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제 1047호 (2015년 12월 23일)

“인공지능 발전, 무어의 법칙 넘어설 것”

제롬 글렌 밀레니엄 프로젝트 회장…박정희 전 대통령이 허먼 칸을 만난 까닭은

<새로운 혁신 기술의 등장이 숨 가쁘다. 스마트폰의 진화, 3D 프린터, 드론, 인공지능 등은 기업의 제품 생산과 경영 환경을 뿌리째 바꿔 놓고 있다. 일자리를 둘러싼 인간과 로봇의 경쟁도 더 이상 상상만은 아니다. 이 속에서 ‘미래 예측’과   ‘미래학자’가 주목 받는다. 미래 혁신 기술의 진화가 어디로 확산될지, 누가 이를 주도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한경비즈니스는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 인터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래학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은 미국의 미래학자 허먼 칸으로부터 경제 발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들의 만남은 1960년 말 시작돼 수년간 이어졌다. 칸은 현대 미래학의 요람으로 불리는 랜드연구소에서 시나리오 기법을 창안한 인물이다. 지난 12월 1일 워싱턴 D.C. 외곽에 자리한 연구소 겸 자택에서 만난 제롬 글렌(70) 밀레니엄 프로젝트 회장은 미래학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허먼 칸의 만남을 상기시켰다.
그는 “허먼 칸은 어떤 것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며 “모든 가능성을 철저하게 살피도록 여러 해에 걸쳐 대통령과 마주 앉아 긴 대화를 나눈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대화는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어떨까. 글렌 회장은 “당시는 단순한 세계였기 때문에 차를 마시면서 전략을 수립하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환경이 훨씬 복잡하고 변화의 속도도 매우 빠르다”며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 연구가 다시 한 번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글렌 회장은 허먼 칸의 제자다. 대학원생 시절 미래학에 매료된 그는 ‘퓨처링’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으며 미래 예측 기법인 ‘퓨처스 휠’을 창안했다. 1996년 미래학 싱크탱크인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공동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여러 나라의 미래학자들이 참여하는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다. 전 세계에 50개의 지부를 두고 있고 매년 ‘유엔미래보고서(State of Future)’를 발간한다. 



미래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래학은 무엇입니까.
“미래학은 새로운 가능성들에 열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몇몇 미래학자들이 ‘퓨처리즘’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지만 저는 반대하지요. 영어에서 ‘-이즘’은 흔히 이데올로기를 말해요. 그것은 내부와 외부를 가릅니다. 외부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죠. 모두가 똑같은 것만 한다면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떻게 미래학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대학원에 다니면서 버몬트 주의 미래교육연구에 참여했습니다. 다양한 미래 예측 방법과 미래학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은 한 박스의 서류 상자가 주어졌어요. 그걸 다 읽고 나서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지요. 미래학의 방법들을 교육에 접목했어요. 교차 영향 분석이 있습니다. 나노기술이 합성생물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인공지능이 클라우드 컴퓨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매트릭스를 만들어 보는 거죠. 생물학 교육에도 이걸 활용할 수 있어요. 호흡기관·골격기관·순환기관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게 아니라 호흡기관이 잘못되면 신경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매트릭스를 통해 가르치는 겁니다. 신체 전체의 상호 의존성을 알게 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죠.”

얼마나 정확한 미래 예측이 가능합니까.
“미래 예측을 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닙니다. ‘2050년 실업률이 35%’라는 예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35%의 실업률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지금 준비하고 행동하면 그 수치를 떨어뜨릴 수 있어요. 대응할 시간을 갖게 되는 거죠. 모든 미래학자는 어쩔 수 없이 예측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임무는 아니지요. 서울 시내에서 교통 정체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던 길로 계속 가면 모임 장소까지 1시간 걸려요. 만약 다른 길로 가면 30분이면 충분해요. 대안적인 미래를 갖고 있는 거죠. 이게 미래학자의 할 일입니다. 대안적인 미래를 찾는 거예요. 모든 게 잘되고 있다면 미래학자가 필요 없지요.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이렇게 계속 가면 어떻게 된다’, ‘이런저런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최근 미래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변화의 속도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거기에 놀라고 있습니다. 기업에 놀란다는 것은 위기를 뜻해요. 생각보다 변화가 더 빠르면 누구나 앞으로 계획해야 할 걸 알고 싶어 합니다. 앞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곡선에 앞서가라’는 말이 있어요.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 6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에서 나온 말이죠. 당신이 삼성전자의 연구 책임자라면 그 그래프를 그리고 5년 후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모두가 알고 있거든요.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곡선을 앞서가는 겁니다. 갈수록 집적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걸 이제는 모두가 이해해요. 휴대전화 안에 손전등·캘린더·카메라 등 30~50개의 기술이 들어가 있죠. 그걸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휴대전화는 팔리지 않을 겁니다.”

물 문제의 심각성을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요.
“지표 밑에 흐르는 지하수면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대륙에 걸쳐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에요.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또 더 부유해집니다. 인터넷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부를 갖도록 해주고 있죠. 인터넷은 칼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수단의 새로운 형태예요. 사람들은 더 잘 살게 되면 고기를 먹어요. 인도인조차 고기를 먹기 시작합니다. 고기는 많은 물과 많은 땅을 필요로 하지요. 우리의 농업 기반과 식량 기반을 바꾸지 않으면 고기의 가격은 점점 치솟을 거예요. 가난한 이들은 감당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성장기에 철분과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뇌 발달에 문제가 생기죠.”

지하수면이 계속 낮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지하수면이 ‘제로’로 떨어지면 대규모 이주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중국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죠. 중국 몇몇 지역은 오염 때문이 아니라 물 자체가 어느 순간 갑자기 말라 버려 사람들이 살던 곳을 떠나고 있어요. 이들이 다른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분쟁이 생깁니다. 지금 유럽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보세요. 앞으로 닥칠 일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하죠.”

담수 농업이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까.
“동물을 더 이상 기를 수 없게 되면 해조류를 고기 대신 먹게 될 겁니다. 지구에는 육지보다 넓은 바다가 있어요. 중국과 미국의 유전공학자들이 소금물에서 성장하는 토마토를 연구 중입니다. 토마토를 먹을 때 소금을 칠 필요가 없어요. 담수 농업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지하수면이 내려가는 현상을 완화할 수 있어요. 또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흡수계가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담수 농업이 실시될 지역은 이미 모든 것이 소진된 폐기 지역들입니다. 가난한 지역, 쓸모없는 땅이에요. 담수 농업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 개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거죠.”

인류가 직면한 또 다른 도전은 무엇입니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업입니다. 현재 있는 많은 일자리가 미래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과거에 한 것처럼 이번에도 잘 극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농업시대에서 공업시대로 넘어올 때도 불안감이 컸지만 결국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거든요. 정보시대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죠. 하지만 제 결론은 이번엔 다르다는 겁니다. 변화의 속도 때문이에요. 영국은 산업화에 200년, 미국은 100년이 걸렸어요. 한국은 25년밖에 걸리지 않았죠. 그 속도가 점점 가속화될 겁니다. 지금도 빨라졌지만 여전히 시간이 걸리죠. 발전이 일정 수준 진행되면 ‘레벨링’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 노트북 컴퓨터를 1992년쯤 샀어요. 저는 오늘도 여전히 노트북을 씁니다. 성능은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여전히 노트북이죠. 변화가 일어나면 그 뒤엔 안정기와 정체기가 옵니다. 그때 사람들은 얼마간 쉬고 적응하죠. 하지만 다음 시대에는 그럴 여유가 없을 겁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 무어의 법칙에 따라 끊임없는 배가가 이뤄지기 때문이죠. 또한 모든 것이 컴퓨터와 연결되고 있어요. 과거에는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고 테스트하고 평가해 그 결과를 출판해 알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은 암 연구를 위해 컴퓨터 매칭 작업이 필요하면 ‘이걸 할 사람 없습니까’라고 외치기만 하면 되죠. 그럼 다음 날 많은 사람이 나설 겁니다. 순식간에 전 세계에 걸친 즉석 슈퍼컴퓨터를 갖게 되는 거예요. 제안서나 자금 이전, 새로운 통신망, 새로운 훈련이 필요 없어요. 이전에는 결코 없던 일이죠. 과학적 지식의 속도가 무어의 법칙보다 더 빠르게 가속된다는 걸 말합니다.”

인공지능의 진화가 실업의 주요 요인 아닙니까.
“인공지능은 세 단계로 발전합니다. 지금은 첫 단계죠. 시리(Siri)나 구글 검색은 엔진은 ‘만약~ 이라면(if-then)’이라는 정해진 추론에 머물러 있어요. 매우 좁은 영역의 주어진 과정을 수행합니다. 그다음에 범용 인공지능이 오죠. 인간의 두뇌와 유사하게 작동합니다. 인간은 교통정체 속에서 문제를 풀고 다음 날은 사무실에서 다른 문제를 풀어요. 현재의 인공지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범용 인공지능은 마치 인간처럼 배우는 방법을 배우게 될 거예요. 사물인터넷과도 연결되고요. 이것은 전 세계적인 피드백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매초 자신의 코드를 다시 쓰는 거예요. 아침 10시의 지능과 저녁 10시의 지능이 달라지는 거죠. 이 단계 인공지능은 무어의 법칙을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처럼 구식으로 보이게 만들 겁니다. 이렇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어요. 지금은 삼성과 LG가 일자리를 줍니다. 회사도 잘 돌아가고요. 하지만 다음 날 갑자기 당신 부서의 모든 사람이 실직자가 될 수 있어요.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죠. 당신은 잘못한 게 없어요. 이런 일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집니다. 이미 징후가 있어요. 기술에 대한 투자가 노동에 대한 투자보다 수익률이 더 좋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거든요.”

인공지능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요.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면 그 정점에서 슈퍼 인공지능이 등장할 겁니다. 그것은 하나의 종, 전 지구적인 종이죠. 지금까지 인류는 이제까지 우리 자신보다 더 영리한 존재와 마주친 적이 없었죠. 하지만 그렇게 될 겁니다. 인간이 총체적으로 통합된 의식 기술보다 더 깊이 사고할 수는 없죠.”

인공지능 연구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에 대한 제 응답은 인공지능을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인류는 핵 멸망의 가능성에 직면했죠. 1970년대와 1980년대 뉴욕·파리·서울에서 강연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는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질문하면 참석자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었을까요. 미국은 1945년 랜드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3차대전을 막는 것이 임무였죠. 전쟁을 막기 위해 수송기와 폭탄에 대해 이해하는 작업을 먼저 했어요. 핵전쟁은 이전 전쟁과 전혀 달라요. 단 한 대의 항공기, 단 한 대의 잠수함이 국가 전체를 전멸시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나리오 기법이 나온 겁니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지 알아야 했어요. 암을 이기려면 그것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이해해야죠. 인공지능의 위협을 막으려면 우리가 핵전쟁을 막기 위해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이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을 부정해서는 안 되죠. 무조건 회피하는 건 해결책이 못 되거든요. 미국 철학에 ‘물리칠 수 없다면 참여하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가 인공지능에 참여한다면 그것의 성공은 곧 우리의 성공이 됩니다. 인공지능과 인간 간의 시너지를 찾아야 해요. 함께 성장하는 거죠.”

어떤 형태의 시너지가 가능합니까.
“눈이 나쁘면 안경을 씁니다. 안경을 통해 시력이 증강되는 거죠. 인공지능을 통해서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천재로 태어나지는 않지만 인공지능을 통해 지능이 증강된 천재가 되는 겁니다. 수학과 철학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됐어요. 여유가 있고 생계를 위해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사제들이 주역이었죠. 그들이 지금도 전 세계가 혜택을 받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 냈어요. 하지만 그들은 제한된 지역의 소수 그룹일 뿐이었죠. 2050년 세계 900만 명의 사람들이 증강된 천재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창조성이 나타날 겁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생각해 보세요. 페이스북 페이지는 사용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배워 나가죠. 그다음 단계는 뭘까요. 아마도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하게 될 거예요. 우리의 컴퓨터 아바타가 밤새워 전 세계 네트워크를 돌아다며 우리에게 맞는 직업적 기회들을 찾아내 그걸 알려주기 위해 아침에 잠을 깨울 수도 있어요. 그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기회들이죠.”

3D 프린팅은 어떻습니까.
“세계무역에 큰 변화가 생길 거예요. 현재 중국은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제품을 수출합니다. 그것들 상당수는 3D 프린팅으로 복제가 가능하죠. 캘리포니아의 장난감 회사가 중국으로부터 계속 수입할 이유가 없어요. 중국은 임금이 싸지만 3D 프린팅은 그보다 훨씬 저렴하거든요. 휴렛팩커드(HP)는2017년 새로운 형태의 3D 프린팅을 출시할 계획이에요.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철·플래티넘 등 다양한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죠. 3만 개의 노즐이 1초에 3억600만 번 분사할 수 있어요. 이는 개인이 집에서 산업 생산을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캘리포니아 사막에 창고를 짓고 HP의 3D 프린터로 가득 채울 수 있어요. 거기서 얼마나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세요. 중국과의 무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워싱턴(미국)=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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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6-01-0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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