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미래 & 현재 가치

얼마 전 한 금융회사의 임원과 얘기를 나누던 중 ‘프레임(frame)’이 화제가 됐다. 영어 사전에선 프레임을 ‘틀·뼈대·골격’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프레임이란 단어를 우리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에 적용하면 ‘사고나 생각의 틀’이나 ‘사고체계’ 혹은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등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뜻을 가진 프레임이란 단어가 화제에 오른 것은 적립식 펀드의 만기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2003년 이후 펀드 투자 열풍이 불면서 적립식 펀드는 소위 ‘국민 재테크 상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1인 1가구 펀드 투자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된 상품이었다. 이때 적립식 펀드의 만기는 3년으로 설정됐다.

본래 펀드와 같은 투자 상품은 만기가 없는 법이다. 자신이 원하는 기간이 곧 만기인 것이다. 그런데도 왜 많은 판매 회사들이 만기를 설정했던 것일까.

당시 금융회사들은 적립식 펀드를 기존 적금의 대체 상품으로 여겼다. 역사상 처음으로 초저금리 상황에 이르자 적금의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적금 상품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는 적금 상품의 만기가 3년이다 보니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기존 관행에 맞춰 초창기 적립식 펀드를 3년으로 설정하게 됐던 것.

투자자들도 기존 습관에 따라 투자 기간을 3년으로 생각하고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 2007년 이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지면서 적립식 투자자들이 손실을 봤고 3년 만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은 손해를 보고 만기금(?)을 찾거나 불입을 중지하기도 했다. 반면 일부 투자자들은 이 시기에 계속 불입해 일정 정도 이상의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투자 프레임 따라 수익 천차만별
<YONHAP PHOTO-0062> (FILES) A home for sale is seen in this 24 January 2008 file photo in Manassas, Virginia. Home prices fell in 84 percent of the US housing market in the first quarter, with the once-hottest markets now suffering the steepest losses, a private survey said on June 2, 2008. Global Insight, a leading company for economic and financial analysis and forecasting, said that single-family home prices fell at a 6.7 percent annualized rate for the third consecutive period. AFP PHOTO/Paul J. Richards/2008-06-03 00:54:43/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FILES) A home for sale is seen in this 24 January 2008 file photo in Manassas, Virginia. Home prices fell in 84 percent of the US housing market in the first quarter, with the once-hottest markets now suffering the steepest losses, a private survey said on June 2, 2008. Global Insight, a leading company for economic and financial analysis and forecasting, said that single-family home prices fell at a 6.7 percent annualized rate for the third consecutive period. AFP PHOTO/Paul J. Richards/2008-06-03 00:54:43/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결국 ‘3년 만기’라는 기간 개념이 적립식 투자자들에게 ‘프레임 역할’을 했고 그 프레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어떤 이들은 수익을 냈고, 어떤 이들은 손실을 봤던 것이다.

만일 그때 적립식 펀드의 기간 프레임을 ‘10년 투자로 설정하고 그 중간에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환매해도 된다’라고 했다면 투자자들의 행동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 3년 만기 적립식 펀드에 가입한 후 만기를 늘려 투자하다가 환매하는 것이나 10년으로 설정해 놓고 그 중간에 환매하는 것이나 그 결과는 전혀 차이가 없다. 단지 프레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 프레임의 차이로 사람들의 수익은 추후 크게 달라졌다. 이처럼 투자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좋지 않은 결과는 잘못 설정된 프레임 탓인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미래와 현재를 대하는 태도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장기적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판단한다고 여긴다. 물론 그런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보다 현재에 초점을 맞춰 의사결정을 한다. 즉, 단기적인 사고를 한다.

해외에서 교통사고와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전띠를 착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안전띠를 매지 않았을 때 사고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묘사한 캠페인이 먼저 진행됐지만 사람들의 행동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대형 사고는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용을 바꿔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캠페인을 내보냈다. 이는 큰 성공을 거뒀고 안전띠 착용률을 부쩍 높였다.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아 발생할 대형 사고는 훗날의 일이자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벌금을 내야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문제다. 오히려 현재의 문제가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더욱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프레임은 투자 계획을 수립할 때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자녀 교육비와 주거비, 그리고 은퇴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치자. 돈이 많으면 필요한 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해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시급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 주거비와 자녀 교육비를 우선순위 리스트의 앞자리에 올려놓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한다. 노후 준비는 걱정하면서도 행동은 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를 대하는 태도는 투자 기간 설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최근의 시장 상황을 근거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시장이 좋았을 때 투자한 사람들은 더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올랐으니까 미래에도 오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호황장에 엄청난 자금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고, 그 결과 때때로 버블 붕괴라는 참혹한 큰 고통을 낳는 원인 중 하나다.

위기 상황에선 보험이자 안전장치
[이상건의 재테크 레슨] 현금도 ‘투자자산’…투자 프레임 바꿔라
반대로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엄청난 대형 사건이 있은 후에는 자그마한 악재에도 민감해진다. 최근에 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좋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호황장에선 호재에 더욱 민감해지고 불황장에선 악재에 더욱 예민해지는 것은 사람들의 프레임이 주로 현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호황장에선 언제까지 보유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약세장에선 조금만 손실이 나도 더 손실이 나기 전에 처분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감정적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아예 재설정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펀드와 같은 투자 상품에 투자할 때는 ‘나는 적어도 5년은 투자할 거야. 가능하면 10년 정도 하고. 그러나 수익이 났을 때 돈이 필요하면 찾아서 쓰지’라고 자신의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이다.

흔히 개인 투자자들이 자산 운용에서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현금’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이 오를 때 일정 자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다면 사람들은 기회비용을 생각하게 된다. ‘그때 같이 투자하는 건데.

괜히 현금을 들고 있었어’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그런데 상황이 반전돼 주식이나 부동산이 급락하면 이번에는 생각이 확 반대편으로 향한다. ‘아이코! 역시 이럴 때 현금을 들고 있는 게 최고야.’ 이런 생각의 양극단을 오고 가게 되는 이유는 현금에 대한 프레임이 잘못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현금을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른 자산과 비교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프레임이다. 그러나 현금은 엄연히 3대 투자자산 중 하나이고 위기 상황에선 보험이자 안전장치의 역할을 한다. 즉, 현금도 투자라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바꾸면 자신의 투자 스타일이나 경기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정 정도 소액이라도 현금을 보유하려고 할 것이다.

현재와 미래를 대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이런 프레임을 재조정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시장 변동성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딱히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평안함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현금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만 처하지 않으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법이다. 실패자는 되어도 패배자는 되어서는 안 된다.


약력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miraeasset.com