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 지휘하는 ‘미다스의 손’

패션쇼 기획·연출 전문가…‘돈 대신 이미지 좇자’약력: 1972년생. 95년 고려대 미술교육과 졸업. 95년 모델라인 입사. 99년 DCM 창단멤버. 2001년 이영희 평양 한복 쇼 연출 등 현재까지 매년 수십 개의 패션쇼 기획 및 연출. 2003년 ESteem 설립. 2005년 ESTmedia 설립.당당한 걸음으로 캣워크를 누비는 모델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숨 쉴 틈 없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백스테이지가 있고 그 뒤에는 이 모든 것을 일사불란하게 컨트롤하는 패션쇼 기획·연출가가 있다. 쇼의 컨셉트와 행사 장소를 정하는 굵직한 일부터 모델 캐스팅과 의상 스타일링, 무대 조명과 음악 등의 디테일한 부분, 케이터링과 좌석 배치 등의 아주 소소한 것까지 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패션쇼와 이벤트 기획 및 모델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에스팀(Esteem)의 김소연 이사(36)는 경력 14년차의 패션쇼 기획·연출가다. 모델라인과 DCM 등 국내 대표적 모델 에이전시에서 베테랑 쇼 연출가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김 이사가 에스팀을 만든 것은 2003년이다.“그 당시 한 달에 패션쇼를 20개 정도씩 했어요. 주말 없이 매일 야근하는 건 기본이었죠.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너무 많은 쇼를 진행하다 보니 일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쇼를 기획한다는 건 창의적이고 아이디얼한 작업인데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죠.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처음에는 공부를 더 할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이때 그녀와 더불어 회사의 주춧돌 역할을 하던 모델 매니지먼트 팀의 동료 역시 사표를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회사에 소속돼 있던 톱 모델 4명이 찾아와 일을 봐 달라 부탁했다. 오랫동안 모델들의 맏언니로, 엄마로 따뜻하게 보듬어 준 김 이사와 함께 하겠다는 것. 이렇게 4명의 모델과 김 이사를 포함한 4명의 스태프들이 모여 2003년 오픈한 에스팀은 현재 22명의 모델과 23명의 직원들을 거느리는 커다란 회사로 성장했다.한국 모델의 뉴욕 진출 성공 신화 만들다제대로 된 모델 매니지먼트와 업그레이드된 이벤트를 보여주자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이상을 추구하고 꿈을 실현하기 위한 회사가 되자’는 모토를 내 건지 3년, 에스팀은 그리고 김 이사는 짧은 시간 안에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냈다.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패션 모델들이 모두 모여 있는 뉴욕에 한국 모델을 입성시킨 것. 보수적이고 편견이 심한 뉴욕 패션 시장에서 에스팀 소속의 송경아와 한혜진이 ‘코리안 모델’로 당당히 활동하며 패션 피플들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탈리아 보그’와 ‘뉴욕 보그’ 잡지의 메인 화보를 장식하고 있다. 물론 손쉽게 이뤄진 일은 아니다. 직접 뉴욕으로 건너가 맨 몸으로 부딪쳐 이뤄낸 결과다.“사실 단기간에 에스팀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함께 일한 모델들의 힘이 컸어요. 워낙 톱 모델들이었기 때문에, 이 모델들을 자기 브랜드의 쇼에 올리기 위해 에스팀에 쇼나 이벤트를 의뢰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우리를 믿고 따라와 준 친구들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에 답하는 길은 이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라 생각했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방법을 모색했어요.”작년까지 패션쇼와 이벤트 쪽에 치중했다면 올해에는 모델 매니지먼트에 주력할 생각이다. 국내 모델의 외국 진출과 더불어 외국 모델의 국내 진출을 위한 사업도 준비 중이다. 올 6, 7월쯤 뉴욕 필름 아카데미와 손잡고 아카데미 내에 모델과를 신설할 예정. 재능 있는 모델들을 중국과 한국 에이전시에 소개해 아시아 패션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그녀는 이런 일, 저런 일 기획하며 부지런히도 움직인다. 한국 모델의 뉴욕 진출 역시 겁없이 달려든 그녀의 무모함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케이블 TV M.net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I AM A MODEL’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도 김 이사다. 모델 지망생들이 최종 1인의 모델이 되기 위해 벌이는 다양한 서바이벌 과제들을 다루는 이 시리즈는 시즌 2까지 방영된 상태다. 곧이어 시즌 3이 방영될 예정이다. 톱 모델 군단 에스팀의 모델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해 방송국을 찾아가 다이렉트로 기획안을 내밀었다.“남들은 일을 사서 만든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난 3년 동안 젊다는 것 믿고 무모하게 도전했던 일들이 제대로 적중했어요. 운이 좋았던 거죠. 그랬기 때문에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에스팀이 패션 업계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14년 전 모델…현재는 에이전시 CEO첫인상에서부터 심하게 워커홀릭의 냄새(?)를 풍기던 그녀, 역시 예감은 적중했다. 이 일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황하더니 골똘히 생각한 끝에 말을 꺼낸다.“딱히 무슨 매력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냥… 너무 자연스러웠다고 할까요. 마지막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도 일하는 방법에 대한 회의였지 일이 싫었던 건 아니에요. 제게는 항상 그냥 해야만 했던 일인 것 같아요.”김 이사의 이런 기질은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발휘됐다. 사실 그녀의 첫 직업은 모델이었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모델 생활을 하다 쇼 연출에 눈을 돌린 것. 그 시절만 해도 패션쇼 기획이나 연출에 관한 개념조차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모델로 활동하며 알게 된 패션쇼 기획자를 무작정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1년이 넘게 운전하기, 무거운 짐 들기, 바닥 청소하기 등의 잡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노하우를 배워나갔다. 현재 에스팀의 이스튜디오(EStudio)에서는 이렇게 고생하며 하나씩 익혀나간 쇼와 이벤트에 대한 노하우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못하는 성격. 일의 특성상, 개인적인 성격상 결혼과 일을 병행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일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고 이름을 알리는 대신 남편과 아이에 대한 욕심은 포기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고. 대신 일과의 연애를 선택했다.“돈을 좇지 말고 이미지를 좇자고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돈은 따라오게 마련이죠. 대중적인 패션쇼나 이벤트보다 상위 5%를 타깃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합니다. 모델도 상위 5%에 드는 퀄리티 있는 모델들로, 이벤트도 상위 5%가 즐길 수 있는 신선한 것들로 채우기 위해 노력해요.”앞으로는 단발로 끝나는 행사를 줄이고 패션 브랜드들과 시즌 또는 연간 계약을 해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렇게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일해야 쇼와 이벤트에 내실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김 이사에게는 하루가 25시간이어도 부족할 듯하다.강수정 객원기자 firstline0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