만든 정당으로 토지보유세·탄소세·종합소득세 등을 부과해 전 국민에게 매달 6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신설 정당 이름을 보면 정당 정치의 기본인 이념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당도 있고 정당 간 이념적 차이도 뚜렷하지 않다.

편법·위법 논란도 거세다. 당장 ‘의원 빌려 주기’가 문제다. 정당법엔 ‘누구든지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하는 승낙 없이 정당 가입 또는 탈당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민주당은 이런 법 조항을 근거로 지난 2월 통합당이 한국당에 의원을 보낸 것은 법 위반이라고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 민주당도 ‘의원 위장 전입’ 행태를 벌이고 있다. 또 선거법엔 다른 당 공천에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통합당과 한국당은 ‘큰집’ ‘작은집’관계이지만 엄연히 다른 정당이다. 통합당이 한국당 비례대표 순번에 대해 간섭한다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가설정당·위장전입…‘비례 잡탕당’ 부른 ‘연동형제’
민주당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비례 의원에 당선되더라도 돌아갈 집이 마땅하지 않아 혼선을 가중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이를 피하려면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한 정당들이 합당해야 한다. 현 상황에선 여의치 않다. 민주당 주도의 비례연합에 참여한 정당들은 민주당과의 합당에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는 정당도 있다. 이에 따라 범여권 비례 정당 소속 의원들은 ‘몸 따로, 마음 따로’인 어정쩡한 상태로 의정 생활을 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준연동형 비례제가 정치를 희화화하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으면서 벌써부터 총선 뒤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선교 전 한국당 대표조차 “이런 (비례 정당) 제도는 이번 한 번으로 끝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