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뜯어보기

수익률 저하, 삼성·대우조선해양 사태에 눈총…‘투명성·전문성’ 보장해야

또다시 국민연금이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외압 논란을 빚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이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 채무 조정 수용이 기금의 수익 제고에 보다 유리할 것이란 의견을 내세우며 찬성표를 던졌지만 미래 자금을 맡긴 2200만 국민들은 투자 실패에 따른 부담을 떠안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국민 사이에 팽배한 ‘기금 고갈’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세대 간 갈등이자 정부 불신의 주역으로 떠오른 560조원대 ‘기금 공룡’ 국민연금을 뜯어봤다.
2013년 당시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 공단은 2003년부터 5년 주기로 시행해 온 재정추계를 내년에 다시 짤 계획이다.
2013년 당시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 공단은 2003년부터 5년 주기로 시행해 온 재정추계를 내년에 다시 짤 계획이다.
◆2043년 2561조원? 2058년 기금 고갈?

‘가입자 2174만8532명, 수급자(노령연금 기준) 339만2049명, 최고 연금액 198만7220원….’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국민연금공단이 세운 기록들이다. 1987년 9월 18일 문을 연 국민연금공단은 농어민에 이어 도시지역으로 국민연금 적용을 확대하며 일본과 노르웨이에 이은 ‘세계 3대 연기금(2015년 기금 운용 규모 기준)’으로 성장했다.

이 사이 기금 적립금은 가파르게 불어났다. 1988년 출범 당시 누적금액 5000억원에서 2017년 1월 말 현재 561조원으로 늘었다.

이는 1월 말 기준 2175만 가입자에게 거둔 연금 보험료 446조원과 이 보험료를 운용해 거둔 수익 190조원, 여기에서 연금 급여 지급(노령·장애·유족)과 공단 운영비 등을 뺀 값이다.

국민연금의 수입 구조는 사회 구성원 간 공동체적 연대와 세대 간 부양 시스템에 기초를 뒀다. 따라서 수천만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다시 오랜 기간에 걸쳐 수백만 또는 수천만 수급자에게 적정한 원칙에 따라 배분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기금의 고갈이다. ‘저출산·초고령화시대’에서 새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젊은 층보다 기금을 수급하는 고령층이 늘어난다면 적립금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 실제 현재의 보험료율(소득의 9%)과 미래의 경제성장률·평균수명·출산율 등을 고려할 때 나온 결과는 암담하다.

지난해 9월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2016~2060 장기 재정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 기여금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명목임금 증가율의 둔화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2016년 3.7%에서 2060년 2.7%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이 보고서는 특히 국민연금 기금 수지가 2016년 GDP 대비 2.3% 흑자에서 2042년 적자로 전환된 이후 적자 규모가 확대돼 2058년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1년 전인 2015년 정부의 장기 재정 전망 결과에서 2044년에 국민연금 기금 수지가 적자로 전환된 이후 2060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한 것보다 2년 정도 앞당겨진 것이다. 일각에선 이마저도 2045년으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민연금의 곳간을 책임지는 가입자, 그중에서도 20~30대 가입자들은 향후 기금 고갈로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며 불신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불신은 정부 불신에서 또 고령층과의 세대 간 갈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공단은 이 같은 우려를 일축한다. 공단은 현재 561조원의 기금이 2022년 1000조원, 2043년에는 2561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금 고갈로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절대 아니다”고 못 박는다.

공단 측은 “일부에서 우려하는 결과는 여러 상황(현재의 보험료율과 미래의 경제성장률·평균수명·출산율 등)이 변동되면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며 “재정추계 결과에 따라 정부에서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보조 또는 부과 방식 전환 등의 방법을 통해 정부가 책임지고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실제 소득대체율(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에 대한 연금 수령액의 비율)은 1988년 70%에서 현재 40%까지 낮아졌다.

공단은 2003년부터 5년 주기로 시행해 온 재정추계를 내년에 다시 짤 계획이다. 이에 따른 보험료 인상과 소득대체율인하 논의가 불붙을 전망이다.
560조 공룡 기금, 왜 '불신의 아이콘' 됐나
◆연평균 5.4% ‘큰손’의 수익률 저하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금 고갈에 대한 오늘날 불신이 단순히 보험료율과 미래의 경제성장률·평균수명·출산율 등의 변수 때문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이 변수들이 기금 고갈의 주원인이기는 하지만 공단의 저조한 연금 운용 수익률과 최근 삼성과 대우조선해양 사건에서 발견된 연기금 운용 방식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민연금공단은 1999년 11월 기금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를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약 6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수익률 제고와 위험 분산이란 명목하에 국내 주식은 물론 채권과 대체 투자, 해외로 굴려지고 있다.

자산별로 국내 채권 50.2%(281조5000억원)와 국내 주식 18.9%(105조8000억원)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해외 주식 15.2%(85조5000억원), 대체 투자 11.2%(63조원), 해외 채권 4.2%(23조3000억원) 순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을 좌우하는 ‘큰손’의 성적표는 어떨까.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내외 경제금융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수익률은 계속 하락세를 걷고 있다.

출범 초기인 1988년부터 올 1월 말까지 기금운용본부의 연평균 누적 수익률은 5.4%다. 2009년 10.4%, 2012년 7.0%에서 하락세를 거듭하며 2013년 4.2%로 내려앉았다.

이후 2016년 전년보다 0.18%포인트 오른 4.7%의 수익률을 올렸다. 하지만 연평균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기금 고갈을 앞당기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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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의 운용 수익률이 해외 연기금의 운용 수익률에 비해 낮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2015년에는 세계 유수의 연기금보다 우수한 성적을 받아 선방했지만, 이를 최근 5년간(2009~2013) 평균 수익률로 비교하면 크게 미달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5년 세계 6대 연기금의 최근 5년간(2009~2013) 평균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미국의 캘퍼스(CalPERS)가 13.1%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노르웨이의 정부연금펀드(GPF) 12.0%, 캐나다의 연금투자위원회(CPPIB) 11.9% 순이다.

국민연금의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6.9%로 여타 선진국의 연기금과 달리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다. 한국보다 낮은 곳은 5.7%를 기록한 일본의 공적연금(GPIF)뿐이다.

◆삼성·대우조선 등 잇단 사건에 불신

저조한 수익률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금 운용 과정에서 시장 논리 외의 정치적 외압 등이 작용한다는 의혹이 잇따랐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찬성에 대한 외압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 불신이 가라앉기도 전에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회사 채무 조정안의 핵심 열쇠를 쥔 국민연금이 한 달여의 승강이 끝에 찬성으로 급선회하면서 국민연금이 정부의 직간접적 압박에 떠밀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연금 측은 “투자 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적 상태와 경영 정상화 가능성 등을 살피고 재무적 투자자로서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실익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의 신용 등급이 떨어지던 시기인 2014년과 2015년 이 회사 회사채를 집중적으로 매입한 만큼 이번 결정에도 불신이 따르고 있다.

특히 정부 주도의 지원에도 대우조선해양이 회생하지 못한다면 손실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자문기구 벗어나 독립성·전문성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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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이런 사태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의 국민연금 기금 운용이 불투명한 만큼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관리 운용한다. 장관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바에 따라 기금을 관리 운용할 수 있고 이 밖에 기금 운용에 관해 중요한 사항은 회의에 부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다시 말해 최상위에 보건복지부장관과 내·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에 공단이 있으며 다시 그 안에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셈이다.

문제는 기금 운용과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기금운용위원회, 공단 간 권한과 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공단의 전문 운용 조직인 기금운용본부의 장은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이지만 공단 이사장의 암묵적 승인 없이는 그 어떠한 중요한 결정도 내릴 수 없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 기금 운용 체계의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지나치게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단순히 공단의 주무 기관으로 임원의 임면이나 공단에 대한 감독 등 간접적인 기금 운용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운용에 참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정부나 정부를 장악한 집권 세력이 영향을 미쳐 기금 운용을 왜곡할 수 있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독립성 확보와 함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금 운용 업무는 공단이 수행하는 여러 업무 중 하나로 이를 수행하는 기금운용본부 또한 공단 내 소규모 부서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기금 운용 업무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낮은 공단 기관장이나 임원이 기금운용본부의 요구를 예산이나 인사 정책 등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자산 배분, 의결권 행사와 같은 중요한 투자 결정이 비전문가로 구성된 복지부 산하의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이뤄지도록 한 것 또한 전문성을 훼손한다고 전문가들은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해외 선진 연기금의 사례에서 국민연금의 가야 할 길을 찾는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퍼스는 주식운용실 소속 기업지배구조팀에서 의결권 행사를 결정한다.

또 캐나다는 독립 운용 조직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에서 내부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공동으로 각 1명씩 민간 대표를 보내 이사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대신 이들의 인적 구성과 학력·경력 등을 국민 누구나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정부와의 채널을 공식화하는 대신 정부와의 협의 사항을 세세하게 공시해 투명성을 강화한 것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3월 열린 ‘2017년 연금제도의 현안과 진단’ 세미나에서 “정부로부터 완전한 독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의결권을 포함해 기금이 행사하는 모든 투자 의사결정에서 최대한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개혁의 선결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금 운용 관리 체계는 기금의 운용 철학과 정책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경비즈니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