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올라서 다양한 비상대책이 나오고 있다. 석유에 붙은 세금을 깎고 수입부과금을 줄이는가 하면 기름값이 더 오르면 자동차 10부제를 강제로 시행하고 가로등, 엘리베이터, 네온사인 등에 대한 절약도 강화할 전망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닥쳐서 하면 잘 안된다. 평소에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보면 비용도 적게 들고 훨씬 효과적이기 마련이다.제갈공명은 대부분의 전투에서 눈부신 책략과 현란한 용병술을 발휘해 수많은 승리를 얻었지만 가장 중요한 전쟁에 지고 말았다. <삼국지>에서 촉나라는 절대로 침공을 받을 수 없는 유리한 위치에 있으므로 그저 문을 걸어 잠그고 내실을 기하며 국력을 키우는 것이 좋았으련만 제갈공명은 두 번의 출사표를 쓰고 수차례 병사를 일으켜서 나라의 힘을 피폐시켜 결국 전쟁에 질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우리나라의 에너지 문제가 꼭 이와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 가격이 싼 것이 사실이다. 겨울에 너무 더워서 집에서는 속옷만 입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우리는 평소에 에너지를 헤프게 쓰고 있다. 우리나라가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산업과 같은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비중이 큰 것도 에너지가 시장에서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각종 공공요금이 에너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서 이를 현실화하고 인상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전기요금, 도시가스요금, 지역난방요금 등은 정부가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밖에 경유와 같은 기름에 세금을 제대로 부과할 수 없는 것도 시내버스 요금, 화물차 수송료 등이 서민물가와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쉽게 인상할 수 없도록 많은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한다. 세계에서 석유를 네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이고 여섯 번째로 석유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에너지와 관련된 많은 요금들이 정책적으로 묶여 있고 규제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럴수록 시장에 맡겨서 적정한 가격이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ESCO라는 에너지절약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 일례로 대형빌딩에서 퇴근시간 이후에 사람이 있는지를 자동으로 감지해 조명설비와 냉방설비의 전원을 차단하는 에너지절약시설은 외국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활용도가 많지 않다.석유수입에 부과하는 부과금은 유전을 개발하고 석유비축시설을 건설하는 데 활용된다. 그런데 최근 고유가 대책으로 이를 깎겠다고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해외 유전개발 및 석유비축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공급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사는 게 어렵고 먹을거리가 넉넉지 않다고 해서 모종을 키워야 할 볍씨로 밥을 해먹을 수 없듯이 우리의 내일을 위해서는 늘 없는 가운데서도 조금씩 떼어내 미리 준비하고 아껴야 한다.따라서 평소에 에너지요금을 너무 규제하면 안된다. 물론 에너지사업자가 폭리를 취하고 담합과 같이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공정경쟁을 해치는 일은 엄단해야겠지만 시장에서의 가격신호가 충실하게 전달되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반응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종류의 에너지간에 빈번히 나타나는 교차보조와 상대적인 가격체계의 왜곡은 최소화돼야 한다.약력 : 1971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1년 미시간대 법학 석사(MCL), 경영학 석사(MBA), 씨티은행 근무. 1987년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신학 석사(MDiv). 1988년 대성그룹 기획조정실장. 1994년 대성그룹 본부 사장. 2001년 대성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