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의 역사]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
(사진) 고 서성환 창업자의 젊은 시절 모습. /아모레퍼시픽그룹 제공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장원(粧源) 서성환 창업자는 한국의 화장품 산업에 일생을 바쳤다. 1924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서 창업자는 개성에서 성장하며 화장품을 가내수공업으로 제조하던 어머니의 가업을 이어받았다.

서 창업자는 광복 직후인 1945년 사업장을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 남창동에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웠다. 그는 창업 당시 품질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신뢰와 좋은 평가이며 그 첫걸음은 바로 품질’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서 창업자는 철저한 준비 끝에 1948년 한국 최초로 상표를 붙인 화장품인 ‘메로디 크림’을 발매했다. 메로디 크림은 그가 서울에서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며 내놓은 첫 브랜드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상표법 제정 시기보다 1년 앞선 1948년에 소개되며 당시 산업계에 ‘브랜드’ 개념을 도입하는 데 일조했다.

뛰어난 품질은 물론 차별화한 디자인까지 갖춘 메로디 크림은 선풍적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1951년엔 한국 최초의 식물성 포마드 ‘ABC 포마드’를 발매했다. 그는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식물성 원료인 ‘피마자유’로 포마드를 만들었다. 급랭 방식을 활용한 ABC 포마드는 기존 제품이 갖고 있던 뻣뻣한 머릿결, 번들거림 등의 단점을 해소해 입소문을 탔다.

서 창업자는 1954년 한국 최초의 화장품 연구실을 서울 후암동에 만들며 연구·개발의 초석을 다졌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의 시초인 이 연구실은 공장 한쪽을 개조한 6.6㎡(2평) 남짓 규모였지만 당시 상황에 비춰 보면 혁신이나 다름없었다.

연구실 조성 후 출시한 첫 제품인 ‘ABC 100번 크림’은 ABC 포마드에 버금가는 히트를 기록했다. ABC 브랜드 라인업을 갖추며 그의 사업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1960년 프랑스 코티를 방문한 서 창업자는 현지 생산 설비를 둘러보며 현대식 설비를 갖춘 공장을 꿈꿨고 1962년 서울 대방동에 대규모 화장품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그는 공장 준공 2년 후인 1964년 8월 국내 최초로 국산 화장품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1962년 선보인 오스카 브랜드 화장품 20여 종을 에티오피아에 수출해 글로벌 시장 진출의 초석을 다진 것이다.

그는 이후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사를 설립해 현지 판매 조직을 갖췄다. 이후 1990년 프랑스 현지법인 설립, 1992년 중국 지사 설립, 1994년 중국 선양 공장 준공 등을 통해 글로벌 사업장을 넓혔다.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
서 창업자는 방문판매 제도를 통해 한국 여성에게 희망을 선물하기도 했다. 방문판매 제도는 태평양의 성장을 이끈 주역이자 오늘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든 산파이기도 하다.

그는 1964년 전통적 유통 구조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방문판매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 화장품의 대명사인 아모레라는 이름도 이때 탄생했다. 그는 방문판매 전용 브랜드를 사내 공모를 통해 아모레로 정했다.

방문판매 인력으로는 전쟁미망인을 주목했다. 당시 한국의 전쟁미망인은 약 37만 명에 달했다. 남편이 전쟁 중 상처를 입은 여성 가장도 만만치 않았다.

서 창업자는 여성 가장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회사와 직원이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했다. 1980년 전국에 664개의 특약점과 영업소를 갖췄고 방문판매원은 약 1만6000명에 달했다.

서 창업자는 한방 화장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1966년 세계 최초의 한방 화장품인 ‘ABC 인삼크림’을 제품화했다. 1973년에는 ABC 인삼크림을 보완한 세계 최초의 인삼 사포닌 화장품 ‘진생삼미’를 출시했다. ‘진생삼미’는 일본·영국·캐나다 등으로 수출됐다.

1975년에는 고려청자를 응용한 디자인으로 용기를 바꿔 세계시장에 ‘삼미’라는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인삼을 고급 보양 식물로만 여기던 국내와 달리 아시아에서 온 신비로운 식물성 화장품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은 특별했다.

서 창업자는 인삼 화장품 개발 능력이 생기자 수많은 식물로부터 더 많은 이로운 물질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시행착오 끝에 1987년 피부에 아름다운 눈꽃을 피운다는 뜻을 담은 ‘설화’를 만들어 냈다.

설화는 율무·당귀·치자·감초 등의 한방 약초에서 효능 물질을 추출해 만든 제대로 된 한방 화장품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한방 화장품의 진수로 불리는 ‘설화수’가 태어났다. 인삼 화장품 연구를 시작한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였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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