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 20%포인트 차 앞서는 후보 같은 날 다른 조사선 정반대 ‘들쭉날쭉’- 총선 판도, ‘스윙보터’에 달려
[홍영식의 정치판] 응답 1.6%, 샤이 중도 30%…여론조사 믿을 수 있나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이런 여론 조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대구 수성갑 지역구에 출마한 한 후보자의 선거 참모는 ‘4·15 총선’ 여론 조사 결과가 큰 차이로 들쭉날쭉 나온데 대해 이 같이 반응했다. 영남일보·KBS대구·대구CBS가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3월 28~29일 대구 수성갑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4.3%포인트, 자세한 여론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과 주호영 미래통합당 후보가 53.4%,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4.8%를 나타냈다. 주 후보가 18.6%포인트 차로 앞섰다. 하지만 같은 날(3월 28일)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수성갑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4.3%포인트)에서는 김 후보가 41.3%로 주 후보(38.3%)를 오차 범위 내인 3%포인트 차로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여론 조사를 어떻게 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올까.

◆‘총선은 여론 조사의 무덤’…예측 번번이 빗나가

유권자들은 여론 조사 결과를 실제 선거 결과와 일치시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여론 조사 투영 효과’다. 승자에게 표가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 후보들이 여론 조사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하지만 ‘4·15 총선’을 앞두고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신뢰성에 의문이 드는 사례가 한두 개가 아니다.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여론 조사를 근거로 선거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번 선거뿐만이 아니다. 역대 선거 때마다 여론 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가 크게 달라 ‘이변’이 일어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총선은 ‘여론 조사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2016년 20대 총선 여론 조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갤럽이 ‘4·13 총선’ 직전인 4월 4~6일 실시한 조사에서 당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은 39%, 더불어민주당은 21%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이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새누리당 패배. 민주당이 123석을 얻어 원내 1·2위 정당이 뒤바뀌었다.

2012년 19대 총선 땐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선거 직전 정당 지지도에서 새누리당은 35%,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31%를 나타냈다.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얻었고 민주통합당은 127석에 그쳐 여론 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여론 조사에서 세 배 정도 앞섰다. 하지만 의석수는 152석 대 121석으로 여론 조사 차이만큼 크지 않았다.

전국 단위 정당 지지도 조사만이 아니라 개별 여론 조사에서도 틀린 경우가 많다.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KBS와 연합뉴스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3월 20일부터 3일간 서울 종로에 사는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가 45.8%,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8.5%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하지만 실제 득표율은 정 후보가 52.6%로 오 후보(39.7%)를 12.9%포인트 차로 제쳤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실시되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수성갑뿐만 아니라 후보별 지지율 차이가 들쭉날쭉해 유권자들에게 혼선을 주는 곳이 많다. 같은 날 같은 지역구를 대상으로 같은 여론 조사 업체가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게 나와 논란을 일으켰다. 알앤서치가 매일경제신문과 MBN의 의뢰로 3월 23~25일 실시한 경기 안양 동안을 조사에서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53.3%, 심재철 미래통합당 후보가 31.8%로 격차가 21.5% 포인트였다(이 여론조사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추후 ‘조사 기준 미준수’를 이유로 공표 금지 조치 내림). 역시 알앤서치가 경인일보의 의뢰로 3월 24~25일 실시한 조사에선 이 후보의 지지율은 44.3%, 심 후보는 40%로 격차가 4.3%포인트에 불과했다. 서울 광진을과 동작을 등 격전지의 비슷한 시기 여론 조사에서도 여론 조사별 지지율이 같은 후보라도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여론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드는 결과가 나오는 원인으로 우선 표본 대상 수가 적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전국 단위 선거 또는 정당 지지율 조사 표본 대상은 보통 1000명 정도다. 이를 17개 광역시·도로 나누면 한 곳당 59명에 불과하다. 수백만 유권자들의 표심을 59명의 조사로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총선 지역구별 여론 조사 표본 대상은 보통 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역시 이 정도로 유권자 10만~20만 명의 표심을 읽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표본 대상을 적어도 3000명 정도로 잡아야 비교적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표본 수를 늘리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홍영식의 정치판] 응답 1.6%, 샤이 중도 30%…여론조사 믿을 수 있나
◆오차 범위 내 차이는 역전 가능하다는 의미

유권자들이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신뢰 수준과 오차 범위다. 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 ±4.4%포인트라고 가정하자. 이는 여론 조사를 100번 하면 95번은 표본 오차 범위(8.8%포인트) 내에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의미다. A후보가 45%, B후보가 40%의 지지율을 얻었을 때 같은 방법으로 100번 조사하면 95번은 A후보가 45±4.4%, 즉 40.6~49.4%의 결과를, B후보는 40±4.4%, 즉 35.6~44.4%의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뜻이다. 두 후보는 40.6~44.4% 범위에서 지지율이 겹친다. 지지율 5% 차이가 나지만 오차 범위 내에선 역전도 가능한 만큼 누구의 승리를 예측하기 어려운 데도 유권자들은 단순 지지율만 보고 A후보의 우세라고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표본 대상이 실제 정당 지지율 비율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예를 들어 A지역구 B·C정당 지지율이 각각 40%·20%라고 했을 때 여론 조사 응답자의 비율도 이와 엇비슷해야 보다 정확한 여론 조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표본 대상에 B정당 지지자가 40%, C정당 지지자가 50%라면 여론 조사는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 이런 문제로 여론 조사 업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후보들이 적지 않다.

휴대전화·집전화, 면접원·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 비율에 따라서도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응답률이 낮은 것도 왜곡을 일으키는 한 요인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조사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응답률은 3%대에서 10% 수준이다. 1.6%도 있다. 100명 중 1.6명이 응답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표심을 읽어 내기는 어렵다. 그나마 갈수록 응답률이 떨어지고 있다. 양 극단 지지층이 과도하게 참여하면서 이들의 의견이 과잉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무당층·중도층이 늘어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실제 선거 결과는 30%대에 달하는 ‘스윙보터(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 표심을 숨기는 ‘샤이 중도’에 달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또 야당 지지자들이 여론 조사 응답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 일정 정도는 ‘야당 숨은 지지표(지금은 샤이 보수)’라는 점을 감안해 여론 조사 결과를 볼 필요도 있다고 지적한다.

서강신 입소스 사회조사본부 이사는 “여론 조사는 주민등록상 조사 대상자와 지역별·성별·연령별 인구 분포에 맞춰 표본을 추출하는 반면 실제 선거에서는 50~60대 투표율이 높고 20~30대 투표율이 낮아 구조적으로 차이를 보여 여론 조사와 투표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론 조사 전문가들은 같은 조사라도 설문지 문구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는 만큼 여론 조사를 맹신하기보다 민심의 풍향계와 추세 정도로 참고하고 오차 범위 내의 차이까지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1호(2020.04.06 ~ 2020.04.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