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영원한 우정도 영원한 적도 없는 정치판…여야 잠룡들의 물밑 전쟁
‘손학규와 임종석’ 그리고 ‘황교안과 홍준표’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영원한 우정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격언은 정치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곳보다 정치판에 더 잘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장면은 우리 정치판에서 숱하게 등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선 주자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이 언제 동지였나 싶을 정도로 날을 세우고 있다. 대선전이 본격화되고 주자들 간 경쟁이 달아오르면 이런 모습들은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사례가 바로 그렇다. 손 대표는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대선 경선에 나섰다. 임 실장과 우상호·송영길·이인영 의원 등 당내 수도권 출신 386세력들이 손 대표를 도왔다. 하지만 손 대표는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졌다. 정 후보는 대선 본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하면서 10년 만에 정권을 보수당에 내줬다.

민주신당은 위기에 몰렸다. 임 실장을 비롯한 수도권 386세력들은 손 대표를 새 대표로 추대하는 데 앞장섰다. 임 실장은 “손 후보를 추대하자는 의견이 많다”는 당내 상황을 기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손 대표도 대표에 추대되자 당시 원내 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임 실장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손학규 “임종석, 도대체 ‘꽃할배’가 무슨 뜻인가”

10년이 지난 요즘 손 대표는 임 실장을 향해 연일 비판의 화살을 날려 주목받고 있다. 2022년 대선을 향한 신경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초는 임 실장이 제공했다. 그는 지난 9월 페이스북에 “우연인지 몰라도 주요 정당의 대표분들이 정치의 원로급 중진”이라며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와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썼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해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한 손 대표를 겨냥한 말이었다.

손 대표는 “꽃할배가 좋은 뜻으로 쓰인 것 같지만 어떻게 좋은 뜻으로 쓰인 건가. 비판이 아니라 비아냥”이라고 정면으로 공격했다. 또 “정치인의 언어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 비서실장이 야당을 향해 당리당략이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쓴 것은 아주 커다란 실례”라고 비판했다.

손 대표는 임 실장이 지난 10월 17일 남북공동선언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 고지 유해 발굴 현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 공격을 이어 갔다. 10월 29일 당 회의에서 “자기 정치를 하려거든 비서실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국민은 또 하나의 차지철(박정희 전 대통령 경호실장), 또 다른 최순실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했다.

손 대표 측 관계자는 “임 실장 개인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면서 자리를 비웠으면 비서실장은 당연히 청와대를 지키는 게 정상인데 이 같은 국정 운영의 기본 원칙도 지키지 않은데 대한 비판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손 대표는 2007년 대선 경선 때 친노무현 세력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분(손 대표)이 왜 범여권이냐. 그 양반이 나중에 (당내 대선) 경선을 하고 안 하고는 내가 관여할 바 아니지만 그가 왜 범여권이냐, 반(反)한나라당이지. 그 사람, 제발 좀 빼달라. 신문에 이렇게 좀 크게 써주세요. ‘손학규 씨는 빼달라’”고 말했다. 임 실장에 대한 손 대표의 공격은 임 실장 주변에 있는 친노세력에 대한 반감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의 분석도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임 실장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한명숙 전 총리의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이 대표는 선대위원장, 임 실장은 대변인으로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임 실장이 2012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이 대표가 임 실장의 사퇴와 공천 배제를 압박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 대표는 여권의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경수 경남지사와도 각별한 사이다. 이 대표가 직접 대선전에 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이런 개인적인 인연들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손학규와 임종석’ 그리고 ‘황교안과 홍준표’
검사 출신 황교안과 홍준표의 인연

야권에선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개인적 인연이 관심을 끌고 있다. 두 사람은 1985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1년 정도 함께 근무했다. 둘 다 첫 발령지였고 황 전 총리가 1년 먼저 와 있었다. 당시 청주지검에 평검사 4명이 있었고 사법시험 1년 선배인 황 전 총리(23회)가 2호, 홍 전 대표가 3호 검사로 불렸다.

이듬해 황 전 총리가 대전지검 홍성지청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이후 두 사람이 걸은 길은 달랐다. 황 전 총리는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 코스를 밟았다. 김현희 KAL기 폭파, 임수경 밀입북, 국가정보원 불법 도청 등 굵직한 공안 사건을 담당했다. 홍 전 대표는 강력통 검사의 길을 택했다.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업계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박철언 당시 통일국민당 의원 등 거물을 줄줄이 구속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 땐 폭력조직 소탕에 나서 ‘조폭 저승사자’로 불렸다.

황 전 총리는 부산·대구고검장, 법무부 장관 등을 거쳐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한 홍 전 대표는 1995년 검사복을 벗고 이듬해 국회의원(서울 송파갑)에 당선돼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대선 때 두 사람이 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맞붙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황 전 총리가 끝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직 유지를 택하면서 불발됐다.

하지만 내년 초로 예상되는 자유한국당 당권과 차기 대권을 놓고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홍 전 대표는 황 전 총리에 대해 “참 정의롭고 훌륭한 사람이다. 대통령을 하면 나라를 잘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출마한다면 적으로서 불꽃 경쟁이 불가피하다. 청주지검 2, 3호 검사로서 친하게 지냈던 두 사람이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된다.

여야 차기 또는 차차기 잠룡으로 꼽히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전 경기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등은 소장파 쇄신 모임이었던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에서 뜻을 같이했던 동지였다. 미래연대는 2000년 1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젊은 피 수혈을 위해 남 전 지사에게 모임을 만들 것을 지시하면서 탄생했다.

미래연대는 2002년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면서 활력을 잃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전후해 해체됐다. 김부겸·김영춘 당선자는 탈당한 뒤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미래연대는 20여 명의 의원과 다수의 잠룡들을 배출하면서 차세대 리더들의 산실이 됐다는 데는 정치권에서 이견이 별로 없다. 정치 쇄신의 동지였던 이들이 차기 대선에서 어떤 경쟁을 펼칠지 역시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